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9
한 시라도 빨리 바다에서 벗어나서 호흡기와 마스크를 벗고 육지의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싶었다. 산소가 호스를 타고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내가 만들어내는 공기 방울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고, 흥분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곳에 있다간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물의 공격에 내가 압축되어 쪼그라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력조절장치의 공기를 집어넣는 인플레이터를 꾹 눌렀다. 위로 가야한다. 위로.
순간 강하게 어깨를 누르는 힘이 느껴짐과 동시에 왼손에 쥐고 있던 인플레이터가 손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따라붙은 태형이 내가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한 손으로 어깨를 붙들고 있는 힘이 강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은 순간적으로 저항할 의지조차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야했다. 놔 줘. 태형의 팔을 잡고 흔드는 사이에 입에 물고 있던 호흡기가 빠졌다. 헉 하고 숨을 들이 마심과 동시에 바닷물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목젖까지 치고 들어온 바닷물은 내 안에 죽음의 공포와 패닉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더 허둥지둥할 것도 없었다. 두 번째로 호흡할 때는 이미 태형이 자신의 보조 호흡기를 내 입에 넣은 후였으므로.
귀가 아직도 아팠다. 귀를 한 손으로 가리키고, 손바닥을 아래로 한 뒤 바닥을 향해 흔들었다. 귀가 아프다는 수신호였다. 태형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펼쳐 나에게 보였다. 아직도 답답한 기분이 가슴에 고여 있었지만, 다시 산소가 호스를 통해 나에게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고, 다시 마시고 내뱉고. 우리는 차츰 차츰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뭍에 가까워질수록 물의 청록빛 색깔이 옅어지고, 그만큼 물 온도가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꼬치에 꿰인 생선처럼 태형의 손에 매달려 힘을 잃고 둥둥 떠올랐다.
“잠수병 걸리고 싶어? 그렇게 갑자기 올라가면 어떡해!”
수면 위로 올라와 입에서 호흡기를 떼자마자 태형이 버럭 소리쳤다. 폐가 받는 압력 때문에 갑작스럽게 올라가면 안 된다는 건 이론 교육 때부터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드는 속수무책의 두려움 앞에서 이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 화를 내···.”
잘못한 걸 알고 있었다. 나이 서른 먹고 잘못한 사람이 우는 게 꼴사나운 것도 알고 있었다. 입에서 느껴지는 짠 기운이 눈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물 때문인지 아까 삼킨 바닷물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살았다는 안도감,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행복함, 그리고 태형에게 느끼는 고마움이 목구멍 부근에서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용암처럼 녹아 몸속에서 표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화내는 걸로 보여?”
눈물과 콧물 때문에 습기로 가득한 내 마스크를 응시하며 태형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나가자 일단.”
멍하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태형이 물었던 호흡기를 다시 빼고 덧붙였다.
“다리 힘 빠졌지. 끌고 가줘?”
평소에 남에게 부탁하는 걸 잘 못하는 성격 같은 건 파도에 다 휩쓸려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힘차게 움직이던 오리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물에서 너무 놀라면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더니, 딱 그랬다. 나는 얌전히 부력조절 조끼를 내맡기고 태형에게 행사장 사은품처럼 딸려서 뭍으로 나아갔다. 꽤 먼 거리를 헤엄치는 태형에게 꿰여 가면서 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태형이 재현과 만난다면 서로를 어떻게 대할까, 뭐 그런. 스스로가 참 염치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생각이었다.
자파리는 나에게 혀가 떨어져 나갈 만큼 달콤하고 뜨거운 홍차를 내주었다. 그야말로 설탕을 쏟아 부은 맛이었지만 어쩐지 나중에 생각날 것 같은 맛이었다. 뜨거운 홍차를 후후 불며 보라색으로 질린 입술을 녹였다. 이제야 진정한 다이버가 되어가는 것이라는 위로는 디저트처럼 달았다. 하필 태형과 버디일 때 패닉이 왔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애초에 위험한 일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는 내가 그런 충동적인 일을 저질렀다는 게 스스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주 원인이었지만, 혹여나 잘못되더라도 태형이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을 내심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다이빙 샵을 벗어나 라이트 하우스 앞 해변가를 걸었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했다. 민트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에 사람들이 반쯤 잠겨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노란색 공이 둥글게 모인 사람들 사이로 통 통 튕겨져 다녔다. 배구를 하듯이 손을 앞으로 모은 남자가 힘 있게 공을 쳐내자 공이 저 멀리 튀어 가 파란색 튜브를 낀 아이에게로 떠내려갔다. 상의 탈의를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서양인들은 피부에 올라온 붉은 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 베드에 늘어져 있었다. 선 베드 위로는 펄럭이는 네모난 천막이 햇볕을 막아주었지만, 종아리까지 쫓아오는 집요한 햇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태형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지.
