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제를 회피하려 할까?

by Lume

괴로움에 사로잡힌 이에게 회피는 달콤한 선택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회피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회피가 올바른 선택이라는 말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회피에 이끌려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익이 없는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장기적으로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피라는 선택을 하게 될까?


경험의 회피는 인간이 정서적인 문제에 대처하려는 한가지 방법이다. 심리학에서 정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지만, 정서는 현재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나 부정적인 정서는 자신의 생존과 안녕에 위협이 발생했을 때 일어난다.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면 두가지 대처가 일어난다.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상황을 해소하려고 시도하거나, 부정적인 정서 자체를 느끼지 않으려 행동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상황 자체를 없앨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지 않으려는 행동을 할 수밖엔 없다. 이러한 행동이 경험의 회피이다. 경우에 따라서 회피는 적절한 행동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앞에 위협이 닥친 경우 우리는 그에 맞서는 것과 피하는 것을 저울질한다. 맞서봐야 별다른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면 구태여 위협에 맞서야 할 이유는 없다.


상황을 해결하려고 행동할 수 있음에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다. 원해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경험을 회피하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는 일면 당연한 행동이다. 내게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당연하다. 매 순간 부정적인 정서에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회피를 과도하게 사용해 습관적으로 경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피를 과도하게 사용할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 우선 왜 우리가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려고 시도하는지 몇가지 이유를 살펴보려 한다.(생각과 감정과 정서는 모두 구분되는 것이지만 일단은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 처럼,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없애려는 시도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치미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그에 끝없이 저항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일상을 살다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감정에 휩쓸려 실수를 하거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망쳐버린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감정을 조절하는것 자체는 필요할 수 있으나 많은 이들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듯 하다.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 속 무언가를 희생시키려 하는 듯 하다. 하지만 감정은 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원치 않는 방식으로 더 날뛰게 된다.


아이들이 울면 어른들은 우선 아이의 울음부터 그치게 하려 한다. 이해는 간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고 자신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또는 아이를 너무 수용적으로 기르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단 울음부터 그치게 하려는 어른들의 행동은 자칫 아이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당장 느껴지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보다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는 것 뿐만이 아니다. 친구와 다툰 경우, 먹기 싫은 반찬을 먹어야 하는 경우, 학교에 가기 싫은 경우, 더 놀고 싶은데 이만 집에 가야한다고 하는 경우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를 표현하는 경우에 어른들은 일단 그 감정을 주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가르친다. 훈육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들도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은 채,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의 어린 시절에도 동일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옳다고 교육받아왔고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행복과 불행이 양립할 수 있는지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행복보다 불행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상에 집중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우리의 생각 속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중이 높다고 해서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것의 비중이 높으니 자연스레 불행에 집중하고 불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 처럼 불행은 우리의 삶 속에서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으로 가득한 삶을 살더라도 작은 행복의 조각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도 언제나 불평만 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도 있다. 행복과 불행은 분명 연관되어 있지만 불행이 없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 시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국 경험을 회피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회피는 우리의 불안정한 마음을 당장 안심시킨다. 단적인 예시로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음에도 우리는 종종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SNS에 접속한다. 궁금한 소식이 있지 않음에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에 대한 불편함을 잊기 위해 우리는 SNS를 켜고 반복해서 새로고침을 한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닌, 주어진 자극에 사로잡혀 당장 직면한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SNS 자체가 문제라고 말 하는 것은 아니다. 할 일을 미루는 것도 결국 기한 내에 일을 마무리하기만 한다면 비난받을 행동도 아니다. 다만 회피가 우리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얼마나 습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의미이다.


우리의 뇌는 한번 효과를 본 행동을 기억하고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경우 효과가 있었던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우리의 뇌가 매 순간 이성적인 판단을 해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뇌는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회피는 뇌가 선택할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처방식이다. 회피를 통해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회피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도, 어린 시절에 받은 감정을 조절하라는 교육 그리고 회피가 감정을 추스르는 아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왜 경험을 회피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여기엔 당신의 의지가 별로 개입되어 있지 않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



ACT(수용전념치료)에서는 경험의 회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할까? ACT에서는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바꾸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의 회피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 과도한 노력은 작용-반작용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나를 괴롭게 만든다. 그럴땐 그냥 멈춰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지도 모른다.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가 된다. 나 또한 비슷한 의심이 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오던 노력들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당신이 고수하던 그 방식을 의심해볼 차례다.


우선 회피가 효과가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피는 그저 당장의 부정적인 정서를 감소시킬 뿐 상황을 바꾸지 못하며 장기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불안을 낮추기 위해 경험을 회피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효과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자책하는 것은 다르다. 자책하는 것은 부정적인 정서를 더욱 증폭시켜 더 많은 회피를 유도할 뿐이다. 앞서 왜 우리가 경험을 회피하려고 하는지 여러 이유를 들었다. 거기엔 당신을 탓하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의 삶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회피는 일면 이해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결코, 당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회피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부정적인 정서가 올라올 때 회피가 아닌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실은 그동안 자신이 회피를 선택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회피를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잘못된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을 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삶의 주도권을 잡을 방법이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용기를 갖고 자신의 지나간 행동들을 받아들였다면 이전과는 다른 해결책을 떠올릴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때 ACT가 제안하는 부정적인 정서가 올라올 때 사용하는 방법은 수용이다. 내려놓아보는 것이다. 앞서 괴로움에 저항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과 동일하다. 연약해보이는 것이 거칠고 단단한 것을 이기기도 한다. 물살에 저항하지 말고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자.


마지막 단계는 어쩌면 당신의 기운을 빠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용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다. 바로 ACT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이 어쩌면 당신에게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효과가 없을수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정확한 말이다.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당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은 이전까지 당신이 해오던 부정적인 감정에 맞서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ACT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하는 것은 새로운 해결책에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수용은 그런 것이 아니다. 수용은 의식하지 않을때 일어나는 것이다. 수용하려고 애쓰는 것은 수용이 아니다. 투쟁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조그만 여유를 갖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읽은 모든 내용에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의심해도 괜찮다. 다만 그동안 당신이 사용해오던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다른 해결의 가능성이 어딘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달라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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