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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Sep 26. 2020

혼자 걷는 이집트-2

카이로, 룩소르 여행기

(본 여행은 2017년에 다녀왔습니다)



바하리야 사막에서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카이로로 돌아왔다. 카이로 공항에서 바로 사막으로 갔었으니 카이로 시내는 처음 본 셈이다.



내리자마자 보였던 버스 정류장. 이 앞 도로로 오토바이,차, 사람이 한번에 다니는데, 아무도 신호를 안 지키고 지 멋대로 길을 다녀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여기서 길을 잘 건너고 다닐 수 있을까?



카이로에서는 혼자 자는 게 좀 위험할 것 같아서 일부러 부촌에 있는 한인 민박을 예약했다. 마을에 있는 맥도날드와 베스킨 라빈스가 문득 반가웠다. 주주도 아닌데 웃겨 증말.
외국 여행 가서 한국인들끼리 열심히 놀다 오는 걸 지양하는 편이라 한인 민박은 잘 가지 않는데, 카이로 한인 민박에서는 이용객이 나 혼자밖에 없는 바람에 막상 아무도 없으니 외로웠다. 해질 무렵에 돌아가서 다음날까지 한 마디도 안 하는 생활이 며칠 간 반복되니 생각이 얼마나 많아지던지.

그래도 다행히 카이로 이튿날엔 사막 투어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과 카이로 시내를 같이 다닐 수 있었다. 카이로에서 제일 큰 광장인 타흐리흐 광장에서친구를 기다리는데, 옆에 어떤 남자가 갑자기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너 쳐다보고 있는 걸 아냐고 물었다. 반경 1km에 동양인 여자는 나밖에 없는 걸 그 때 알았다. 허허.




동갑내기 친구들과 같이 걸으니 용기가 생겨서 이튿날엔 많이도 돌아다녔다. 맛있는 과일주스 가게를 소개 받아서, 생과일을 그대로 갈아 넣은 주스를 말도 안되게 저렴한 가격에 먹어서 기분도 좋았다.


코샤리 라고 하는 이집트 대표음식도 먹었는데, 렌틸콩, 쌀, 병아리콩에 파스타를 섞어 먹는 알 수 없는 음식이다. 향신료 맛이 엄청! 강한데 먹다 보면 나름 중독성이 생긴다. 베트남 사람들이 간단하게 쌀국수를 끼니를 때우는 것처럼 이집트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이집트 전통과자도 먹었다. 왜 더운 나라 사람들은 유과같은 디저트를 좋아할까? 사진으로 볼 수 있듯이 엄청엄청 단 맛이다. 설탕이며 조청이며 다 때려부은 듯한 맛.


룩소르로 가는 메가버스 티켓을 미리 구매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차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서 나에게 일년에 하루 정도 오는 비라고 자랑을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했다.


다음 날엔 혼자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사실 이집트 여행을 온 것도 별 계획 없이 죽기 전에 스핑크스랑 피라미드를 봐야겠다 이왕이면 젊을 때! 하는 생각으로 온 거라, 삐끼가 엄청 많다는 말을 듣고도 혼자 용감하게 갔다.
근데 정말...피라미드 근처에 가면 '낙타삐끼'가 많다. 피라미드는 너무 넓어서 낙타를 타고 구경해야 하는데,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장사꾼들의 바가지가 장난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본인이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라며 아들 얘기를 주구장창 하던 할아버지도 결국 낙타삐끼였다. 30분이나 대화를 했는데...절대 안 속을거라고 단단히 마음 먹었던 나도  스토리텔링 삐끼의 짬은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소개해 준(결국 넘어감) 피라미드 낙타 투어 가이드는 거의 포토그래퍼 급의 성과를 내주었다! 내 포즈가 부족하다고 혼신의 코치를 해줘서 예상치도 않게 사진을 엄청 찍었다.

피라미드를 실제로 보면 되게 감동받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미디어에서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크기는 진짜 놀라웠다. 돌 하나가 내 키보다 큰데, 버스 타고 8시간은 가야하는 룩소르에서 가져온 돌들이라고 했다. 나름 많이 알아보고 갔는데도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실제로 보니까 감이 안 잡혔다.

히잡이라도 쓰면 좀 덜 튈까 했는데 '히잡 쓴 아시안 여자애'가 되어버려서 오히려 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랍권 국가에서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한 것도 있지만 진짜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걸어가는데도 온갖 사람들이 캣콜링하고, 난데없이 페북 친구 하자고 들이대는 이집트 남자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씩 해 주고 싶었다. 물론 현실에선 ㅎㅎ...아이 해브 투 고 홈..이러고 말았지만.



혼자 칸 엘칼리리 시장 가서 차 마시면서 시샤도 하고, 생각도 정리 하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동생이랑 언니, 내 이니셜을 아랍어로 새긴 은 목걸이도 샀다. 부질없는 거 아는 데 왜 매번 이런 걸 살까? (4년이 지난 지금 그 목걸이는 파우치 속에서 곱게 녹 슬어가고 있다)

카이로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또 다시 9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룩소르로 향했다.

룩소르에는 정말 만도가 있었다. 먼저 룩소르에 다녀 온 친구들이 룩소르에는 만도라는, 한국어를 무척 잘 하고 카톡도 있는 이집트인 가이드가 있다고 했다. 합리적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매칭해 준다고 하기에내가 연락처를 달라고 하자 친구들이 그냥 룩소르에 가면 만도가 있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진짜 한국인이라면 룩소르에 가서 만도를 만날 수 있다.
아침 7시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예약해 둔 호텔로 가려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한국인? 만도 필요해? 난 만도 사촌' 이러면서 나를 만도에게 데려다주었다. (그 땐 겁도 없이 오토바이를 얻어 탔다) 만도는 진짜 한국어를 잘 했고, 카톡이 있었고, 내가 예약한 호텔보다 자기 호스텔이 훨씬 싸다고 나를 꼬드겼고, 아니면 닭볶음탕이라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왠지 부담스러워서 다른 투어 업체를 이용했지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룩소르는 대략 이런 분위기다. 사람들이 아직도 교통수단으로 노새인지 말을 타고 다니는 게 낯설었다.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말이 불쌍하기도 하고.

다합에 가기 전 룩소르에 들린 건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룩소르 신전과 열기구. 열기구 투어는 새벽에 일찍 룩소르 근교로 나가 열기구를 타면서 일출을 보는건데, 해 뜨는 것에 별로 감흥이 없어서 그런지 그저 그랬다.
그게 아니면 조금은 감동 받았는데, 혼자서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몰라서 멋쩍게 혼자 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글에서 자기는 슬픈 건 혼자도 슬퍼할 수 있지만 혼자서는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봤는데, 어쩌면 나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다음 글에서 룩소르, 다합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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