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하나를 보내는데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별 말이 아님에도, 상대방을 위하는 말을 하려는 데도, 모르는 것을 물어봐야 할 때도 망설이곤 한다. 내 말이 어떻게 전해질지, 응답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지, 이런 말을 하는 날 어떻게 생각할지, 심지어 언제 내 연락을 읽고 답을 해줄지도 고민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한참 걱정한다. 고민 끝에 아주 정돈된 말을 꺼내본다. 어떤 응답이 돌아올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하릴없이 폰의 알림창을 힐끔거린다. 연락이 금방 와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숨을 쉬고 잊어버리려 애쓴다. 내가 별 말을 한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하는지 불평하는데 이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 걸까? 주변 사람들에게 나쁘게 보이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습관이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에 대해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보일지 고민한다. 상상은 매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주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고 일이 곤란하게 흘러가 머릿속에서 내가 화를 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내 습관을 들은 몇몇 사람들은 신중한 성격이 아니냐며 좋은 습관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너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질러서 문제를 겪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래 보일 수 있으나, 각자의 삶과 경험이 다르니 서로 공감이 잘 안 된 것이다.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내 통제 바깥에 있는 듯하다. 상황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다르게 흘러가고 무엇이 그런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나는 그 행동을 쉽게 포기해버리고 만다. 어차피 해도 잘 안될 텐데 하는 마음에 의지가 꺾여버리고 만다. 이상한 점은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긍정적이라 할지라도 행동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제법 많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그리는 사이 시간이 흘러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늦었으니 그냥 그만두자는 생각에 쉽게 사로잡힌다. 다른 이유로는, 우리의 뇌는 생각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그려낸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했으니 굳이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겨 한번 더 그 일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 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나는 머릿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그려보고 그에 맞춰서 대응하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행동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나고 만다. 시뮬레이선의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인 대로,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인 대로 포기해 버린다. 내 상상의 결과가 미래에 그대로 일어날 리 없으니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도 행동으로 옮겨보고,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자신 있게 시도해 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하지 못하기에 두려움을 피하려고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과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모두를 웃겨주기도 하고, 상황에 흠뻑 빠져들어 앞뒤 안 보고 내지른 행동이 아주 절묘했을 때가 있기도 하다.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을 다 하고 내린 결론이 아주 짧은 시간에 직관적으로 결정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때가 있다. 친한 사람들과 모여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 내가 관심 있어하고 좋아하는 분야의 대화가 오가는 경우,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내 설명을 듣고 뭔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을 때, 글을 쓰면서 종종 나도 모르게 생각지도 않은 내 속마음을 적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한 날이면 기분이 좋다. 탁월했던 내 행동을 돌이켜보면서 뿌듯해하기도 하고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험을 몰입이라고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하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깊이 집중하고 푹 빠져드는 상황을 종종 경험하곤 하는데 이것이 몰입 경험이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과업의 난이도가 적절해야 하고 그에 걸맞은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능력에 비해 과업의 난이도가 높으면 불안을 경험하거나 불안정한 각성상태가 된다. 능력에 비해 과업의 난이도가 낮으면 지루해하거나 권태로움을 느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은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가치 있다고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행동의 목적이 보상이나 다른 외부의 것이 아닌 행동 그 자체를 위해서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자기목적성이라 한다.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동기를 가진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몰입을 하면 흔히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표현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 스포츠, 게임, 일 등에 빠져든다. 이때 우리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하는 이유는, 몰입의 상태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행동으로 인해 내가 어떤 이익을 얻을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할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언가에 몰입했다는 것을 깨닫는 때는 몰입에서 벗어난 순간이다. 일에 몰입해 있는 순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해야 하는 일에만 몰두해 의식의 모든 에너지가 빠른 상황판단과 직관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에만 사용된다. 몰입에서 빠져나오면 우리는 스스로도 잊은 채 할 일에 몰두한 나를 떠올리며 그 충실했던 경험을 즐거워한다.
반대로 지나친 자의식은 우리가 몰입한 순간을 찢고 들어온다. 아무리 그 일이 즐겁다 할지라도 나 자신을 잊는 것이 가능하냐며, 그랬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훼방을 놓는다. 분명 배경에 있지만 시선을 확 사로잡아 자연스러운 행동과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보통 이런 불안은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나 감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내게도 이런 미해결 과제가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어릴 적부터 꽤나 예민했던 것 같고 그 예민함을 감당하기 위해서 많은 상황에서 뒤로 물러섰던 것 같다. 그러느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했나 보다. 처음엔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 즐거웠던 공부도 점차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성적이 성공의 상징이 되어가면서 그 원동력을 잃어버렸다. 성실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억압해야 한다는 믿음이 일상이 되었고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잃어버린 채 노력한다는 사실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렀던 내게 어른들은 착하고 얌전하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고 믿었다. 불평불만을 꺼내놓지 못하는 자신을 착한 것이라 되새기며 얌전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아주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성질을 내고 불평하며 반항심에 휘둘리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 천성은 기본적으로 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 행동이 나의 순수한 마음과 의도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화를 낼 줄 몰라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닌, 필요할 때 화를 낼 수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또한 너무 완벽한 인격을 꿈꾸는 것일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분명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억압하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언제부터 그래왔는지,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이 있지는 않은지, 분명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내 자유를 옭아매는 것은 없는지 파헤치려고 애썼다. 정체를 알아내고 그것을 표현하고 나면 어딘가 개운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파내야 하는지, 남은 것이 얼마나 있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인해 지치고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그동안 이룬 성과를 잊고 지낸 것 같다. 힘을 빼고 여유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아야 몰입할 수 있듯,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 내겐 아직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