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정확히 1년을 투병하시다가 집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이 암인 것을 모르셨으니 임종이 가까워오는 자신의 상태에 엄청난 공포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모르게 하자고 했던 엄마의 형제들 선택으로 할머니는 내가 왜 죽는지 모르는 채 그렇게 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려고 이사 오면서 한 가지 더 바뀐 게 있었다. 엄마의 직업, 엄마는 외삼촌이 운영하던 학원에서 같이 일했다. 진심으로 누나를 위한 거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도 그 누구도 삼촌한테 물은 적 없지만, 같이 학원을 하면서 엄마는 잘 되지 않는 동생의 학원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 바보처럼 자기의 명의로 빚을 져가며 돌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아이를 키운다는 이혼녀가, 형제가 먼저였던 것. 물론 엄마도 나중에 가서는 발 빼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엄마도 동생이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생각하고 처음 발을 들였으니. 그래도 엄마에겐 자식만큼 중요한 존재들이 친정식구들이다. 아직도.
모든 게 처음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할머니를 나름 잘 보내드렸다. 난 3일을 1초도 못 잤다. 사람이 3일을 못 자면 세상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기절하듯 잤다. 3일장, 그 중간에 아빠가 다녀갔다.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번개처럼 달려왔다. 역시, 아빠.
다들 당황해하고 있을 때 아빠가 모든 걸 나서서 하나하나 정하고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는 자신의 상복도 대여해왔다. 빈소에 조금 앉아있더니 급하게 왔으니 집에 다녀오겠다 했다. 몇 시간 뒤 돌아온 아빠는 상복을 입지 않고 작은 종이백을 대신 들고 왔다. 아빠는 말했다. '아빠가 3일 내내 있으려 했는데 일이 생겼어. 이건 아까 대여했던 상복이야.'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났다. 왠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아빠의 가슴을 주먹으로 팍팍 치며 대성통곡했다. '아빠 무슨 일이라도 접어놓고 와야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빠 알잖아 할머니가 아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빠는 나를 꽉 안아주며 볼을 부비며 부자는 그렇게 살벌하게 울었다. 아빠가 가고 난 뒤 반납할 상복을 보니 깨끗하게 다려져 있었다.
탈상을 하며 우리에게 남은 건, 빛. 학원빚은 물론이거니와 5만원 항암제가 불어다 준 파도. 우린 그냥 철썩거리는 그 파도를 맞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