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by Lume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음이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지금처럼 해나가면 뭐든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주말까지만 해도 관심 가는 논문을 모아서 읽어보고 진학을 하면 어떤 것을 연구하게 될지, 어떤 내용을 교수님께 질문하면서 연구계획서를 구체화할지 고민했다. 카페에 앉아 논문을 몇 편씩 읽으면서 연구주제를 고민하는 생활이라면 제법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이런 순진한 생각은 고작 10분간 이어진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학부생이나 학생 취급을 받지 대학원생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어쨌든 학생이기는 하니 학생이라는 이름 때문에 쉽게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내 대학 동기들이 겉보기엔 정말 태평하게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서 나도 가볍게 여긴 것일까? 대학원을 찾아보고 입학전형을 뒤져보면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취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입학해서 무엇을 할지는 지원서를 쓰기 전에 모두 결정이 나 있어야 했다. 나같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는 없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학점이나 따고 관련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심리학을 공부해서 앞으로 무얼 하면서 살아갈지 그동안 했던 생각들을 되짚어봤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내 학생들이 너무 불안정했기 때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학원강사를 할 계획이었다. 심리학 지식을 아는 것 만으로는 학생들을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어서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는 학생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내가 상담 지식을 수업에 적용해서 학생들의 불안을 감소시킨다 한들 학생들은 결국 교실을 벗어나 다른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하고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사회문제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의 문제를 직접 듣고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럼 다시 원래 계획대로 상담을 공부하면 됐을 텐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년 전만 해도 상담사는 AI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AI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 상담은 더 이상 안전한 직업이 아니게 되었다. 나만해도 AI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종종 정서적인 지지도 받고 있다. 물론 AI가 상담사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AI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해야 상담이 AI에 잠식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상담공부를 시작해서 상담에 숙련되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는데 그쯤이면 어떤 기술이 나올지, 내 상담실력이 커가는 것보다 기술의 발전이 빠르면 나는 마흔이 넘어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차라리 AI상담을 개발하는데 참여하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만, 학부 시절에 수학을 전공했기에 (물론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코딩을 공부하면 심리학적 지식과 개발자의 역량을 동시에 지닌 융복합 인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어떤 교수님께 지도를 받아야 할지, 코딩은 어디서 공부할지 등의 생각이 막연하게 뻗어나갔다. 그런 커리어를 쌓으면 앞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고민하다 보니 나름 그럴듯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슴이 뛰지 않았다.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 또한 결국 내담자를 만나 직접 소통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 그만두고 원래 하던 강사 일이나 열심히 할까 생각했지만 출산율이 바닥을 쳐 학생들의 수가 10년 만에 반토막이 날 미래를 생각하니 그 또한 끔찍했다. 그리고 사교육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도 없다. 순간적으로 도피처를 떠올렸으나 그곳에 희망은 없었다. 직업의 안정성 따위는 따져봐야 자신감만 잃어버리게 될 뿐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고 내 자신감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며칠간 우울하고 무기력했고 핑계 삼아 아침운동도 몇 차례나 빼먹었다. 이럴수록 운동을 해야 기분전환이 된다는 원론적인 생각은 내 행동을 바꿔놓지 못했다. 과거의 나였다면 여기서 더 침체되어 숨어 들어갈 구멍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조금씩 하면서 다녔다. 나의 불안을 입 밖으로 내었다. 동기들에게 준비가 잘 안 되어 막막하다는 말을 꺼냈다. 완성과는 별개로 글을 끄적이기도 했다. 이전이라면 준비되지 않은 나약한 모습이라고 숨기기만 했겠지만 더 이상 숨기고만 있기는 싫었다. 동기들은 별로 관심 없어했다. 해소되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단번에 해소되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거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몇 달이나마 글을 쓰면서 내가 마주해야 하는 일에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며칠 동안 불안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조금씩 꺼내보기도 하니 처음에 느꼈던 막막함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며칠이 지나니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다른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해 관심사를 좁혀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구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인정할 수 있었고 새로운 숨통이 트인 기분이 들었다. 주임교수님의 상담 스타일이 나와는 조금 안 맞는 게 아닌가 하는 핑계도 조금씩 떠올랐다.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약간의 핑계는 갖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방향을 수정했을 뿐이고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할 테다. 한 가지 확인한 것이 있다면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남들에게 나의 힘듦을 꺼내보았고, 그래도 내게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고 글을 쓰는 내가 우습기도 하지만 별 수 없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경험을 수도 없이 쌓아나가야 할 테니까.


내일은 아침운동을 빼먹지 말아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