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by Lume

※ 글에 나온 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2년을 넘게 가르친 한 학생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가르쳐 온 만큼 나는 이 학생의 많은 모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의 실력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지금처럼 해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나를 점차 거만하게 만들었고 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부정적인 신호가 있었음에도 내가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끝내 나는 학생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고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그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처음 만난 민준(가명)은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공부는 사실상 처음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보기도 했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는 것은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면은 공부를 하다 잠깐의 쉬는 시간을 주면 바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요새 제법 많은 학생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곤 한다.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기보다 스크린에 비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에 더 익숙한 학생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업에 임했다. 우선 민준이 알고 있는 내용이 어디까지인지 파악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중학교 내용에 모르는 부분이 많았고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이용해 숙제를 내주며 조금씩 메꿔나갔다. 많이 해오기를 기대하기보다 꾸준히 해오는 것을 더 강조했고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잊지 않은 경우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당장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도 자주 해줬다. 우선은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고 조금씩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수업을 구성했다.


수업은 무난하게 이어졌고 공부를 처음 하는 것 치고는 나름대로 잘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차 문제가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숙제를 훑어보는데 평소와는 달리 책에 풀이가 하나도 없이 답만 적혀있었다. 이상함을 느끼고는 풀이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민준은 학교에서 숙제를 했는데 노트는 학교에 두고 왔다고 했다. 찝찝했지만 별말 없이 채점을 했다. 평소 실력이라면 맞출 수 없는 문제까지 모두 정답이 적혀있었다. 보통 공부에 큰 의지가 없는 학생들은 3달이 넘어가는 시점에 답지에 한 번씩 손을 대곤 한다. 종종 있는 일을 피해가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민준을 간접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우선 맞춰온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보게 시켰다. 세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켰으나 민준은 단 한 문제도 풀어내지 못했다. 풀어내기는커녕 단 한 줄의 풀이도 써내지 못했다. 숙제를 할 땐 잘 풀렸는데 지금은 왜 풀리지 않냐는 내 말에 민준은 형에게 물어봤다고 대답했다. 그럼 형이 풀어준 풀이는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는 부분이라도 말해보라 했지만 민준은 조금도 대답하지 못했다.


숙제를 해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알고 넘어가는 것이라고 민준에게 강조해서 말했다. 민준은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학생이 숙제를 베껴왔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는 민준이 풀지 못할 만한 문제들을 차근차근 풀어주었다. 하지만 민준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숙제야 앞으로 잘해오면 될 문제인데 지금 너의 태도는 무슨 의미냐고 말했다. 민준은 고개를 들뿐 내 시선을 피해 애매하게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답답해진 내게선 이런저런 잔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민준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쯤 되자 몰아세우는 것은 그만하고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침묵을 가진 후, 내겐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설명을 길게 한 후 민준에게 요새 공부하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민준은 이렇게 답했다.


'네.'


네라고? 요즘 공부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민준은 '네.'라고 답했다. 나와는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말려서는 안 된다 생각했고 헛웃음을 참으며 차분하게 비슷한 질문을 했다. 민준은 보다 성의 있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아무 내용도 없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로 숙제를 제대로 해왔고 억울해서 이러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대화를 피하는 것은 억울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별 수를 다 써가며 어르고 달래서 대화를 해보려 했으나 허사였고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머니와 얘기해야겠다고 하자 그제야 민준은 그건 안된다며 반응했다. 참을 만큼 참은 나도 민준이 뭐라 하든 들어줄 마음이 없었고 수업을 하는 방을 나가 어머니를 불렀다. 민준의 어머니는 부엌에 계셨고 나는 그날 민준과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드렸다. 민준의 어머니께서도 조용히 내 말을 들으시더니 내게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돌아가보시고 본인이 직접 얘기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며칠이 지나고 다음번 수업일이 되었다. 지난 수업에 있었던 일을 꺼내놓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평소처럼 수업을 시작했다. 의외로 민준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며칠 전 어떤 말을 해도 반응하지 않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어머니께서 뭐라고 말을 하신 건지 신기해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오늘처럼 공부하면 된다고, 꾸준히 민준을 칭찬했고 잊어버린 내용이 있어도 타박하지 않고 한 번씩 더 설명해 줬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했지만 수업은 잘 진행되었고 수업을 마친 후에는 안심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민준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시험을 며칠 앞두고서 나는 민준에게 시험에 대해 부담 갖지 않아도 괜찮다 말해줬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고,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아는지 확인하는 것이고 아는 만큼 풀어내면 충분히 잘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험을 치른 다음 수업 시간에 시험지를 보여주는 민준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시험지를 복기하면서 배운 대로 잘 풀어낸 문제, 풀 수 있었는데 실수를 한 문제, 다음번에는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할 문제 등을 구분해 주었고 민준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민준의 어머니께 상담을 요청드렸다. 어머니께도 이번 시험에 대해 말씀드렸고 지난번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께서는 민준이 힘든 일이 있으면 종종 그런 식으로 말도 안 하고 버티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번 시험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민준에게 부담 갖지 말라고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며 민준의 말을 전해주셨다. 한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잘 수습해 냈고 앞으로 지금처럼 해나가면 민준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었다.


