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한 Jul 28. 2018

사랑의 첫 번째 룰 : 솔직할 것

영화 <빅 식>

<빅 식>은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가족 식사 도중, 쿠마일의 엄마는 쿠마일을 지하실로 내려 보낸다. 보자기를 깔고 한껏 기도할 모양새를 갖춘 쿠마일이 아이폰을 꺼낸다. 5분 타이머를 맞추고 쿠마일이 하는 것은? 게임. 시간을 죽이다 타이머가 띠링 울리자 다시 보자기를 착착 개고 식탁으로 돌아온다.


쿠마일은 파키스탄 이민자 1.5세대지만, 외양만 파키스탄 사람일 뿐, 미국인에 가깝다. 사고 방식도, 연애관도. 그런데 가족애는 끈끈해서 밖에서의 모습을 집에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면서 쿠마일은 가족 앞에서 가장 솔직할 수 없다. 이걸 기만으로 볼 수는 없다. 전통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부모와 신식 가치관이 몸에 밴 자식의 갈등은 전세계 어디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쿠마일에게 ‘에밀리’라는 사람의 모습을 한 사랑이 찾아오고, 그간의 거짓을 멈추게 한다.

공연하는 쿠마일.

쿠마일은 우버 기사를 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극장에서 공연한다. 코미디 역시 지망생은 많고 무대는 적은 판이다. 단 몇 분이라도 무대에 선다는 데 만족해야 하고, 오디션 기회를 주는 유명인의 눈에 띄기 위해 필사를 다한다. 쿠마일이 대박 무대를 선보이고 성공가도에 접어들려나 싶었는데,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쿠마일은 천재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아니다. 그러나 코미디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일상에서도 매 순간 조크를 내뱉는데 이게 어떤 때는 ‘이 상황에 말장난을 해?’싶은 갑분싸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에밀리와 연애를 시작하는 사랑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코미디는 문화 간 차이, 인종 차별 등의 무거운 주제를 내밀면서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빅 식>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무게중심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느 날, 우연히 쿠마일이 공연하는 코미디를 관람한 에밀리와 쿠마일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에밀리와 달리, 부모에 의한 중매 결혼 문화가 여전히 공고한 파키스탄 가정에서 나고 자란 쿠마일은 여자친구 에밀리에 대해 말도 안 하고 부모님 비위를 맞춰주고나 있다.


답답하고 실망한 에밀리가 이별을 고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에밀리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멀리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쿠마일이 우연히 에밀리의 보호자가 된다. 에밀리 부모님이 오시고도 쿠마일은 병원을 나서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옆을 맴돈다. 차츰 에밀리의 부모님과 가까워지며 자기의 마음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된다.

에밀리가 잠들어 있던 2주가 쿠마일에게는 의도치 않게 숙고와 깨달음의 시간으로 주어지는 셈.


쿠마일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탈을 쓴 파키스탄 전통 문화에 맞서고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코미디를 할 거고, 기도는 안 할 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거라고.

마침내 에밀리가 깨어난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힘을 얻는다.

쿠마일역을 연기한 쿠마일과 실제 에밀리.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는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제 등장하는 두 사람의 사진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실제로 굉장히 유명한 코미디언인 쿠마일이 무려 자신의 역할을 직접 연기한 것이었다. 각본은 실제 에밀리가 맡았고.

각색에만 3년이 걸렸고, 영화는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개봉되었다고 한다. 멋진 부부다. 두 사람이 영화처럼 달달하고 극적이고 유쾌한 사랑을 오래 지켜갈 수 있기를.



p.s) 쿠마일도, 에밀리도, 쿠마일 부모님도, 에밀리 부모님도 다들 유머에 일가견이 있어서 한 번씩 터트려주시는데 나는 에밀리 아빠의 썰렁한 유머가 가장 좋았다. “이거 정말 재밌어!”하면서 조크를 치는 사람 특유의 자신만만한 노잼성이 웃음 포인트. 극장에서 안 웃는 사람도 있었고 빵 터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유머코드가 다른 게 또 너무 웃겼다. 우울할 때 꺼내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추가.


p.s 2) 미국 SNL에서 케이트 맥키넌이 패러디한 영화 <캐롤>에서 맥키넌을 귀찮게 하는 웨이터가 바로 쿠마일이었다! 아주 유명한 SNL크루라고.

쿠마일과 에밀리와 에밀리. 너무나 귀여운 세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찌질한 과거와의 조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