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평생 마주한 적 없던 나를 마주하기

by Lume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심리검사는 MBTI다. 한국 사람 중 못해도 절반은 자신의 MBTI를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MBTI는 검사가 간편하고 결과를 일상에 적용하기 좋아 쉽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가장 대표적인 심리검사를 물어보면 MBTI가 아닌 MMPI를 꼽을 것이다.


MMPI는 현재까지 개발된 심리검사 중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심리검사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검증된 검사이고 무엇보다도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타당도 척도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재판 중에 판사의 지시에 따라 MMPI검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결정적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판사의 재량에 의해 참고자료 정도로는 사용될 수 있다.


심리검사 강의 시간에 교육 목적으로 MMPI검사를 진행했다. 생각보다 긴장이 됐다. 이게 뭐라고 긴장을 한담? 그냥 솔직하게 답하면 될 것을. 그렇게 생각하며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음'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내게 문제가 생긴 척도는 S척도였다. S척도가 만점에 가깝게 나왔다. S척도는 과장된 자기제시 척도로 긍정 왜곡을 탐지해 내는 척도다. 방어적인 태도 중 자신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포장하려 하고 부정적인 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외면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 S척도가 상승한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솔직하게 검사에 임했고 망설여지는 항목에 대해서 최대한 먼저 떠오르는 대로 답했다. 어떻게든 부정적인 결과를 중화시키려 교재를 뒤졌지만 극단적으로 치솟은 결과표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할수록, 내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깊어진 이해를 토대로 내 과거를 돌이킬수록 검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언제나 감정을 느끼는데 서툴렀다. 집에서 건강한 감정표현을 보고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셨다. 기분이 좋으실 땐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해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셨다. 할머니는 아침을 드시고 거실에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계셨다. 저녁을 드신 후에는 방으로 들어가셔서는 역시나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계시다 잠에 드셨다. 어머니는 숨을 쉬기 힘들어하셨다. 최근에 막내 이모에게 듣기로 어머니는 젊어서 밝고 명랑했는데 결혼을 한 이후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 매사 조심스러워졌다고 하셨다. 나는 밝고 명랑한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누나가 있지만 한 명 있는 딸도 집안 분위기를 바꾸진 못했다.


학창 시절은 꾸준히 나를 위축되게 했다. 초등학교땐 공부하는 것이 재밌었다. 남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잘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수업시간에 아는 것이 나오면 신이 나서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한 것이 틀리자 담임 선생님은 나보고 잘난척하지 말라고 하셨다. 선생님을 등에 업고 반 친구들 모두가 야유했다. 더 이상 수업 시간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명시적으로 압박을 주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완벽함을 바라셨다. 중학생의 집중력이 최소 2시간은 된다고 굳게 믿고 내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정신과에 데려가셨다. 검사 결과는 당연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내가 집중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인 ADHD 검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시가 1년씩 다가올 때마다 내가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성적표가 나오면 어머니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셨고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과 상담을 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하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공부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인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를 즐기기 위해서인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집중이 안되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땐 언제나 나를 억압했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나, 나는 이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뒷걸음질 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엉뚱한 핑계를 대고 더욱 깊은 곳으로 침전했다. 몸은 살려 달라고, 그만두라고 발악을 했지만 그 어떤 신체 신호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재수생 시절 하루에 2시간 반씩 자면서 공부를 하다 쓰러진 후에야 잠을 자는 시간을 5시간으로 늘렸다.


내 안에 감정을 억눌렀기에 성인이 돼서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학습하듯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기억. 저렇게 행동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기억. 같은 행동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분석. 실제로 해보니 이렇구나, 이해. 그렇게 쌓아 올린 내 감정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가까웠고 경험한 적 없는 행동이나 반응을 마주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급급했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내가 너무도 나약하게 느껴졌다.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만 겉으로 드러내려고 했지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모든 기억을 기쁨으로 칠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듯 나라고 별 수 없었다. 결국엔 좋아하는 것조차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심하고 나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취향이 갈리는 경우에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볼까 봐 미리 충분한 이유를 떠올리고 대답할 준비를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표현하는 감정은 참고 억누르다 못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 발작하듯 쓰러져 울었고, 대학시절 고백 한 번 못해보고 사랑을 포기하며 술에 취해 밤 새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방황했다. 처음 사귀게 된 연인과 이유도 모른 채 싸우던 날 나는 있는 대로 패악을 부렸고, 갈등을 모두 해소하고 안정됐다고 여겼을 때 통보받은 이별을 나는 견디지 못했다. 군 시절, 병영 상담관에게 들은 힘들었겠어요 말 한마디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하소연하며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받은 상처가 두렵고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언제나 나를 포장하며 살아왔다.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충분히 하지 못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척을 하며 살았다. 감정을 느끼는 내가 나약하게 느껴졌고 그런 잊기 위해 정신적인 마취를 하며 살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바쁜 척했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썼다. 철학이니, 올바른 삶의 자세니, 사회적 정의니 하는 것들을 끌어 모아 한 겹씩 나를 감쌌다. 그렇게 단단하게 감싼 겉껍질을 나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껍질 속은 텅 비어 있음을 애써 부정했다.


모두가 그 미묘한 공허함을 느꼈나 보다. 나는 언제나 내가 속한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고 누구보다 성실히 임했다. 쟤가 없었으면 우리는 다 어쩔 뻔했어 하는 말을 종종 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미묘하게 조금씩 소외되어 갔다. 모두를 위해 애쓰는 나는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일을 해주는 기계였고 그들과 정서적인 교류를 하지 못했다. 그 시절 친하게 지냈다고 여겼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지금 내 곁에 남아있지 않다.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쓸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에 나도 모르게 글은 관념적으로 흘러갔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면 나를 숨길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글은 산으로 갔다. 불안한 마음과 이도저도 아닌 글만 쌓여갔다. 어떻게든 써낸 글은 내가 썼지만 내 이야기 같지 않았다. 예전처럼 묘하게 공허한, 어디까지나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글이었다.


나는 나를 직면해야만 한다. 과거의 내가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행동했는지, 태생적으로 타고났는지, 어린 시절 양육 환경 때문인지, 내가 자라온 한국의 사회구조 때문인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과거는 어떤 방법으로도 끊어낼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엉망으로 만든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내게 상처 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아야 한다. 설령 두려워하던 것에 상처를 입더라도, 그렇더라도 상처는 언젠가 아물 것이고 나는 그만큼 더 성장할 것이라고 몸으로 부딪혀 배워야 한다. 책을 펼치고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누군가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을, 나는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 떨고 있는 과거의 나를 다독여가며 나아가야만 한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직면해야 한다는 이 생각은 내 마음속 한켠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어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녀석은 나를 쳐다봤다. 언제까지 나를 여기에 놔둘 거냐고. 그런다고 내가 여기서 내 발로 나갈 것 같으냐고. 결국 나는 이 녀석을 끄집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내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던 것들을 글로 옮겼다.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눈가가 촉촉해지고 목이 메이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 두근거리던 심장은 잠시 안정을 찾은 듯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 글 한 편으로 모든 것이 기적처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간 외면하던 것들에 이제는 직면할 준비가 됐다. 앞으로도 종종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힐 테지만 한 걸음씩 맞서보려 한다. 그게 진정 나를 위한 길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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