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8
다음날 오전, 다이빙 샵에 도착하자 늦은 새벽에야 되찾은 전기 때문에 입은 피해에 대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냉동실 식료품이 다 녹는 바람에 곤란하기 그지없었다며 자파리가 투덜대자, 재희 언니 역시 화장실 때문에 간밤에 난리였다고 불평했다.
태형과 별을 보러 갔다고 말하지 않았다. 숨겨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해서 좋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나는 일주일 뒤 이 곳을 떠날 사람이지만 태형은 당분간 계속 있을 테니, 구설수에 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합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한국인들의 네트워크가 끈끈한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중년 부부가 오픈워터 코스를 등록했다. 자파리와 무스타파가 각각 남편과 아내를 맡아 가르치게 되었으므로 나는 어드밴스 과정의 첫 날을 태형과 함께 하게 되었다. 어드밴스 과정은 30m까지 잠수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며칠 간 갔던 구역을 벗어나 수심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태형과 버디가 되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산소통을 옮기는 태형이 보이자,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귓가에 쿵쿵 울렸다.
“내 산소통 내가 옮길게.”
“그냥 내가 할게. 바닥에 끌면서 옮기면 자파리한테 혼나.”
태형이 내가 맬 장비까지 준비하고 있는 동안, 나는 다이빙 수트를 입었다. 몸에 꼭 달라붙는 다이빙 수트를 입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포츠의 시작은 스포츠웨어를 입는 것부터라는 말을 체감하며, 수돗가로 가서 수트에 물을 뿌렸다. 사이즈가 안 맞는 스키니진에 몸을 욱여넣는 듯한 기분은 며칠을 반복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이빙 수트를 반쯤 입은 태형이 아무렇지 않게 상체를 드러내고 다니는 모습 역시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장비를 체크하고 간단한 수신호를 정했다. 물속에서는 언어로 소통할 수 없으니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해야했다.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지만 날씨는 좋은 편이었다. 우리는 바닷물을 조금씩 몸에 끼얹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거운 산소통을 매고 오리발을 신어서 뒤뚱거리는 꼴이 우스운 것도 잠시, 설레는 마음과 달리 오늘따라 바다가 유난히 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살을 떨어 챙겨 입은 두꺼운 수트를 뚫고 들어오는 찬 바닷물이 몸에 밀착되는 느낌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완전히 입수하지 않으면 이런 기분이 들곤 했다. 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가야지.
부력조절장치를 이용해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압력 평형을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귀에 기압이 쌓이지 않게 침을 삼키거나 코를 손으로 잡고 푸는 행동을 해야 했는데, 타고나게 귀가 튼튼한 탓인지 딱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태형과 나는 우선 얕은 수심의 흙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시선을 교환한 뒤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평평한 수면 아래 언덕에서 천천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순식간에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야 전체가 산호와 주위를 맴도는 물고기로 가득 찼다. 산호 바위의 모양은 제각각이어서, 말미잘같이 생긴 게 있는가 하면 꽃다발 같은 모양새로 늘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조금 투명한 물고기들은 수를 셀 수 없이 떼로 몰려다녔는데, 주로 바위 틈새나 산호 근처에서 쏟아져 나왔다. 곰치, 쏠배감펭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해양생물들이 끝도 없이 있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엄지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지느러미를 활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태형과 내가 호흡기로 만들어내는 공기방울이 새어들어 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눗방울 기계로 만들어내는 것같이 끝없이 나오는 방울들이 머리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찬란했다. 조류에 조금씩 떠밀려 흔들리는 몸이 어릴 적 이불 그네를 탔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해양 생태계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곳을 유영하는 기분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서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는 순간엔 태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산소통과 연결된 호흡기로 산소를 공급 받았고,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호스를 통해 내가 숨을 마시고 내뱉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태형도 눈앞의 장관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이 기분을 태형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런 느낌으로 스쿠버를 하는 거구나. 태형의 눈 앞으로 엄지를 아래로 한 채 내밀었다. 더 아래로 가자.
순식간에 깎아지른 듯 아래로 뚝 떨어지는 지형이 꽤 위험해보였지만 아드레날린에 젖은 뇌가 외쳤다. 할 수 있어. 오리발을 힘차게 뻗어서 아래로 향하는 순간,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바닷물이 다이빙 수트를 파고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때 아닌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도 한 것처럼 온 몸에 얼음을 쏟아 붓는 느낌이 들었다. 수심이 낮을수록 수온이 낮아진다는 말이 무섭도록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춥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한 쪽 귀가 막혔다. 코를 막고 푸는 시늉을 하고 침도 삼켜봤지만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귀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문득 스스로가 깊은 바다 속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인식되었다. 태형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옆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우리 지금 웬만한 건물의 층고만큼이나 수면 아래로 내려온 거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호흡기를 입에 가득 머금은 채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차오르던 흥분이 착 가라앉고, 엄마의 뱃속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던 바닷물이 온몸을 죄이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호흡기를 통해 입으로만 산소를 공급받는다는 게 견딜 수 없는 구속과 같이 폐 부근을 옥죄이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뭍으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