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휴가답게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쉬는 날이나 휴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쉬는 날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휴가땐 휴식을 취하기보단 여행을 가거나 스키를 타러 가는 등 활동적인 일정을 보냈다. 시험이 끝나는 날 아침, 충동적으로 강릉행 기차표를 끊었다. 내일 당장 휴가를 떠나리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해변에 나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겠다고 생각했다. 느긋하고 나른한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며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감기에 걸려 목이 너무 아팠고 비염에 코가 막혔다. 씁쓸하게 기차표를 취소했다. 그나마 취소 수수료가 얼마 안 돼서 다행이었다. 강릉에 가나 집에 있으나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똑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이나 더 잤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으나 집에서 보낸 하루는 그다지 기분 좋은 나른함이 아니었다. 푹 쉬기는 했지만 개운한 느낌은 들진 않았다.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만 지나면 연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평소에 빨간 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에는 운 좋게 일정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득 부모님 집에 가서 며칠 쉬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표가 있나 봤지만 황금연휴 3일 전에 기차표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평소엔 잘 타지 않는 시외버스를 검색해 봤다. 의외로 자리가 많았다. 다만 터미널이 부모님 집과 좀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와주셔야 했다. 전화를 드려보니 오랜만에 집에 간다고 하니 좋아하시며 버스 도착시간만 알려달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사고로 일을 그만두신 이후에 강원도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다. 경치가 탁 트인 곳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진돗개 한 마리와 생활하고 계신다. 진돗개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는 말에 대려오셨지만 이 녀석은 진돗개가 아닌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지독히 말을 듣지 않는다. 주인이든 누구든 자기 몸에 손을 대려고 하면 으르렁거리며 물려한다. 나중에 알기론 진돗개가 훈련시키기 정말 어려운 종이라 한다. 훈련이 되기만 하면 주인을 잘 따르는 것은 맞는가 본데 훈련시키기가 정말 어렵다 한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1시간 넘게 이 녀석과 산책을 다녀오시는데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당하고 계신다. 반쯤 끌려가는 뒷모습이 뭔가 짠하기도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이 녀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만은 진심이셔서 특식 치고는 자주 닭도 삶아주시고 가족끼리 모여 불을 피워 고기라도 구워 먹는 날이면 항상 이 녀석 나눠줄 고기를 따로 챙기신다. 이렇게 잘 먹이니 제멋대로인 건 아닐까? 어머니께선 처음엔 과하지 않냐고 불평하셨는데 요샌 정이 많이 드셨는지 남은 고기를 먼저 가져다주시기도 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나 보다.
텃밭엔 아무 때나 따먹을 수 있는 채소들과 몇몇 작물들을 주로 기르신다. 집이 산에 있어 5월은 되어야 무언가 심을 수 있다. 땅콩, 깨, 감자, 고구마, 고추, 토마토는 매년 심으시고 텃밭 자투리엔 파나 오이, 가지, 쌈 채소 등을 심으신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봄에 심은 것들을 수확하고 김장에 쓸 배추나 무를 심으신다. 이 밖에도 바질이나 브로콜리 같은 것도 심으시는데 사실 난 텃밭에 별 관심이 없어서 뭐가 자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이번에 뭘 심어서 잘 자랐다고 하시면 조금 얻어다 식비를 아낄 궁리만 한다. 내가 매년 챙기는 것이 있다면 고구마 줄기와 겨울 무인데 마트에서 고등어를 한 손 사다가 조림을 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작년 겨울 무는 수확이 별로 좋지 못해 김장을 하고 나니 남은 게 없어서 내가 먹을게 없었다. 아쉬운 대로 여름에 나올 고구마 줄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들으면 아주 평화롭고 쉬었다 오기 좋아 보이지만 뜻밖에 난 아버지 집에 가서 푹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갈 때마다 텃밭 일이 바쁜 날이 많았다. 소형 트랙터를 사기 전에는 밭 가는 것을 도와드려야 했고 감자나 고구마를 캐기도 했다. 낮에 일을 하면 저녁에는 푹 쉴 수 있어야겠다만 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내게 가족들과 보내는 저녁시간은 너무 소란스러웠다. 거실에 켜진 TV소리도 내겐 너무 크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럴 거면 내 집에서 쉬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텃밭에 일이 없으면 아버지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할 겸 근처 카페에 가자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드라이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버지께서 워낙 가족끼리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셔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곤 했다. 카페를 찾는 것은 언제나 내 역할이었다. 찾아간 카페에 빈자리가 없어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때면 흔들리는 차 안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카페를 검색하느라 멀미를 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다 하더라도 차로 몇 시간이나 돌아다니는 것은 내겐 고역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아버지 집에 내려가기 전에 밑밥을 열심히 깔아 뒀다. 텃밭에 할 일이 많은지 확인을 했고 그동안 너무 바빠서 이번에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기만 할 생각이라고 못을 박았다. 다행히 아직 무언가를 심기엔 날이 덜 풀려서 텃밭엔 할 일이 없었다. 드라이브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쉬어야겠다는 말을 계속 해서 굳이 어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계속 표현했다.
