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순순히 따라갈 줄 알고?
나는 길거리에서 좋은 말씀을 나누려고 길거리를 방황하는 일명 도믿남, 도믿녀들에게 자주 붙들린다. 날이 풀려 그들이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되면 거의 매주 한 번씩은 붙들리곤 한다. 말을 걸어오는 방식도 다양하다. 학생이신가 봐요?부터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다느니, 최근 물이 나오는 꿈을 꾸지 않았냐느니 하는 말을 걸기도 하고 내 관상을 보고는 뭐라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지나치기도 한다. 성격상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하도 많이 붙들리다 보니 본 척도 안 하고 지나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게 작업을 걸었던 한 분의 말에 따르면, 자신처럼 오래 공부를 한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둠 속의 촛불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무리 길거리의 인파 속에 파묻혀 있더라도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그 기운이 느껴져 눈에 확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지만 그럼에도 길거리에서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내가 어두운 세상 속 한줄기의 빛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나름 기분이 좋아진다. 웃고 있는 나 스스로가 어이없긴 하지만 말이다.
한 번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저렇게 매번 다른 곳에서 나를 붙드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 번은 시간도 남는데 어디 한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누가 나를 붙들고 작업을 걸길래 순순히 근처 벤치로 따라갔다. 그분은 내가 어둠 속 촛불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내 사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천, 지, 인 세 가지 운 중에 천운과 지복을 타고났다고 했다. 이 정도로 강한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 없기에 내가 어둠 속 촛불과도 같은 사람으로 보인단다. 인복만큼은 없다고 했는데 하늘과 땅의 기운보다 사람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내가 인복이 없다니 조금 아쉬웠다. 매사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는데 그런 일들로 자신의 성장은 도모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는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흠, 나름 그럴듯할지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얌전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어디서 뭘 하고 있냐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잠시 도담을 나누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냥 놔두고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다시 이어진 얘기에서 나같이 천운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조상님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1982년인가부터 무슨 지맥인지 뭔지가 끊기면서 조상님들이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됐다는데 조상님들은 나같이 강한 천운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저승으로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주변에 하나둘 모인다고 했다. 지맥이 끊긴 거랑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또 무슨 말을 한참 중언부언 하더니 나보고 기운이 좋은 성황당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곳에 가서 조상님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제사를 지내면 나를 둘러싼 조상님들의 기운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하려는 일이 모두 잘 될 거라 했다. 아무리 조상님들이라 해도 귀신이니 내 주변에 오랫동안 있으면 나쁜 영향을 줄 거라고 했다.
귀신이니 뭐니 하는 말로 적당히 겁을 주고 어디 음험한 데나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궁금한 것은 이미 다 들었으니 약속시간이 다 되어 이만 가봐야겠다고 하고 휙 일어나 버렸다. 내 등 뒤에 대고 너무 안타까워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그 잠깐 사이에 수십 번은 반복한 말을 또 하고 있길래 더욱 미련 없이 놔두고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졸지에 조상님들을 저승으로 안전히 바래다 드려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이 된 나는 대체 이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어보고 교차검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나는 이런 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붙들리는 어두운 세상 속의 한줄기의 빛과 같은 존재니까,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시 만날 자신이 있었다. 전에는 귀찮기만 했지만 누군가 나를 붙드는 것이 조금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희망고문의 희생자가 등장했고 나는 슬며시 웃으며 순순히 길가 벤치로 따라갔다. 포교 금지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인 종이가 붙어있었지만 그분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만난 분도 역시 내가 천운을 타고났다고 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며칠 전까지 가지고 있던 지복은 없던 걸로 해버렸다. 그러더니 이전 분과는 조금 다른 내용의 말을 한참 쏟아내더니 결국 자기랑 저기 좀 멀기는 한데 의정부 어디에 있는 기운이 좋은 곳에 가야 한다고 했다. 가서 손에 부적을 올려놓고 태워야 한단다. 그래야 조상님들을 보내드리고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잘 풀릴 것이라 했다. 좋은 운을 갖고 태어난 것을 꽃피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을 세 마디에 한 번씩 반복하면서 말이다.
아마 내게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있었다면 더 많은 표본을 얻고 일반화를 시도했겠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2인분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3개의 표본만을 수집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3개의 표본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내가 천운을 타고났다는 것과 어딘가 기운이 좋은 곳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공통점을 순순히 믿어줄 마음은 전혀 없다. 천운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애초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 내 삶이 지금과 많이 달라지게 된다면, 날이 맑고 여유로운 어느 날 누군가 나를 붙잡고 작업을 걸어온다면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볼까 싶다. 수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번엔 어떤 복을 내려주고 또 어떤 복을 없던 것으로 해버릴지, 행복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을 내려줄지 궁금해진다. 그땐 아마 학생이냐고 물어오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