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해 다른 동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뤄냈고 인간의 행복에 많은 기여를 했다. 동시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언어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ACT(수용전념치료)에서 괴로움은 실재하기보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괴로움에는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언어는 괴로움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한 활동을 해보려 한다. 아무 단어를 하나 떠올려 보라. 정말 아무것이나 상관없다. 내 경우에는 머그컵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아무 단어나 떠올려보라. 처음 떠올린 단어와 아무 연관이 없을수록 좋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 단어나 말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다. 카페에 혼자 있었기에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보니 퇴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단어든 상관없다. 어떤 단어가 나오든 우리는 이 단어들을 연결 지어 어떤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머그컵과 퇴근
- 퇴근을 하니 어제 주문한 머그컵이 문 앞에 택배로 와있었다.
- 내 퇴근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머그컵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 퇴근길에 깨진 머그컵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보았다.
그 어떤 단어가 주어지든 우리는 두 단어를 조합해 하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아무 관련성 없어 보이는 단어라 할지라도 의미를 부여해 단어들을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을 우리는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고 떠올린 이미지가 실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는 언어가 갖는 속성을 드러낸다. 그 어떤 단어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게 연결된 문장을 사실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똑같은 머그컵을 보더라도 누구는 어린 시절 따듯한 우유를 마시던 기억이 떠오를 수 있고, 누군가는 회사에서 실수로 깨뜨린 상사의 머그컵이 생각날 수 있다. 상사의 머그컵을 깨뜨렸을 때의 놀란 마음이 집에 있는 머그컵으로 보면서 되살아나기도 한다. 집에 있는 머그컵을 보고 문득 상사에게 미움받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언어가 연결될 수 있다는 속성은 중립적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은 모든 대상을 괴로움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불행히도 그 모든 것들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만들어낸 연결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 세상이 가득 차있다고 믿는다. 또한 한번 연결된 것은 쌍방향으로 연결된다. 괴로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세상이 지옥 같아 보이고, 세상이 지옥 같아 보이기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가 만든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인간이 부정적인 일을 겪었을 때,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없애는 것이다. 차가 고장 났다면 고장 난 부분을 고치려 하고,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약을 뿌리거나 찾아내 잡으려 할 것이다. 부정적인 대상을 없애려는 시도는 가장 떠올리기 좋은 방법이고 실제로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괴로움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시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킨다. 그에 대한 간단한 실험을 해보려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 커다란 코끼리가 한 마리 있다. 상아도 크고 아주 건강하다. 코끼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그럼 이제부터 5분 동안 그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코끼리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5분 동안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코끼리가 머릿속에 몇 번이나 떠올랐는지 그 횟수를 세면 된다.
아마 5분은커녕 5초도 안 돼서 코끼리가 떠올랐을 것이고 횟수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많이 코끼리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은 없을까? 한 가지 실험을 더 해보려 한다.
- 좀 전에 문장으로 연결 지었던 단어를 떠올려 보라. 내 경우에는 머그컵이었다. 머그컵을 떠올리고 그에 집중해 보라. 똑같이 5분 동안 머그컵에 집중하면서 코끼리가 몇 번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세면 된다.
이번에는 어떠한가? 5분 동안 코끼리가 떠오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받았을 때와 비교해서 확실히 코끼리가 적게 떠올랐을 것이다. 좀 더 강렬한 자극인 퇴근을 활용했다면 코끼리가 더 적게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이 간단한 실험은 우리가 괴로움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좋은 전략을 하나 제시한다. 괴로움을 잊으려고 애쓰는 것은 오히려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보다는 다른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런다고 해서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해결책에 대해 평가를 할 때 우리는 그 효과가 단기적인지 장기적인지 논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장기적인 효과가 중요하다고 말하겠지만 실제 우리의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장기적인 효과를 잘 고려하지 못하고 당장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당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음식을 주문하고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잔뜩 술에 취한다. 잠깐동안 괴로움을 잊은 후, 몰려오는 후폭풍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더욱 괴로워한다.
괴로움과 관련해서 단기적인 효과가 분명한 해결책 중 하나는 경험의 회피이다. 경험의 회피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 어린 시절부터 문화적으로 학습되어 거부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다. 다음 주에는 경험의 회피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