아버지 집에 가있는 동안 정말 먹고 자기만 했다. 원래는 마당 벤치에 앉아 햇살을 쬐며 책을 읽을 궁리를 하며 갔지만,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불어온 찬바람은 날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했다. 첫날엔 쇼파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지만 몇 장 읽기도 전에 잠이 쏟아졌다. 평소엔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이 안 와서 어떻게든 잠을 쫓아버리는데 그날만큼은 졸음이 오는 대로 잠을 잤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밤에도 푹 잘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잠만 잔 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던 대학시절의 방학 이후론 처음이었다. 그렇게나 잠을 자는 건 예정에 없었지만 스스로를 그냥 놔뒀다. 내겐 그런 휴식이 필요했었나 보다.
내가 이번 휴가 때 아버지 집에서 푹 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내가 이번에는 쉬기만 할 거라고 선언을 했기만은 아니었다. 사실 난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힘들어했다. 서울에서 함께 살 때,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일을 그만두시고 몇 년 동안 가족들에게 아주 날카로우셨다. 할머니께서 낙상으로 몇 년간 고생하시는 동안 집에서 누구 하나 쉽게 웃을 수 없었다. 난 취업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내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마음을 굳게 닫고 지냈다.
시간이 흐르며 일이 조금씩 해소되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마음이 정리되자 아버지는 이사를 서두르셨다. 그 과정도 가족들을 힘들게 했지만 결국 마음에 드는 땅을 찾으셨다. 그리고 집을 짓고 가구를 고르고 인테리어를 하는데 하나하나 비교해 가며 꼼꼼히 정하셨다. 집 구석구석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애정을 가득 담아 자신만의 집을 짓고 그토록 원했던 전원생활을 시작하셨다. 아버지가 집을 지으실 때 근처에 다른 가구들이 여럿 들어오며 작은 마을이 만들어졌다. 아버지는 마을의 초대 반장직을 맡으시며 동네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계신다. 어머니께선 외할머니께 받은 유산으로 이모들과 같은 동네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구하셨다. 어머니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셨나 보다. 어머니는 아버지 집과 본인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하신다. 어머니는 집에 계실 땐 동네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우신다. 생전 취미라곤 없이 사셨는데 어머니 집에 갈 때마다 없던 그림이 하나씩 생기는 것을 보면 좋아하는 것을 잘 찾으신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든다. 부모님이 모두 서울을 떠나셨기에 나는 원룸을 하나 얻어 독립을 했다. 내게 맞지 않던 시험공부를 그만두고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했다. 과외를 시작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함께 뒤얽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뒤틀린 표현은 다른 가족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힘들게 했다. 흩어져 살기 시작한 지 2년쯤 되자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 적응을 했다. 이젠 더 이상 서로를 속박하지도 속박당하지도 않게 되었다. 서로에게서 몇 걸음 물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즐거워하고, 서로가 각자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가 서로를 잘못 대하고 있었던 것을 어렴풋이 깨닫지 않았을까. 서로를 옭아매던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보다 함께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오히려 더 편안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떨어져 살면서, 함께 살던 때보다 더욱 가족 같음을 느낀다. 내가 이번 휴가동안 아버지 집에서 푹 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