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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Dec 14. 2018

퀸의 망토 아래,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미권 팝 컬처에 빠져들기 시작한 중학생의 MP3에는 그 음악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MP3가 PMP가 되었다가 스마트폰이 될 때까지도 수많은 노래가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가 금세 사라지곤 했지만 몇 곡은 항상 그대로였다. 그중에는 퀸이 있었고,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Mama, I killed a man~(...) Carry on carry on~.” 호소하는 목소리와 드라마틱한 전개가 인상적이던 <Bohemian Rhapsody>와 제목부터 뭉클한 <Love of my life>. 겉핥기식으로 록스타들의 뒷배경을 캐던 어린 나는 프레디 머큐리를 천재 뮤지션, 그리고 에이즈로 요절한 동성애자로 기억했다.

순서대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공연하는 프레디 머큐리.
녹음 중인 밴드 퀸(스틸 컷).

12월 12일 기준으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730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흥행 순위 3위란다. <신과 함께 : 인과 연>(1227만),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1121만)라는 두 인기 시리즈 블록버스터를 이은 것인데, 흥이 많은 한국인들이라고 해도 밴드의 전기 영화도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구나 싶어 놀랍다.

나는 ‘퀸’의 노래를 듣고 자랐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프레디 머큐리는 이미 세상에 없었으니 이 밴드의 음악은 추억의 올드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브릿팝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긴 했지만 퀸을 좋아하는 친구는 없어서 사람들이 퀸을 이렇게나 좋아하는지 몰랐다. 나보다 윗 세대의 사람들은 자라면서 퀸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더 향수를 느끼나 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밴드 퀸에 대한 영화지만 그 중심에 있던 프레디 머큐리의 지분이 크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가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그리고 얕은 지식을 자각했다.

놀라우리만치 천재적인 뮤지션인 동시에 대단한 퍼포먼스로 온 세상의 사랑을 한 몸에 받지만 콧대 높고 자존심 센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갈구하던 외로운 사람, 에이즈보다 에이즈의 상징으로 소비되기 싫어했던 한 사람, 그리고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그는 메리를 비롯한 이성 연인들과 교제했다고 한다), 또한 인도 출신 이민자 ‘파로크 불사라(프레디 머큐리의 본명)’라는 그를 감싸고 있던 다양한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


음악 영화는 신나고 전기 영화는 드라마틱하다.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둘 다 있다. 음악과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인생이 몰아치면서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러닝타임 내내 퀸은 몰라도 들으면 다 아는 최고의 트랙들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왜 싱어롱 상영회를 찾는지 알겠다. 입이 뻐끔뻐끔할 정도로 따라 부르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천재 보컬리스트 락스타는 원치 않아도 부와 명예와 더불어 온갖 추문이 꼬리를 따라다니기 마련이다.음악적 성취는 명확히 천재적이나 별개로 온전히 사생활의 영역이어야 할 ‘성 정체성(정확히는 성 지향성일 것이다)’은 지독한 호기심으로 ‘알 권리’를 요구하는 언론과 대중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자신이 가장 혼란했을 그는 세상 앞에서 절망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사후 27년, 이미 그의 이야기가 알려질 대로 알려졌음에도 2018년 대한민국의 영화관에서는 남자와 키스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보며 탄식을 내뱉는 관객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앞으로 퀸의 음악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좌) 영화 속 프레디와 메리, (우) 실제 프레디와 메리.
(좌) 영화 속 짐 허튼, (우) 실제 프레디와 짐.

다행인 것은 음악가로서의 그와 사생활의 영역인 지향성을 분리해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명곡 <Love of my life>의 주인공이기도 한 ‘love of his life’ 메리 오스틴, 마지막 사랑이 된 연인 짐 허튼과 그의 친구이자 가족이 된 그룹 퀸의 멤버들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정확히 알아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자신만만함을 내뿜는 천재인 동시에 주변 사람에 곧잘 휘둘리고 애정을 갈구하는 외로운 인간의 면모를 동시에 보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고 그들의 곁을 떠나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와 그의 모든 것을 내보이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프레디 머큐리는 용감하고 투명하고 참 인간적이다. 그것이 독선적이고 자존심만 내세우고 그게 멋인 줄 아는 여느 록스타들과는 다른 부분이고, 그것이 Queen이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QUEEN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1985, Queen, Live at LIVE 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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