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식 전통 환영식과 자기만의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아이들
뉴질랜드 학교생활도 어느덧 한 달을 훌쩍 넘긴 요즈음,
학교로부터 조금 특별한 초대장이 도착했다.
신입생 가족을 위한 마오리식 전통 환영식인
‘미히 화카타우(Mihi Whakatau)’가 열린다는 소식
입학식이 아닌
방학이 다가오는 시점에 하는 환영식이라
의아하기도 했지만,
어떤 세리머니일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올해 처음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들과
가족들이 대기하는 공간이 있었다.
그렇게 다 같이 모여 강당으로 입장을 하는데,
강당 문이 열리는 순간
전교생이 우리를 향해
하카를 부르며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마오리 전통에서 전투에 앞서 행하는 의식이라던 하카.
하지만 공격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노래 부르는 아이들 표정이 어찌나 밝고 예쁜지.
빛나는 눈빛과 장난기 넘치는 미소
그리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노래와 발구름 소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이들이 뉴질랜드 학교에서 배운 파워 넘치는 하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이미 영상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우리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직접 보니,
뭔가 뭉클한 게 마음에서 올라왔다.
하카의 강렬함과
와이아타(Waiata)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환영 노래가 끝난 후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가 이어지고,
학교 스태프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마쳤다.
코를 맞대는 ‘홍이’ 대신 약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따듯한 환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학교 이름에 마오리어가 들어갈 정도로,
토속적인 학교라 그런지
수업시간 중 마오리어에 대한 비중이 꽤 높고
춤이나 노래도 많이 배워온다.
나 개인적으로도 아이들이 마오리 문화를 접하는게 반가운데
전혀 몰랐던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고,
마오리어를 향한 이들의 열린 마음만큼,
우리와 같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기꺼이 포용해 주지 않을까 하는 사심 어린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입학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에서 환영식을 한다고 해서 조금 의아했는데,
낯섦을 걷어내고 그들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지금,
비로소 그 '환영'의 의미가 마음 깊숙이 와닿았다.
아이들 역시 그동안 재미 삼아 배웠던 마오리 문화를
환영식을 통해 접하고 나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느낌이 들었는지
자기들은 이제 완전히 이 학교 사람이 되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올해 2월, year6와 year3로 뉴질랜드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각자만의 속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첫째와 둘째는 서로 다른 성향만큼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도 사뭇 달랐다.
뉴질랜드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이제 초5가 되는 첫째 걱정들을 했다.
슬슬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나이기도 하고
워낙 또래 관계에 민감한 시기에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걱정대로,
마이웨이 성향의 첫째는
초반에 학교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다.
특히 학교 첫날, 담임 선생님이
각자의 특징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학제 차이로 생일이 빠른 첫째를
‘The oldest person’이라고 소개하셨다고 한다.
그 일을 첫째는 두고두고 분해했다.
자기의 히스토리는 다 지워진 채,
같은 연도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이 돼버린 느낌이 들어서
뭔가 억울했던 것 같다.
지인 엄마 중에는 아이 입학 전,
아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구구절절하게 적어서
선생님께 메일로 보냈다는 분도 계시던데,
그렇게 세심하지 못한 엄마인 나를 자책할 수밖에.
그렇게 학교 초반, 아이는 친구들을 조금
어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수학 진도도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고,
한국에서처럼 앉아서 읽고, 쓰고, 듣는 수업보다는
운동장에서 몸을 움직이고 체험학습 위주로 진행되고,
너무너무 착하지만 왠지 러프한(?)
이곳 친구들의 생활 습관이
초반에 영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전지적 작가 시점을 유지하며
친구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모습에
내 속이 새까맣게 타기도 했다.
반면에 눈치 빠르고 사회적 촉이 발달한 둘째는
초반부터 현지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파닉스만 겨우 하고 온 수준이라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같은 반에 뉴질랜드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들이 교복을 어떻게 입는지,
어떤 도시락을 싸 오는지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메뉴를 요청하고,
겁이 많지만 친구들과의 놀이 수준을 맞추기 위해
높은 놀이터도 덜덜 떨면서 여러 번 시도해 본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늘 기모 상하의만 고수하는
첫째와는 달리,
키위 친구들처럼 추운 날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으려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대견하고 귀엽다.
확실히 어리면 어릴수록,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그렇게 나를 걱정시켰던 첫째가
버디 친구로부터 생일 파티 초대장을 받아왔다.
버디 친구가 살뜰히 챙겨준 덕분이겠지만,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주는 기쁨은 무엇보다 컸다.
첫째의 좁은 문틈 사이로 타인의 세상이
느리지만 분명히 스며들고 있다.
아이들이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의 다양한 풍경을 품을 줄 아는 유연함을 갖추게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