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을 없애려고 애쓴다. 또는 삶에 고통이 있다면 그런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여기곤 한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누가 고통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만이 이런 고통을 겪는다고 불평하며 자신의 불운을 탓하곤 한다.
그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남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공감을 받기를 원한다. 마음속 짐을 털어놓고 공감을 받고 나면 갑갑한 마음이 한층 후련해지기도 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고통을 없애야 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받았을 때이다. 고통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고통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우리에게 고통을 수용하라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경험에 저항하기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우리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고난을 겪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곤 한다. 모든 경쟁을 뚫고 성공을 거둔 사람이 평생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작은 문제에서 시작된 운명이 그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릴지 모른다. 그런 불행을 겪은 이들은 자신의 불운을 탓하며 괴로워한다.
고통에 대해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괴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며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통이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고통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고 나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고통은 괴로움이 된다.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나아갈 원동력을 얻으며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요즘 날씨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불쾌함이 하늘을 찌른다. 찌는 듯한 더위는 분명 우리에게 고통이다. 삶을 불행하게 사는 이들은 날씨를 향해 분통을 터뜨린다. 도대체 더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다고. 그리곤 그 불평을 온 사방으로 퍼뜨리기 시작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짜증을 늘어놓고 급기야 지구온난화가 문제라며 환경을 파괴하는 온 세상 사람을 탓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좀 전에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놨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름이면 날이 덥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밖이 끓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최대한 낮 시간에 외출을 피하려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한다면 최대한 그늘을 찾거나 더위를 피할 방법을 떠올리는 편이 현명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
설득이 되는가? 사실 쉽게 납득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더워 죽겠는데 받아들이기는 무슨...'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점이 중요하다. 내 말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삶에 있어서 고통이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아직 붙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CT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통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고통에 저항하고 고통을 없애려 애쓰느라 고통이 괴로움이 되도록 놔두지 말라고 한다. 고통에 저항하기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고통 자체는 없앨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고통이다. 내가 아무리 불평해 봐야 오늘의 날씨는 선선해지지 않는다. 불평해 봐야 내 머리만 더 뜨거워질 뿐이다. 우리는 무더운 날씨라는 고통을 없앨 순 없지만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 날씨가 내 하루를 망치지 않게 할 수 있고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괴로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활동을 해보려 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 적어보는 것이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적으면 된다. 내 경우에는 다음과 같다.
- 진학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말을 전혀 듣지 않는 학생에 대한 답답함
- 행동하기를 망설이느라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
당신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잠깐의 시간을 내어 직접 적어보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적어보았다면, 다음은 이 고통이 사라졌을 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는 어떻게 달라질지 자유롭게 상상해 보면 된다. 역시나 나의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만약 진학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몰두하여 더 뛰어난 실력과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 만약 내 말을 전혀 따르지 않던 학생이 내 지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을 모두 학생에게 전하고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 만약 행동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 사라졌을 때를 상상하면서 나는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가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오랜 시간 같은 고민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낀 상반된 느낌은 괴로움의 속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분명 내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원서조차 쓰지 않았고 내 학생은 여전히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이 사라졌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개운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아직 내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괴로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즉,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희망을 가질 수도, 괴로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고통이 있기에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고 여기고 그 고통을 해결한 후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고통에 매달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믿는다. 실재하는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그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낸다. 이는 현실에 근거를 두는 고통이 아닌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고통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한 측면이다. 괴로움이란 고통에 덧씌워진 것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 인간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고통에 대한 과도한 생각이 괴로움을 증폭시켜 희망을 잃고 좌절하게 만든다.
ACT에서 말하듯 고통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면 고통은 괴로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괴로움을 파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 내 삶에 고통이 남아있더라도, 고통과 함께 나아가면 된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면 고통은 내 행동을 강제하고 억압하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가치와 목표를 향해 나아갈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ACT는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짧은 글로 고통과 괴로움의 차이를 완벽하게 설명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ACT가 더 진행되면 당신도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