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한 것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by Lume

※ 소설의 줄거리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사제가 결혼식을 주례하고 있다. 혼인성사는 간결하게 진행된다. 신부가 신랑의 손을 잡고 퇴장을 한 후, 그는 어디론가 향한다. 그는 바에 앉아 주문을 한다. 핫위스키 한 잔. 방금 전 모두의 앞에서 사제로서 주례를 섰음에도 그는 술을 마신다. 누군가 사제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그녀는 사제를 책망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아는 듯하다.


성사가 끝난 후 피로연이 한창이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신랑과 신부도 무대로 나와 춤을 춘다. 춤에 자신 있는 신랑의 동생이 신부에게 춤을 권한다. 신랑의 동생은 의욕에 가득 찬 나머지 실수를 한다. 갈 곳을 잃어버린 손에 신부의 목걸이가 끊어진다. 끊어져버린 신부의 목걸이에 걸려있던 진주들이 알알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중 하나가 사제의 발 밑으로 굴러간다. 사제는 그 진주를 집어 들면서 깜짝 놀란다. 진주가 품고 있는 온기. 그 온기는 한때 자신과 손을 맞잡고 있었던, 오늘 자신이 주례를 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사제와 신부는 한때 서로를 사랑했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사제에게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다. 여자는 사제에게 함께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사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운명은 사제가 신부의 결혼식의 주례를 서도록 한다. 진주를 돌려받는 신부는 눈물을 터뜨릴 뻔한다.


사제는 그녀와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사제이지만 그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제의 어머니는 그가 사제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는 어머니의 요구를 거스를 수 있었지만 그는 사제가 되었다. 모든 것은 그가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제가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녀와 함께 마을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사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 사람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은 스스로가 내린 선택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 선택할 기회를 놓쳐 선택당한 행동일 수 있다. 누군가가 선택해 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선택한 적 없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행동한 사람은 혼란스럽다. 선택한 적 없는 것을 내가 선택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곤 사람들이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기에 이른다. 그들의 말을 사실로 만든다.


사람들의 착각은 엉뚱한 믿음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믿음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사제도 마찬가지이다. 사제는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선택을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기에 이른다. 그는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사제는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간다. 스스로를 속여야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진 들판에는 한 신비스런 중국인이 살고 있다. 그에게 방문한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사제는 그 중국인을 믿지 않지만 공허한 발걸음은 사제를 그 중국인에게로 이끈다. 중국인은 사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중국인은 사제에게 매트리스에 누우라 하고 그의 몸을 고치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도수치료인 듯하다.


사제의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몸에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사제의 문제는 마음에 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속여왔다. 마음이 몸을 병들게 한 것일까? 중국인은 사제의 몸을 고친 후에도 사제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 문제 있어요. 사제는 알고 있을까?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을까? 너무나도 오래 외면한 나머지, 더 이상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선택하는 사람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는다. 선택하지 않았음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그러한 선택은 반복된다. 모든 것이 결정될 때까지 망설이는 것을 선택하게 한다.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하게 한다. 그 선택은 결국 선택하지 않는 사람의 삶 전체를 결정한다. 스스로 선택한 적 없지만 모든 것을 선택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중국인의 집을 나사며 사제는 펼쳐진 들판을 바라본다. 사제는 후회하고 있을까? 들판을 바라보는 사제의 눈은 회한으로 가득할까? 그는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 있을 미사를 떠올린다. 라틴어 강독을 떠올리고 곧 있을 부활절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발걸음을 옮긴다.


신앙은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사제는 신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신은 자연이라고 사제는 생각한다. 펼쳐진 들판에서 사제는 신을 발견했을까? 들판은 사제가 어떤 선택을 하도록 이끌까?


사제에겐 정말 문제가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그는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선택하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고 마음을 다잡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독자의 판단에 맡겨진다. 자신의 모습이 사제에게 투영된다. 사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사제는 자신의 선택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사제가 밉다.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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