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진심’이 담긴 ‘디테일’을 좋아한다. 단순하게 좋아하는 걸 넘어서 일상 속에서 마주한 디테일과 그로 인해 얻은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애정 한다. 물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나 획기적인 컨셉을 담은 마케팅과 비즈니스 또한 애정하고 항상 관심 있게 살펴보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사소한 한 끝’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도 어떤 경험을 하는데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거나, ‘와! 이건 정말 좋았다’라는 진심 어린 감탄이 표현되기까지에는 여러 디테일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 글에선 진심으로 입 밖으로 감탄사가 나왔던 몇 가지 디테일을 톺아 보고자 한다.
디테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밑단에서부터 끌어온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지점들을 발견했을 때 디테일을 심어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대화들이 형식적인 안부 묻기가 아니라 진심과 진심이 만나는 짜릿한 기분이 드는 대화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얻는 쾌감 역시 스스로가 디테일의 팬이 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도서 뒤쪽에 쓰인 ‘이 책은 친환경 용지로 만들어진 책입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땐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의 진심에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배달의 민족 앱으로 주문을 하다 길어진 로딩에 끙끙대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독고) 배달이를 발견했을 땐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이지만 나에게 디테일은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즐거움이었다. 발견하고 감탄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기에 꼭 찾아야만 하고 그리고 꼭 찾고 싶은, 그런 것들이랄까.
작년에 지인과 함께 요시고 사진전에 다녀왔다. SNS에 많이 올라온 물과 빛을 담은 그의 작품들을 기대하고 전시에 방문했지만 도리어 거대한 영감을 받고 나온 건 요시고 사진전을 개최한 그라운드 시소가 심어둔 고객 경험의 디테일이었다.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며 현대인은 푸른 바닷가가 펼쳐진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고, 나 또한 그 일원으로 요시고의 작품 중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기에 눈앞에 펼쳐진 편안한 색감의 바다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도 무척 좋았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이 공간 자체가 그곳에 들어선 관람객들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넓은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과 조금은 섭섭한 실내 온도(더웠다는 소리다), 그리고 요시고와 관계자분들이 큐레이션 한 음악과 같은 디테일을 통해 그의 작품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었다. 실내에 형광등으로만 빛이 들어오고 마냥 시원한 에어컨 온도가 설정되어 있으며 클래식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면 어땠을까? 그의 작품이 나나 다른 관객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시소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정말 해수욕장에 간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이 전하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디테일로 섬세하게 풀어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두바이 사진들을 전시한 섹션에서는 바닥에 모래를 깔아놨다. 마치 관객들이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았다. 사막 사진들을 보며 관객들이 모래 위를 걸을 때 ‘모래’라는 디테일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감각을 활용해 작품에 이입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모래가 매개체가 되어 요시고와 우리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셈이다.
각 층 별로 심어둔 음악 큐레이션이라는 디테일 역시 인상 깊었다. 각 층에 설치된 QR 코드를 리딩 하면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들을 수 있었다. 물론 해당 전시에 ‘지니’라는 협업 브랜드가 있었기에 설치해둔 디테일이었겠지만, 그의 사진들 속에 파묻힌 황홀한 경험을 복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공간에서 전시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청각을 활용했다니. 같이 갔던 지인과 디테일을 발견하며 몇 배는 즐거운 기억을 안고 나올 수 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디테일을 마냥 좋아하진 않는다. 나만의 철학이 있다. 바로 ‘진심’이 담긴 디테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보여주기 식의 디테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명제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디테일은 결국 관찰과 관심, 애정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담긴다고 해서 담아지는 게 아니고, 담고자 하는 자의 ‘진심’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래야 지만 디테일의 힘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하나 좋아하는 디테일에는 전 세계 청각 장애인들을 감동시켰던 방탄소년단의 <Permission to Dance>가 있다.
그들이 ‘국제 수화’를 후렴구 안무로 넣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일반적인 노래를 함께 즐기지 못한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대중에 숨겨진 소수를 발견할 수 있는 힘 역시 디테일을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던 결정이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그들은 수화를 사용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청각장애인 분들께서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수화를 안무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디테일에 대한 진심이 청각장애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눈물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셈이다.
애정하는 디테일 중 또 하나는 사당역에 있다. 사당역은 서울 시내에 있는 지하철 역들 중에서도 악명 높은 역으로 손꼽히는 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2호선과 종으로 가로지르는 4호선, 그리고 남부 수도권 인구의 집결지로 꼽히는 역이기 때문일 테다. (퇴근 시간에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시민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도 이 많은 분들께서 하루를 열심히 보내셨구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그들의 퇴근을 열심히 응원하기도 한다.)
하루는 관악산에 가기 위해 사당역 3번 출구에서 모여 지인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평일 오전에 만나기로 한 터라 등산복을 입고 출퇴근 시간을 누비는 스스로의 모습은 어쩐지 동떨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같기도 했지만) 회사로 출근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들 틈을 나와 3번 출구로 올라가는데 웬 걸, 버스에서 내린 시민들이 우르르 3번 출구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인파로 에스컬레이터 뒤로는 길게 줄이 늘어져 있었고 이를 지켜보며 ‘역시 사당역은 저 많은 사람들을 품다니 참으로 위대한 존재다’라며 감탄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렇게 사당역 3번 출구를 바라보다 위에 쓰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혼잡시 2번 출구를 이용하시죠! 지하철을 빨리 타실 수 있습니다.”라는 글씨와 2번 출구까지 90m 남았다는 화살표가 담긴 안내판이었다. 정신없는 통근러들을 위한 사당역의 작은 배려를 만났던 순간이었다. 사실 사당역 입장에선 이곳에 사람들이 얼마나 오든, 어디로 들어오고 나가든,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지만 관계자들은 정신없이 출퇴근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작은 배려를 설치해두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민들의 입장에 서서 진심 어린 공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디테일이 놓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디테일을 통해 내 삶은 한층 더 윤택해졌다고 믿는다. 언제나 감탄과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지점이기에 내게 디테일은 꽤나 진중한 관계를 맺은 벗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디테일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기꺼이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동시에 스스로 디테일을 보며 느꼈던 행복 그리고 설렘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길,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