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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Feb 09. 2019

<삼삼한 이야기> 그 227번째 끈

수집

01

강릉에 갔다. 숙소는 50년 된 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오래된 집의 겉모양과 현대적인 내부 인테리어가 대비되었다. 가족들이 손수 꾸몄다는데, 책장 한구석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장님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스타벅스 컵들이 예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도 잡동사니를 좋아해서 서랍이 깨끗한 적이 없었던 나는 여행 끝에서도 대개 잡동사니를 많이 가져오곤 했다. 엽서, 책갈피, 돌, 소금 결정, 클리어 파일, 펜, 장식 목걸이, 귀걸이, 자석, 전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지 않으면 하나의 번듯한 물건을 살 수 있지만 그보단 다양한 잡동사니를 그때그때 갖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꾸준하게 수집해 온 것은 엽서. 여행지의 흥분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쓰지 못할 엽서들이 많다.

대만 스펀 폭포에서 산 소원 장식, 기념품 판매지의 엽서들.


02

또 수집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속내를 말하기 쉽지 않았던 성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 등이 합세해 남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설명하자면 소문을 퍼 나르는 게 아니라, 정말 남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 거기서 떠오르는 내 생각을 말하기를 좋아한다.

주변인들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를 좋아하고, 그들의 멋진 점을 알리기도 좋아하며, 생판 모르는 행인의 이야기와 상황도 주워듣는다. 예컨대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들리면 마들렌을 배어문 프루스트처럼 생각이 쉽게 전이되어 내 모녀 관계를 돌이키고 자평한다. 꼰대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분개하다가도 어디서 어떻게 반박하는 게 논리적인지 생각을 정리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축복인 것이, 듣는 모든 이야기가 영감의 원천이 된다. 많은 나의 삼삼한 이야기는 남 이야기로 비롯된다.

물을 모읍니다.
일몰도 모읍니다.


03

모으는 게 생기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스타벅스 컵, 다른 도시의 엽서, 다른 이야기 등 그다음 모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새로 수집할 이야기가 궁금하고, 거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고, 어떤 영향을 받을지 궁금하고 궁금하다.


모으는 게 생기면 힘을 얻을 수 있다. 행복한 추억과 사랑스러운 순간과 아름다운 말들을 수집해놓으면 힘이 되고 양분이 되고 내일 아침 눈을 뜰 이유가 되어준다. 그래서 순간들을 모으기로 했다. 기억하지 못할 것들은 꼼꼼히 기록해둔다. 상황과 기분과 분위기와 스쳐간 생각까지... 잊어버리고 말 훗날의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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