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나뭇잎 명상, 생각과 감정을 묘사하기,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기

by Lume

연재가 절반을 향해가고 있다. 그동안 연재를 꾸준히 봐주신 분들은 비슷한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괴로움, '생각에 사로잡힌다', '생각을 통해서 본다'와 같은 말들은 결국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ACT(수용전념치료)에서의 핵심은 이런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기에 다양한 말을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 말들을 ACT에서는 '인지적 융합'이라고 한다. 인지는 아는 것이나 생각을 떠올리면 된다. '인지적 융합'이라 함은 알고 있는 것, 생각이나 감정 등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인지적 융합이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주말에 놀러 가자고 연락해야지'라는 생각은 나와 인지적으로 융합되어도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연락을 할 뿐이다. 인지적 융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인지적 융합이 모든 생각에 적용되고 그 정도가 극단적인 경우이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지 30초도 안 돼서 문은 잘 잠궜는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고 있지는 않은지, 냉장고 문은 잘 닫혀있는지 걱정하는 것은 모든 생각에 인지적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예시이다. 또 창문은 잘 닫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집에 도둑이 들거나 방화범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것은 극단적인 인지적 융합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적 융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지적 탈융합'이라 부른다. 인지적 융합은 사람들에게 자동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어나기에 인지적 융합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과도한 인지적 융합을 알아차리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ACT에서는 인지적 탈융합을 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연습시킨다. 대표적인 3가지 기법을 소개하려 한다.



나뭇잎 명상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리며 명상하면 된다. 명상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나뭇잎 명상은 종교적인 명상이 아니고 인지적 탈융합을 위한 연습법일 뿐이다. 제시문을 충분히 읽고 그에 따라서 5분 정도 상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면 된다. 나뭇잎 명상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천천히 흐르는 시냇물을 떠올려보라. 최근에 본 적이 있는 개울이나 지나간 기억 속에 아름다웠던 장면 등 당신이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면 된다. 시냇물은 아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감상하며 그 상상에 잠시 머물러보라.

- 이제 시냇물을 당신의 머릿속에 떠올린 채로 그 밖에 피어나는 다른 생각을 관찰하면 된다. 인식한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의 내용이 나뭇잎 위에 쓰여있다고 상상하라. 당신의 생각이 담긴 나뭇잎은 시냇물을 따라 천천히 떠내려간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 생각들은 모두 나뭇잎에 담겨 시냇물을 따라 천천히 떠내려간다. 더 빨리 떠내려가도록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시냇물이 흐르는 속도에 맞춰 떠내려가도록 가만히 놔두라. 나뭇잎을 떠내려 보내면서 평화로운 시냇물의 풍경에 좀 더 머물러보라.

- 문득 머릿속에서 시냇물이 사라지고 어떤 생각에 잠겨버릴 수 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단지 스스로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 외에 판단은 불필요하다. 다시 차분히 머릿속에 시냇물을 떠올리고 방금 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을 나뭇잎에 싣고 떠내려 보내면 된다. 시냇물이 멈춰버리거나 내가 시냇물의 한가운데에서 떠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또한 괜찮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시 시냇물을 떠올려 그 풍경에 머무르면 된다.


처음 시냇물을 떠올리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시냇물이 떠오르더라도 금세 다른 생각에 의식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는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어서 그럴 뿐 전혀 이상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지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생각과 감정을 묘사하기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하나 떠올려보라. 그리고 그 고통을 내 마음속에서 꺼내어 팔이 닿지 않는 거리쯤에 내려놓아보자. 우리는 이 고통을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묘사해 볼 것이다. 다음의 질문에 맞춰서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자.


- 이것은 어떤 색깔인가?

- 이것은 얼마나 큰가?

- 이것은 어떤 모양인가?

- 이것은 힘을 가지고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

- 이것은 움직일 수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

- 이것은 만질 수 있는가? 있다면 촉감이 어떠한가?


당신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았는가? 당신의 고통은 어떤 모습인가? 당신이 묘사한 고통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어떠한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생각과 감정도 당신의 마음속에서 꺼내어 당신의 고통 옆에 내려놓아보자.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위에 있는 6가지 질문을 따라 한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라.


