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50년대 초, 1천5백여 명의 아이들이 폴란드로 보내졌다. 한국전쟁 중의 이야기다. 김일성의 요청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논의에 따라 천 명이 넘는 전쟁고아들이 폴란드의 작은 마을 '프와코비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 아이들은 학교에서 먹고 자고 폴란드어를 비롯한 교육을 받으며 낯선 폴란드에서 적응하고 살아갔다.
하지만 1959년, 북한은 국가 재건, 경제 개발을 위해 아이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아이들은 북송되고 말았다. 그때 아이들을 가르쳤던 마을의 교사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이름과 특징, 아이들이 자주 하던 한국어를 기억한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히며 그리워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다룬 소설 <천사의 날개>와 영화 <김귀덕> 등을 바탕으로 우리가 모르던 이 숨겨진 역사를 쫓아 폴란드로 떠나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추상미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은 나이 40이 다 되어 아이를 낳은 후였다고 고백한다. 매일 아이가 죽는 꿈을 꾸며 자신이 아이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추상미 감독.
모성애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사랑’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던 때, 이 역사적 사실을 접하게 되었고 더 알아보고 영화로 풀어내겠다고 결심한다. 추 감독은 <그루터기>라는 극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하고, 오디션을 통해 뽑힌 북한 출신의 ‘이송’ 배우와 사전 답사를 겸해 폴란드로 떠난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북송된 아이들이 폴란드에 다시 가고 싶다는 서신을 보내왔지만 폴란드인 교사는 북한에 있는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까 염려되어 답장하기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에서, 이송 배우가 순하고 배려심 많은 동생 이야기를 하며 목놓아 우는 장면에서 등. 항상 아이들의 이야기는 나를 울린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제 눈 앞에 놓인 상황이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도 판단할 수 없어서 슬프다.
“왜 이렇게 위험한 사랑을 하셨어요?”
“그것은 본능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교사 중에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프와코비체) 기차역에 도착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전쟁의 상처를 보고는 우리는 그들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랑’이 모성애나 부성애를 이야기한 건 아니었을 거다. 형태가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며 엄마와 아빠라는 우리가 잘 아는 역할을 써붙이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추 감독이 말하고자 한 사랑, 폴란드의 교사들이 고아들에게 준 사랑은, 어리고 약하고 지지기반이 없고 미숙한 존재에 대한 충분히 성숙한 어른의 자연스러운 애정이라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훌쩍였던 이유도 다 이 애정이 비슷한 모양으로 한 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혹시라도 아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기 싫어했다.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미숙함, 이기심, 순수함 등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복잡한 세상의 수와 어른들의 복잡한 셈 사이에서 괴로웠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특성은 이제 나에게는 없는 아련한 것들이 되었고, 나처럼 때 묻기 전에 더 들여다보고 싶어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대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동네 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들의 공부를 봐주곤 했다. 열일곱, 열여덟이던 나는 내가 아이여서 아이들을 잘 대하지 못했다. 보람도 자주 느꼈고 동생처럼 귀여워했지만,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대할 땐 귀찮은 적도 많았다. ‘나보다 힘들게 공부할 텐데…’라는 어쭙잖은 마음으로 살펴주다가 나보다 더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욕구를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끄럽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곧잘 장난을 치고 잘잘못을 따지며 애정을 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 앞에 서는 건 어렵다.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시혜적인 마음을 품지 않고, 줄 수 있는 한 듬뿍. 사랑을 주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그 마음'을 더 깊게 만들어 봐야겠다.
Cf. 사족.
이송 배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이송 배우는 추상미 배우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이끄는 두 축 중 하나다. 극영화 <그루터기> 오디션에서 발탁된 이 배우는 합격 후 짧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난 연기 안에서 북한 사람이 되기보다 역할이 될 거라고.
그런데 폴란드 여정에 함께하는 송이 배우를 추 감독은 자꾸 북한 사람, 탈북자로서 보려고 한다. 그녀가 과거 탈북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자신에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이송 배우는 과거의 상처가 연기를 하는 데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추 감독은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선 상처를 들여다보고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극을 좁히고 보다 이 배우를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이 과정이 다큐멘터리 영화인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는 건 위험해 보였다. 가뜩이나 ‘000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갑지 않을 텐데, 이 배우가 겪은 고난이 동네방네 소문이 나버리고 북한을 다루는 영화에만 출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화를 돋보이게 하고 싶은 감독의 마음이 배우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