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고통과 괴로움을 구분해 보았다. 언어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과정도 확인했고 부정적인 감정은 경험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욱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험을 회피하는 심리도 알아보았다. 각각의 글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감정과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수용이 뭘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대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도 잘 감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끝났으니 수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수용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간단한 실험을 해보려 한다. 숨을 참고 숨을 몇 초나 참았는지 기록해 보는 것이다. 뜬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왜 이러한 실험을 했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니 꼭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나중에 이걸 왜 하는지 알게 되면 그때 해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걸 왜 하는지 알게 된 후에는 기록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으니 속는 셈 치고 지금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본다면 이상한 사람이 시켰다고 나를 팔아도 괜찮다. 나는 62초가 나왔다. 당신은 어떠한가?
다시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수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용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용이라는 말에서는 수용의 동기를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본인이 상황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어 수용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을 어찌할 수 없어서 수용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수용이라는 말은 일상 속에서 종종 수동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주변의 상황과 나의 조건에 의해서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정해진다고 수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곤 한다.
ACT(수용전념치료)에서 말하는 수용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ACT에서 수용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무언가를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수용이란 무언가를 기꺼이 느끼고 경험하려는 것을 말한다. 기꺼이 느끼려 다가간다는 점에서 수용은 적극적이다. 나에게 능력과 여유가 있어서 수용하는 것이 아닌 능력과 여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수용하는 것이다. 상황을 어찌할 수 없어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상황이 어떻든 그러한 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나에게 의미를 남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코끼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이를 명제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쓸수록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다면 앞의 명제를 뒤집어보자(정확히는 대우이다). '괴로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이 명제는 수용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 수많은 걱정을 한다. 급기야 사소한 일에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기에 이른다. 심리치료에서 이들에게 제시되는 훈련법 중 하나는 '걱정하는 시간 만들기'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약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상 모든 걱정을 하면 된다. 그 어떤 걱정이든 상관없다. 다만 한번 시작하면 20분을 꼭 다 채워야 한다. 중간에 그만둬서는 안 된다. 거울 앞에 앉아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걱정하는 것도 좋다. 걱정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이런 훈련을 제시받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걱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며 걱정한다. 또 20분은 너무 짧다며 충분히 걱정하기에 어림도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걱정하는 시간을 가져본 많은 이들이 작정하고 걱정하려고 시도했을 때 막상 걱정할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훈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걱정이 떠오르면 나중에 걱정하는 시간에 몰아서 걱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불안을 몰아내기도 한다.
위에 제시한 걱정하기 훈련법은 수용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걱정하지 않으려 애쓰면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히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걱정하려고 나서면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으려 애쓰면 오히려 경험하게 된다. 오히려 경험하려 애쓰면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게 된다.
수용은 비단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몰아내기 위해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수용은 삶의 전반에 적용될 수 있고 즐겁고 긍정적인 것을 더 적극적으로 경험하려는 것을 포함한다. 수용은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경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 순간 직면하는 경험에 방어적으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경험해 보는 것이다. 경험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편견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느껴지는 그대로 느껴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순간의 생동감을 느끼고 그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수용이란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삶의 모든 것들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럼 이제 기꺼이 경험하려는 수용의 태도와 괴로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볼 차례다. 기꺼이 경험하려는 수용의 태도는 우리가 경험하는 괴로움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고통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고통을 견디는데 힘을 보태줄 수 있다. 글의 처음에 숨을 참아보는 실험을 기억하는가? 이제 두 번째 실험을 해볼 차례다.
두 번째 실험도 간단하다. 숨을 참고 얼마나 숨을 참았는지 기록하면 된다. 첫 번째 실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시문을 읽고 지시에 따라 생각을 하면서 숨을 참으면 된다. 숨을 참기 전에 지시문을 반복해서 읽어 충분히 숙지한 후 실험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시문을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면 숨을 참으며 지시문을 반복해서 읽고 지시에 맞춰 생각해도 괜찮다. 지시문은 책에 있는 것을 읽기 편하도록 길이를 줄였다. 꼭 한번 해보는 것을 권한다. 분명 당신이 수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몸의 어디에서 그런 충동이 드는지 관찰해 보라. 머리인지, 가슴인지, 신체의 다른 곳인지 관찰하고 그곳에 집중해 보라. 그 느낌이 드는 곳을 찾았다면 그 느낌을 그대로 둘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지 숨을 쉴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그 느낌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라.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라. 숨을 참는 것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로 여겨보라. 당신은 분명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라.
- 숨을 쉬고 싶다는 충동 외에 다른 감정이 당신에게 남아있는지 관찰해 보라. 당신의 몸 안에 존재하는 다른 감정들을 발견했다면, 그것들이 숨을 쉬고 싶다는 충동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마음속에 자리를 마련해 보라. 그 감정들을 당신이 마련한 공간에 머무를 수 있게 해 보라. 숨을 쉬고 싶다는 충동 외에 다른 감각들이 당신의 몸 안에 존재할 것이다. 그것들을 발견해 보라. 그 감각들이 분명 당신의 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잘 기능하고 있음을 인식해 보라.
- 숨을 쉬고 싶은가? 그 생각은 무엇이 만들어내는 것인가? 숨을 쉬고 싶다는 충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의 몸인가? 아니면 당신의 생각인가? 숨을 쉬고 싶어 진다면 그 충동을 당신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생각이라고 가정해 보라.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 스쳐 지나가는 걱정, 호흡에 대한 본능은 당신이 무언가 경험해 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은 당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당신이 만들어낸 것에 휘둘릴 필요가 있는가?
숨을 참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요구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고통은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숨을 참아봤다면 당신은 분명 첫 번째보다 두 번째에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77초로 15초가 증가했다. 당신은 어떠한가?
굳이 길게 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실험을 통해 기꺼이 경험하려는 수용하는 자세가 괴로움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수용은 더 오랜 시간 숨을 참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실험은 숨 참기에 그쳤지만 기꺼이 경험하려는 수용의 자세는 우리 일상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다. 경험이든 생각이든, 원하든 원치 않든 마찬가지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기꺼이 경험하려 한다면 당신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 짧은 글과 간단한 실험 만으로 당신이 삶의 모든 것들을 기꺼이 경험하고 수용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런 기대는 말이 안 된다. 당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서, 경험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에 대해서, 경험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해결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 말을 따를 필요는 없다. 당신이 경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믿으면 된다. 당신의 경험이 ACT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앞으로 제시될 내용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