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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 sugar Jan 18. 2017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그 무엇

에콰도르, 쿠엔카에서의 하루

한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을 선뜻 따라나서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 촘촘한 아파트에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만큼 치안이 좋은 나라를 찾아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당히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가진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의도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은 곳에서 우연히 잊지 못할 행복의 순간을 만날 때가 많다.

너무나도 낯설고도 낯선 나라와 사람들에게서-



그날은 에콰도르, 쿠엔카에 도착한 날이었다.

바뇨스에서 오전 일찍 버스를 타서 오후가 다 되어서야 쿠엔카에 도착했고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찾아야 했다.

에콰도르는 남미 나라들 중에 물가가 조금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가격이 맞으면 1인실 숙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숙소 찾는 일이 영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1인실 숙소는 가격이 꽤 비싸고, 가격이 저렴한 1인실 숙소는 시설이나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도미토리를 쓰기에는 불편하고 뭐든지 가진 것에 마음을 맞춰야 하는데 이상하게 욕심이 생기는 날이었다.


그렇게 어디에 마음을 맞춰야 할지 고민하며 앞뒤로 배낭을 메고 지친 기색으로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백인 남자와 남미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보고서는 자기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백인 남자가 내게 여행 왔냐며, 숙소를 찾고 있냐고 한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좋은 숙소를 알고 있다고 소개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경계심을 가지고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계속해서 내게 같이 가자며 아주 좋다고, 새로 지은 호스텔인데 소개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가격의 1인실을 찾고 있다고 너무 비싸도 안 된다고 계속해서 손사래를 쳤는데도 계속해서 나를 이끈다. 계속되는 그들의 유혹에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뭐, 커플인 것 같고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으니 한번 따라가 보자는 생각에 그들을 따라나섰다.

가는 동안 이야기를 해보니, 남자는 네덜란드 사람이고 여자는 에콰도르 사람으로 둘은 갓 결혼을 했고 수도 키토에 살고 있는데 신혼여행차 여자의 어머니가 계시는 여기, 쿠엔카에 놀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친적분이 얼마 전 호스텔을 새로 차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그야말로 헌팅당해 도착한 호스텔은.. 오 마이 갓! 호스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배낭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호텔에 가까운 곳이었다. (도미토리는 없는 곳이었다.) 

역시나 가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비쌌다. 숙소의 컨디션을 보면 당연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숙소는 너무 좋고 마음에 드는데 나에게 너무 비싼 가격이다. 너네도 보다시피 난 배낭여행자이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니, 그들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도 아직 많이 없으니 가격을 맞춰주겠다고 너의 친구들에게 많이 소개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파격적인 가격에 나는 남미 여행 6개월을 통틀어 손에 꼽는, 기억에 남는 좋은 숙소에 묵게 되었다.


Casa Izkun ( Address - Mariano Cueva 9-69 y Gran Colombia, Cuenca Equador)


방도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카페를 겸하고 있는 로비였다.

2층 구조의 숙소 중간이 천장까지 뻥 뚫려 있어서 넓어 보이고 호스텔을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느낌에 마음도 후련해진달까? 인테리어 또한 클래식한 느낌으로 세련되었다. 그리고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뭔가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아름답던 장면도 떠오르고, 묵는 내내 이 로비에서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인터넷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더랬다.


지구 반대편, 그 이름도 생소했던 에콰도르라는 나라에 와서 거기다 수도도 아닌 쿠엔카라는 도시에서 생면부지,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 준 이 기적 같은 우연이 나의 여행을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친절한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여행 수칙을 생각하며 경계하고 또 경계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들은 내게 너무 큰 호의를 베푼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얘기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럼 당연히 낯선 사람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 드라마 같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이렇게, 그 드라마가 벌어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선 그 환경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그 낯선 무엇인가와 부딪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낯선 무엇인가가 행복일 수도 또는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열어야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여기 에콰도르, 쿠엔카에서뿐만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내내 만난 현지의 낯설지만 친절했던 또는 불친절했던 많은 사람들 - 

이렇게 낯선 사람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이러한 우연을 만나고 행복을 느끼는 것. 이것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구나 싶다. 


그곳, 에콰도르 쿠엔카에서 만난 낯선 사람으로 인해 만나게 된 낯선 행복을 기억하며 오늘도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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