그렇게 첫 시험을 치른 후, 민준은 전처럼 꾸준히 공부해 나갔다. 비록 수험생에게 요구되는 공부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제 공부에 익숙해져 가는 단계였고 지금처럼 해 나가면서 조금씩 공부량을 늘리면 계속해서 좋은 결과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민준은 공부 외적인 것도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요새 재밌게 하는 게임에 대해 말하곤 했고 그중에는 나도 아는 게임도 제법 있었다. 다만 대화가 잘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나 대해서 한두 마디 말을 꺼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런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민준과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민준은 꾸준히 공부해 나갔다. 여러 번의 시험을 치렀고 가능성이 보이는 결과가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입시는 학생 개인의 실력이 느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매년 주어지는 진도를 따라가야만 하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실력이 늘어야만 성과가 나온다. 민준은 나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하며 분명히 실력이 늘었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충분하지 못해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준은 조금씩 의욕을 잃어버렸다. 내가 옆에서 칭찬을 해주어도 지난주에 배운 것을 기억한다는 사소한 칭찬일 뿐이었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민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제도와 시스템에 맞춰진 수업을 어쩔 수 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민준이 잘해 왔고 민준에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나는 민준을 조금씩 재촉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늘리기 시작했고, 예전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면 떠올리도록 추궁하기도 했다. 수동적으로 내 설명을 듣기보다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질문을 통해 문제의 풀이법을 스스로 떠올리도록 유도했다. 다른 학생들에게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던 방법이니 이번에도 잘 먹혀들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들을 민준은 점차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숙제를 끝마치지 못한 날이 늘어갔고 잊어버린 내용을 다시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내가 던지는 질문들은 오히려 민준을 움츠러들게 했다.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민준을 보며 나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 더욱 재촉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타고나는 것인지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분명 타고난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어간다. 그렇다면 타고난 능력이 없다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가? 선생으로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공부 방법이 있고,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하면 더 나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겐 단순 노동이나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이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지금 공부하는 인고의 시간이 결국 학생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어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는 내 학생들을 가르친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든다. 우선 인내심은 타고나는 성향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은 외부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작은 방해에도 쉽게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나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무엇에 대해 노력하는지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경기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종종 '저렇게 잘하면 축구를 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해당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호기심이 많으면 남들보다 더 큰 노력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에게 훈련을 하면서 들인 노력과 동일한 양을 책상에 앉아 미적분이나 철학을 공부하도록 시키면 우리 모두는 그게 부당한 요구라는 것을 금세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노력을 요구할 땐 언제나 주관적인 최선을 고려한다. 동일한 결과라도 들어간 노력은 다를 수 있다. 평소의 모습과 공부에 대한 의지, 욕심, 동기의 정도에 맞춰 학생들의 노력을 판단하려 애쓴다. 같은 맥락으로 학생들이 더 노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원하는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을 주려 하고, 그동안 공부한 것이 실력으로 남아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신념과 믿음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은가? 멋지게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서 학생들의 성장을 기다려줄 것 같은가? 안타깝게도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별개인가보다. 아니면 내 능력이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 정체 속에서 나는 결국 의심과 조급함에 사로잡혀버렸다. 능력이 없는 학생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 수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학생이 바라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이 일치하기는 할까? 결국 나는 내게 느껴지는 불쾌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학생들에게 기대를 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 집착한 것은 아닐까?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민준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민준을 몰아세웠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민준을 몰아세우기만 했고 결국 지쳐버린 민준은 예전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당시에는 민준의 그런 모습을 예전에 본 적이 있으니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루이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하지만 민준이 침묵으로 버티는 날들이 점차 늘어가면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로 수업이 끝나갈 때쯤 민준은 대답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늘리기도 했다. 이런저런 잡담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예전에 사이가 좋을 때도 잘 이루어지지 않던 대화가 이제 와서 잘 될 일은 없었다. 수업 시간에도 질문을 하는 빈도를 줄이고 직접 설명하거나 문제를 풀어주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민준의 눈빛은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 또한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인내심을 갖고 민준을 기다려주며 수업할 수 있었지만 피곤에 지친 날에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민준은 고개를 숙이고 버티기 시작했고 나는 내 통제를 벗어난 수업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자 나는 민준과의 수업을 그만두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먼저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 민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때 믿고 따랐던 선생님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경험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수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민준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내가 더 기다려주고 포용해 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매일 수업이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없이 수업이 진행된 날에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일방적으로 견디는 것이었고 민준은 더 이상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무의미한 기싸움으로 수업의 대부분이 채워지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민준과의 수업을 이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민준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업을 계속하는 것이 민준과 저 모두에게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렸다. 못해도 분기마다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서 상황을 모르지 않으셨던 민준의 어머니셨지만 놀란 기색을 감추지는 못하셨다. 그럼에도 차분히 나와 이야기를 하시곤 민준과 이야기해 보겠다고 하셨다. 화를 내셔도 할 말이 없었는데, 차분히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며칠 후 민준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민준도 최근 몇 달 동안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사실대로 털어놨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수업을 쉬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민준을 오랜 시간 동안 가르치는 게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진심을 다해 수업을 해줘서 감사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진심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진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대체 이 진심이라는 것이 무슨 쓸모인지,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는 할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 진심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뇌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민준은 여리고 대하기 어려운 학생이었다. 타고난 면이 있는지, 코로나를 겪으며 충분한 대인관계를 경험하지 못해서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톱 주변을 물어뜯는 불안 증세도 보이곤 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민준을 불안하게 만들었지 않나 싶다. 공부는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인데,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애를 써봤지만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앞으로 해야 할 공부는 점점 어려워지기만 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수업시간은 민준에게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이 후회와 미안함인지 실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내가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 것이고 이보다 나은 결말을 맞이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분명히 하고 내 욕심과 학생의 목표를 분명히 구분해야 했다. 작은 성과에 자만하는 순간 이뤄낸 성과는 족쇄가 되어버린다. 학생 개인이 가진 독특한 성향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춰 더 세심하게 학생을 대해야 했다. 그리고 내 능력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내 능력 밖의 일이 일어난 경우 더 빨리 인정하고 다른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해 학위를 받고 나면 상담사로서 더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일로 내가 많은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도 변화가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민준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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