당신의 고통 옆에 있는 생각과 감정은 어떤 모습인가? 평소 당신이 상상하던 모습과 동일한가? 더 끔찍하고 위협적인가? 아니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지는가? 정답은 없다. 그저 당신에게 느껴지는 대로 경험하면 된다. 이들을 가만히 놔두고 내게 느껴지는 것을 그저 느끼면 된다.


이제 마지막 단계이다. 당신의 앞에 놓인 고통과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모두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것들이 당신을 그토록 괴롭게 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당신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당신이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달리 갈 곳이 없다. 이들을 다시 당신의 마음속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마음속에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보라. 너무 무리하지는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이들을 다시 당신의 마음속으로 되돌려 보내라. 받아주고 품어보자. 그리고 처음 고통과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떠올렸을 때와 비교해 보라. 그들을 다시 마음속에 받아들인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떠한가?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기

대상에 대하여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간단하니 직접 해보자.


- 주변에 눈에 띄는 물건 하나를 골라보자. 그 물건에 대해 사실과 평가를 구분해 보라.

- 최근에 본 영상이나 영화를 하나 떠올려보자. 그 영상에 대해 사실과 평가를 구분해 보라.

-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와 같이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에 대해 사실과 평가를 구분해 보라.


해보니 어떠한가? 사실과 평가가 쉽게 구분이 되었는가? 다시 한번 사실로 구분한 것의 목록을 들여다보자. 당신이 사실이라고 구분한 것에 정말로 평가적인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평가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평가와 사실이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실이 평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사실은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평가받지 않은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를 찾기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평가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한다. 다양한 평가의 가능성을 잊고 자신의 생각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고 굳게 믿고 만다. 내 예시를 들어보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책상에 있는 텀블러에 대해 사실과 평가를 구분해 보겠다.


- 사실: 흰색, 둥근 모양, 용량은 350ml, 무거운 편(정확한 무게를 알지 못함), 뚜껑은 플라스틱

- 평가: 예쁘다. 용량에 비해 무거워 종종 두고 다닌다. 아끼는 물건이다.


나는 내 텀블러에 대해서 하얗고 둥글기에 예쁘다는 평가를 했고, 용량과 무게를 바탕으로 평소 사용하는 방식을 평가했다. 그리고 앞선 사실과 평가를 종합해 아끼는 물건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평가를 바라보는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애초에 어떤 텀블러를 묘사했는지 모르니 전혀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평가로 느껴진다. 당신의 평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당신의 평가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쯤 되니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사실 그 자체는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사실은 평가받을 때 의미가 부여된다. 똑같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생각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의 의의는 그 둘이 구분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에 큰 영향을 준다.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에서 만들어진 평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과 평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을 괴롭히던 경직된 사고방식을 알아차리고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에게는 사실이고 팩트라고 여겨지던 것이 실제로는 나의 주관적인 평가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모든 평가는 오롯이 내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모든 평가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가에 사용되는 잣대는 다양하다. 그 잣대는 개인의 과거 기억과 경험, 부모의 양육, 타고난 기질, 사회나 문화가 개인에게 주입한 사고방식, 가치관, 미래에 대한 기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한 잣대는 필기구에 대한 선호와 같은 아주 간단한 것부터 연인을 만나고 진로를 고민하는 등 평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실에 의해 평가가 자동으로 내려진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수많은 삶의 갈림길에서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과 평가는 구분할 수 있는 것이고 평가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삶에서 더 많은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다.


노파심에 이야기하자면 마음의 짐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나 삶의 갈림길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떠넘기려는 말이 아니다.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는 시도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첫 단계가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절망에 빠져있었다 할지라도 변화의 가능성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인지적 탈융합을 위한 기법 3가지를 소개해보았다. 이 중에 나에게 잘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사실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이 가장 잘 맞는다. 유독 말이 많지 않은가? 이 밖에도 다양한 연습법이 있다. 여러 가지 연습법을 자신에게 잘 맞도록 변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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