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1
절벽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야 했다. 보트 다이빙은 처음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트 다이빙은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보트에서 허공에 수직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바다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설명은 충분히 들었지만 허공으로 걸어 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해 보기도 전에 자신이 없어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파리가 시범을 보였고, 두 번째 타자는 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바다의 부력 때문에 물에 떠오르지 않기 위해 허리에 찬 7킬로그램의 웨이트가 허리 위에서 무겁게 아래로 잡아끌었다. 미끄러운 보트 위에서 순간 휘청하자 태형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어깨를 잡으라 내어줬다. 부력조절조끼의 벨트가 덜 체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 태형이 군소리를 하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사람들 기다리는데 안 해놓고.”
태형이 내 장비의 벨트를 당겨서 길이 조절을 해주는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시끄러운 보트의 엔진 소리에 숨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는 왠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태형도 마냥 아무렇지 않지는 않은 것 같았다. 미끄러지는 손놀림이 물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태형이 무릎을 굽혀 오리발을 신는 것까지 도와주고 나자 입수할 준비가 다 되었다. 보트의 가장자리로 가서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뛰어 내릴 수 있을까.
자파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둥둥 떠서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얄라 얄라! 아랍어로 렛츠 고, 라는 의미였다. 일단 따라 외쳤다. 얄라 얄라! 보트 다이빙을 처음 하는 나를 위해 나머지 사람들은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왼발을 뒤로 빼고 오른발을 허공에 뻗었다. 오른손으로 마스크가 벗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마스크의 코 부분을, 왼손으로는 밴드 부분을 잡았다.
역시 바다로 뛰어내리는 건 헤엄쳐서 들어가거나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달랐다. 보트와 바다 사이의 야트막한 높이가, 그 잠깐 동안 허공에 머무를 시간이 나를 두렵게 했다. 풍덩, 하고 빠질 그 순간이 예상이 되면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동네 수영장에서도 다이빙이라고는 해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팔과 심장 부분에 물을 묻히고 발끝부터 들어갔던 게 전부였다. 움찔, 움찔하면서도 발을 내딛지 못하자 보다 못한 태형이 나섰다.
“내가 다시 한 번 보여줄게. 나 하는 거 보고 따라 해봐.”
빠른 손놀림으로 장비를 체결하고 호흡기를 입에 문 태형이 팔을 교차해서 마스크를 잡더니 거침없이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다. 요란한 풍덩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에 잠시 태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 곧이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땅에서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허공으로 다리를 뻗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감탄도 잠시, 부러움이 파도처럼 일었다. 안전 불감증인가. 어떻게 잠깐도 멈칫하지 않고 뛰어들 수가 있냔 말이야. 재희 언니의 옆에서 내가 먼저 할까, 하는 말에 마음이 촉박해졌다.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마스크를 손으로 잡았다. 오른다리를 보트 바닥에서 떼어 허공 위로 뻗자 두려움이 펌프로 주입한 듯 다시 공급되었지만, 이번에는 해야 했다. 할 수 있었다. 태형과 자파리가 외쳤다. 다이브!
다이브를 한 건지, 심청이 인당수 몸 던지듯 몸을 던져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입수에 성공했다. 해냈다. 발끝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 정수리까지 타고 올라가서 물방울을 타고 다시 내려오는 것 같았다. 잠깐 가라앉았던 몸이 조끼에 의해 다시 떠오르자, 엄지 척을 내밀고 있는 태형과 자파리가 보였다. 뛰어들어버렸다. 던져버렸다. 아직 블루 홀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보트 다이빙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함이 차올랐다.
블루 홀의 수직으로 이어진 동굴은 아치형의 홀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얕은 수면은 햇볕으로 가득해, 그에 반사된 물빛이 아름다웠다. 나는 유달리 맑은 해수의 색에 감탄하며 차분히 공기방울을 만들어냈다. 라이트하우스 앞바다와는 차원이 다른 영롱함이었다. 우리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디플레이터의 공기를 빼 천천히 수직으로 하강했다. 십 미터를 지나자 태형이 내 어깨에 손을 한 번 얹는 게 느껴졌다.
