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것에 대해서만 말 할 수 있다. 생각해 본 적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의견을 낼 수 있다. 이 한 줄을 쓰면서도 몇번을 지우고 다시 썼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어서.
언제나 이렇게 어색하게 살아왔다.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애쓰고 모든 것이 대비되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고 나는 언제나 두려움에 떨며 물러섰고 움츠러들었다.
남들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며 살았다. 남들의 눈에 좋아보이는지, 바람직하게 보이는지, 도덕적으로 보이는지, 윤리적으로 보이는지가 삶의 기준이었고 그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애썼다. 있지도 않은 기준을 만들어 그 안에 가뒀다. 있지도 않은 것에 맞춰 살아왔다.
그랬기에 남들이 내 기준에 못미치는 행동을 하면 화가났다. 한심해보였고 무능해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가장 바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며 살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았고 답답한 마음을 꽉 쥐고 더 깊은 곳으로 침전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답답함조차 표현하지 못했다. 남들이 못났다고, 함께사는 방법을 모르는 거라고,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 사회가 엉망인거라고 화내지 못했다. 화는 커녕 투덜대지도 못했다.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니까.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옳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한번 옥죄었다.
누구도 내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았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기를 바라는 것 같아 그렇게 살았다.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바람직하니 남들 몫까지 대신 최선을 다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남들의 눈에 그럴듯 하게 보이는 전문직 시험을 쳤다. 다들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놀랍게도 제법 성공적이었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아주 쉽게 착각했다.
그러면서도 바보같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좋아서 한다고 굳게 믿었다.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삶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니까 그렇게 믿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애쓰는 것들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해서는 안됐다. 나는 올바른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기대를 받는 사람이니까.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쯤 털어놓으면 긍정적인 마무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해야 바람직할까? 내가 나아지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실제로 이 답답한 인생에서 성취한 것들이 하나둘 떠올라 적어봤다. 몇 줄 적어보지만 이내 막혀버리고 만다.
덕분에 글의 흐름이 끊겨버렸다. 바람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차오르는 불만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이만큼 털어놓은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후련하긴 하다. 하지만 이정도로 충분한 것일까? 이대로 마무리하는 것도 내겐 좋아보인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짓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