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폐암 4기였다. 근데 그렇게 조용히 그냥 병원이나 한 번 가보자는 식으로 말했던 것. 바보. 뇌에도 퍼져있고, 임파선(림프절), 뼈, 자궁, 난소 전부 퍼져있었다. 그때부터 할머니와 나의 투병은 시작된 것이다. 할아버지도 힘들어하셨다. 고관절이 부러진 걸 핀을 박고 인공관절을 넣었다. 그냥 당연하게 일어나서 걸으실 줄 알았다. 무지했다. 노인은 그렇게 해서 몇 주만 누워있어도 제대로 서지 못했다. 할머니도 그랬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휠체어와 기저귀가 함께 했다.
간병인은 내가 최고였다. 낮에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딱이었다. 물론 할아버지도 보조 간병인으로 함께 해주셨지만, 내겐 할아버지도 힘든 존재였다. 마치 군인처럼 평생을 공무원 생활을 하신 분, 세상 까다롭고 세상 모시기 힘든 분이었다.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옛날 분으로 딸네 집에 얹혀사는 기분으로 함께 하기 시작하셨던 분이셨던 것. 아무거나 더 까탈스러우셨다. 다 맘에 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유일한 쉼은 엄마의 형제들, 할머니의 자식들이 와서 일 손을 늘려주는 주말 같은 날이었다. 언젠가 생각해보니 너무 그 쉼에 취해있었나. 그냥 그렇게 하루 이틀 함께 하는 것 뿐이었다. 어린 조카가 본인들의 부모를 모시는데 누구 하나 용돈도 쥐어주지 못했다.
할머니는 그냥 폐암 환자가 아니었다. 최근에 티비를 보니 할머니가 드시던 약이 나왔다. 세상에 혁명을 일으킨 폐암 항암제로. 너무 좋다고 하더라. 건보료도 지정되어 약값도 얼마 안 한다고. 할머니는 그때 그 약을 드시던 폐암 환자였다. 임상대상으로. 하루 한 알 드시는 건데, 한 알에 5만원이었다. 30일이면..
엄마는 할머니를 살리려니 엄마의 세상 모든 건 더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