단순히 수심이 깊어질수록 해수의 색이 짙어지는 것과는 달랐다. 한 명씩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절벽 틈을 지나는 동안 앞서 가는 사람이 뿜어내는 공기방울이 잠시간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아치를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자 동굴 형태의 벽 사이에 짙은 푸른색으로 가득 찬 해수가 스며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여서 묘한 굴절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산호초가 수직의 벽을 타고 늘어져 있는 모양새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새끼 손톱만한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을 눈으로 좇다보니 투명한 새우와 반짝이는 조개도 볼 수 있었다. 모두 라이트하우스 앞바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울퉁불퉁한 동굴 벽을 따라 물고기와 바다 생물들이 헤엄쳤다. 깊은 어둠 속 거의 보랏빛에 가까운 바다 속에서 물고기 색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푸른빛이 짙은 곳에서 중성 부력을 유지하며 유영했다. 듣던 대로 조류가 심해서 몸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각자가 내뿜는 공기방울들은 벽에 부딪혀 터지거나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벽을 타고 약 삼백 미터를 이동하면서 무스타파는 고프로로 사진을 찍었다. 아마 물속에서 얼굴은 마스크에 눌려 팅팅 불었겠지만 브이를 내밀었다. 새삼 다합에 와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브이로그를 찍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지내느라 영상은커녕 핸드폰을 만질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좋았다. 못 보고 지나친 스토리가 쌓여서 사라질수록 만족스러움은 커져갔다.
우리는 천천히 상승하면서 헤엄쳤다. 수심이 조금씩 얕아질수록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의 색을 알아볼 수 있었다. 주황색, 노란색 물고기들이 수십, 아니 수백 마리씩 있었다. 버섯 같기도 하고 브로콜리 같기도 한 산호들이 빽빽하게 바닥을 채웠다. 자파리에 따르면 산호는 매년 일 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는다는데, 이 많은 산호들이 이만큼 자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체감이 되지 않았다.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얕은 바다일수록 황토 빛에 가까웠지만, 종종 슬리퍼를 벗고 종아리까지만 발을 담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이가 손으로 치는 물장구처럼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가 종아리를 간질이는 느낌이 기꺼웠다. 고요하다 싶을 때쯤 하얗게 밀려오는 포말을 구경하는 것 역시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더 깊은 바다로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이제 나는 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육지에서 손 그늘을 만들고 인상을 얕게 찌푸리며 바라봐야 하는 그 곳, 그 아래의 세계에 접어들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나에게 환희를 주었다. 짙은 푸른색으로 보이는 미지의 수면 아래에 뛰어들었다는 그 경험만으로도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 몰랐다.
나는 태형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걸까. 태형은 나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그 행동들은 단순한 호의에서 나온 행동들인 건가. 한국에서 보자는 서율이의 말은 왜 거절당했을까. 이런 물음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발끝을 살짝 물에 담궈 본다 한들 깊은 바다의 내면은 알 수 없다는 걸 온 몸으로 느꼈다. 부닥쳐야 했다. 깊이 빠져들어야 했다.
수면 위로 올라와 보트를 타고 육지로 돌아가면서 재현에게 끝내 묻지 못한 물음들을 떠올렸다. 재현은 늘 좀 더 자신에게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렇게 내가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어도 넌 날 그만큼 사랑해줬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알아서 한다는 말에 재현은 늘 말했다. 힘든 티가 다 나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항상 곁에 있을 누군가를 은근히 찾아 헤매면서도 막상 옆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내가 못난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순간, 튼튼한 벽돌이 아니라 성냥개비로 지은 집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나를 떠날 것 같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어둡고 차가운 심해에 잠겨 있었다. 춥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쳤다. 사실은 이 곳 그렇게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재현에게 말하지 못했던 말들은 아직도 웅크려 있었다. 그러나 이젠 탈출해야했다. 이제는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