샵으로 돌아가자 샤워를 마치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태형이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었다. 머리카락 끝부분이 덜 말라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수건을 바구니에 던지는 무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두면 머릿결 다 상하는데. 샤워를 했는데도 모래가 묻어있는 발을 슬리퍼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는 게 참 태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말려 줄까.”
황당하다는 얼굴로 돌아보는 태형이 새삼 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갑자기?”
“갑자기.”
“그래 그럼.”
태형이 벌떡 일어나 새 수건을 가지러 가는 시늉을 하다, 진짜로 할 기세인 내 눈치를 보더니 도로 앉았다.
“왜 그러는데.”
“왜 그러긴.”
그러니까. 왜 그럴까. 드라이기라도 있으면 네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말려주고 싶어. 죽을 뻔 한 걸 구해줘서 갑자기 은혜 갚는 까치에 빙의한 건가. 멀리 여행 와서 신이 나서 이러나. 오랜만에 날라리 같은 남자애랑 노닥거려서 그런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런가.
“좋아서 그런가.”
아까부터 목 부근에서 울렁거리던 뜨거운 말이 결국 튀어나가고야 말았다. 그것도 가장 등신같은 방법으로. 등신 같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었다.
“뭔 소리야.”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은 자파리가 나와 태형이 있는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만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 걸 눈치 챈 것 같았다.
“패닉 올 때 버디끼리 구해주는 거, 스쿠버 하다 보면 예삿일도 아니야.”
차분히 거절의 멘트를 읊기 시작하는 태형의 얼굴은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곤란해 보였다. 자기가 곤란할 게 뭐가 있어.
“아, 알겠다고.”
심각해지는 분위기가 싫어 짐짓 과장스럽게 말꼬리를 늘여 태형의 말을 싹둑 잘랐다. 이 이상 이야기해서 사이가 어색해지는 건 싫었다.
“이따 블루 홀은 갈 거지?”
태형이 눈치를 살피며 물어왔다. 오후에는 초급 과정인 오스트리아 부부를 제외하고 자파리, 재희 언니, 무스타파, 태형과 나 모두 라이트하우스에서 조금 떨어진 다이빙 스팟인 블루 홀에 갈 예정이었다.
“몰라, 보고. 왜.”
거절당했다고 쪼잔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절로 불퉁해졌다.
“갔으면 좋겠는데. 거기 예뻐.”
생각해주는 마음이 갸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하려다, 지성인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것만은 참아냈다. 어떤 다른 의도도 없어 보이는 눈빛에 오히려 속이 답답해졌다.
“가야지. 다합의 블루 홀인데.”
“그래. 그럼 좀 쉬어.”
원래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느긋하게 소파에서 쉬곤 하던 태형이 어디론가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방금 거절해놓고 함께 있는 게 불편해서 억지로 다른 곳에 간 것 같았다. 비로소 혼자 남게 되자 얼굴이 화끈해졌다. 좋아서 그런가? 요즘 초등학생도 그렇게는 안 말하겠다. 생각의 흐름을 타고 흘러나온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주워 담고 싶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거겠지. 내심 어리고 앳되게 행동한다고 얕보고 있던 태형에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게 민망했다. 한마디로 쪽팔렸다.
다리를 떨면서 생각을 하다 보니 태형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럼 그동안의 그 다정한 행동들 다 뭔데. 정전 됐을 때 뭔데. 가서 따질까. 하지만 여기서 더 우스워질 수는 없었다. 태형의 입장에서는 타국에서 같은 한국인끼리 좀 챙겨줬더니 냅다 고백 공격을 받은 셈 아닌가. 게다가 물에 빠진 걸 구해준 직후라니, 완전히 드라마 속 주인공병에 걸렸다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문득 재희 언니가 태형이 인기가 많다고 말한 사실이 떠올랐다. 서율이가 태형을 좋아해서 한 말일까, 아니면 원래 스쿠버 샵에 오는 한국인 여자들에게 태형이 인기가 많아서 한 말일까? 객관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태형이 나쁘진 않지, 그리고 또 일단 스쿠버를 잘하니까 매력 포인트가 되고···.
폭주하는 감정이 널을 뛰었다. 상상 속에서 태형은 다이빙 샵에 오는 한국인 여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고, 하룻밤을 보냈고, 또 다시 펀 다이빙을 나갔다. 어느덧 태형의 장기여행은 여자들로 덧그려져 가고 있었다. 재희 언니에게 태형이 인기가 많다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볼 걸. 이제 와서 뒤늦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둘이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혐의를 받고 있던 찰나였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태형에게 어장관리를 당한 것 같기도 했다. 진짜 직원도 아니라면서, 그렇게까지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할 필요가 있나? 영업직이야 뭐야. 지금까지 태형의 어장을 스쳐지나간 물고기는 몇일지, 나는 그 중 어느 정도 규모의 포획 대상인지를 가늠하다가 덜덜 떨던 발의 슬리퍼를 떨어트렸다. 됐다.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