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by Lume

이상이 현실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내는데 5분이면 충분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선 하루가 다 가는데 24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머릿속에서 이상을 그려내는 동안에는 이상을 우리의 현실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머릿속 5분을 현실의 하루, 한 달, 일 년으로 잡아늘이고 있으면 도무지 한 조각의 이상으로 현실을 채워낼 도리가 없다고 느껴지곤 한다.


그렇다면 이상을 더 길게 꿈꾸어야 하는 것일까? 5분으로는 부족하니 10분, 아니면 30분 동안 상상하고 꿈꿔야 하는 것일까? 이 방법은 별반 해결책이 될 것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모두 다 바쳐 이상을 꿈꾼다 한들 영겁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설령 영겁의 시간만큼 이상을 꿈꾸어 현실을 뒤덮을 만큼의 거대한 이상을 떠올린다면 그것이 과연 이상일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이상은 구체적이지 않기에 이상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이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우리의 기대와 상상에 맡겨 흐릿하게 바라보기에 이상인 것은 아닐까?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이상을 더 이상 이상일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현실에 이상을 가져오기 위해 끝없이 인내한다. 조그만 이상의 조각이 현실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아주 조금씩,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잠깐의 방심만으로 이상이 현실에 압도되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자신이 꿈꾸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뿐이다.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는 결코 자신의 행동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금세 놓쳐버리고 만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상을 꿈꾸는 찰나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주기에 너무나 짧고 나약하다.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놓쳐버리더라도 다시 붙들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지 못한다.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고자 하는 이에게 믿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된다. 믿음이 없고서는 어떤 꿈도 이뤄낼 수 없다. 인간에게는 믿음이 필요하고, 역경 속에서 믿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둘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은 인간이 살아있기에 매 순간 흔들린다. 삶을 살아가기만 해도 믿음이 흔들린다. 자신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든 예상치 못한 좌절이 삶을 가로막든 마찬가지이다. 실패가 믿음을 흔드는 것은 당연하고 성공 또한 그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흔든다.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마치 해가 뜨고 지는 풍경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이쯤 되니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는지 알 것도 같다. 신은 인간에게 믿음을 만들어내는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믿음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딘가 단단히 매어둘 곳이 필요했던 인간은 신을 떠올렸다. 순서가 반대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신이 먼저 존재했기에 그에게 믿음을 바치든, 자신의 믿음을 붙들어줄 대상이 필요해서 신을 떠올렸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믿을 수 없는 신은 존재해 봐야 의미가 없다. 믿음을 위탁할 신이 없다면 매일같이 흔들리는 믿음을 붙들어둘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정말로 인간이 자신이 존재함을 믿기 바랬을까? 정말로 자신을 믿지 않는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릴까? 선악과라는 함정을 만들어두고 속임수에 빠지기만을 기다린듯한 유치한 신을 우리가 믿어도 괜찮을까? 나는 도무지 그러한 신을 믿을 수가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린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신이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신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신을 말하는 인간을 믿기가 어렵다. 인간을 믿더라도 수백 년을 거쳐 전해진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전승 속에 있는 인간 모두가 선한 마음으로 올바른 전달을 위해 애썼다 하더라도 나는 그 수백 년의 시간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은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없도록 가로막는 장벽이고 사람 사이의 간격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어서 그 무엇도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나의 믿음을 위탁할 존재가 필요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숨만 쉬어도 흔들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외부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내가 가진 사고방식으로는 종교를 믿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신과 믿음 사이에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면 내가 믿음을 위탁할 대상이 꼭 신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신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들을 돌이켜 봤다. 신은 인간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신이 아닌 사랑일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에게 매 순간 감사함을 갖고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견디고 고통이 감추고 있는 세상의 본질을 발견하라고 가르쳤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이 자신에게 속한 존재라고 가르쳤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해있고 개별적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신은 자신을 믿는 인간에게 천국을 약속했다. 죽음은 인간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사랑을 믿기로 했다. 매 순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삶의 곳곳에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나보다 더 큰 우주에 속해있고 그 안의 존재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관계는 무한한 우주의 순환 속에서 찰나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와 같은 만남이 결코 반복되지 않는 유일하고 고유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삶의 매 순간에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신을 믿지 않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죽어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이만큼 선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면 비록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지옥에 떨어뜨리지는 못하겠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고 답한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천국에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면, 그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얼마나 선선하게 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게 올바른 길을 안내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게 그것을 알아볼 힘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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