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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JONGREE Jul 26. 2021

파도타기

밤하늘에 그린 밑그림을

다음날 아침이 되어 약간의 숙취 때문에 그런지 ‘쿵’하는 문 닫히는 소리에 벌떡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정신도 잠시, 며칠 남지 않은 파리의 여행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이번 여행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장을 위해 잼과 치즈를 가방에 넣고 바게트를 사기 위해 근처 빵가게에서 방금 갓 구워 나온듯한 바게트를 바스락거리는 종이 포장지로 감싸곤 퐁피두센터로 향한다. 광장에 앉아서 퐁피두센터 건물을 풍경으로 두고 바게트를 주욱 찢어먹는다. 평생 동안 파리에서 느꼈던 분위기를 잊지 못하겠다. 살랑거리는 나무 아래에서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은 포근했으며 불안하고 휘청거리는 나의 마음이 잠잠해지도록 달래어주었고 꺄르르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내가 살아있음을 심장이 뛰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바게트의 바삭 거림 속에 촉촉한 식감과 치즈와 잼이 만들어낸 풍미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이 감정과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다 고된 날 꺼내어 보곤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겠지.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사람이라고 형용하기 위해서 대화를 통해 단어를 꾸며낸다. 상대방의 말속에 녹아난 추억이라는 경험들을 통해 판단하고 형상화한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타인에게 잘 전달되고 나를 알맞게 형상화시켜주어 형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와 어울리는 순간들을 담아내기 위해 나의 속도에 맞추어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찰나의 셔터 소리로 담아낸다. 어떻게 담기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고 이 순간들을 담아내어 너에게 선물하고 싶어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너와 함께 왔으면 나의 추억이 아닌 우리의 추억이 되어 우리를 형용할 수 있는 밑그림이 되지 않았을까? 미술관을 걸어 다니며 우리를 형용하는 것 같은 그림을 마주했다. 하나의 작품 앞에서 잠시 오랫동안 멈춰 앉아 있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깊은 포옹을 하고 있다. 둘 다 포멀한 옷을 입고 서로의 얼굴을 파묻을 듯하게 깊은 포옹, 여자의 허리가 젖혀질 정도로 꽉 껴안은 포옹이었다. 그 포옹에서 '보고싶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림 속 남녀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치환시키고 뒷 배경을 인천공항으로 바꾸어 그림을 그려보았다. 많은 것들은 빠르게 흘러지나갈 것이고 흘러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 암초와 같이 서로를 껴안고 있을 우리. 말은 하지 않고 오랫동안 진하게 서로가 합하지 못함을 반항하는 듯이 더욱더 진하게 포옹하는 우리를 그려보았다. 그러곤 이 그림을 잠자고 있는 너의 휴대폰으로 전송하였다. 너는 어떤 모습을 그릴까? 궁금해지더라. 잠시 퐁피두센터 내에서 야외를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빠져나와 파리 시내를 둘러보았다.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오늘 같은 날씨를 참 좋아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선선한 바람을 발돋움하며 사뿐사뿐 걸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쾌활함이 좋다. 이런 날은 높은 곳에서 노을을 봐야 되므로 바로 떠오른 곳은 몽마르트 언덕이었다. 곧바로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했다.

그렇게 날씨가 주는 상쾌함과 미술작품을 보며 느꼈던 아이러닉한 감정을 품고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한다. 파리라는 도시는 참 신비한 게, 높은 건물들이 많지 않고 다들 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정갈하게 도로의 양쪽으로 즐비해있다. 그런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몽마르트 언덕이고 이곳이 가지고 있는 창작적인 분위기가 매력 있다. 예전에 내려왔던 길로 올라가고 싶어서 빙돌아갔다. 나에게 몽마르트 언덕은 공포의 장소였다. 첫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여행자들에게 숱하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 팔찌 해주는 사람들에게 걸리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마주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노을을 보고 어둠을 뚫고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흐릿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의 장면 같았으며 가로등 불빛을 등대 삼아 천천히 돌길을 내려갔던 그 길을 한낮에 보고 싶었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고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이 맞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것만 같았다. 화가들이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그들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나와 당신의 그리는 밑그림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랑스러운 사람과 함께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밤하늘이라는 도화지 위에 별과 같은 단어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올려놓고 그 단어들을 하나씩 세어 물어보며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생각을 말해주거나 대화를 나누며 이해하는 과정들을 밟아간다. 그렇게 밤하늘에 별을 이어 선을 이어나가 우리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수많은 별들 사이와 사이로 선이 지나가서 선과 선이 만나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가 우리를 표현하게 된다. 어떤 순간은 현실적인 내용으로 버겁기도 하겠다. 어떤 순간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배경에 대한 단어로 조심스럽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나서 만들어진 “우리의 형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의 형태를 일구어낸 후 너와 내가 사랑하는 낱말로 색칠하면 되는 것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