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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Oct 13. 2023

괜찮은 듯하다 괜찮지가 않고

괜찮지 않다가 또 괜찮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요청을 잘하지 못한다. 그것이 일이든 사적인 것이든 말이다. 어릴 시절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모르겠다. 대가족에 아버지는 외벌이 셨기에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며 살았다. 아버지는 스스로에겐 관대했지만 가족들에겐 인색한 분이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선 말이다.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흔쾌히 받았던 적이 없다. 용돈이라도 필요한 날이면 심호흡을 한 후 어렵게 어렵게 얘기를 꺼내야 했다. '데려다 달라, 데리러 와 달라, 이것 좀 해달라' 이런 얘기는 할 생각을 안 했다. 어린 시절에 반복된 경험은 나에게 '거절감'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흔적을 남겼고 나이가 든 지금도 옅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나 자신을 봤을 때 거절감에 대한 방어기제가 높다고 생각한다. 거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고 애초에 부탁이나 요청을 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거절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절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경우만 노린다고 할까? 주변 사람들에게 징징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안된다고 하면 쉽게 단념해 버리는 상황들이 많았다. 내가 느끼는 거절감을 최소화하려는 최선의 노력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신에게 달라고 요청을 한다. 합격이든 건강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남들은 잘하는 그게 나는 되지가 않았다. 내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것 같아 염치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아팠던 8년의 시간 동안 '엄마 좀 고쳐주세요.'라고 강력하게 기도를 했던 적이 없었다. '엄마가 치료가 되어도, 되지 않아도 이유가 있겠지요.'라고 생각했다. 신이 하시는 일에 대한 신뢰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시한부선고를 받고 난 뒤 기도를 드리는데 머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평안하게 잘 죽게 해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살려달라고 해야 하나... 머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이 옳은 기도인지 몰랐다. 마음이 우왕좌왕하던 중에 나의 진짜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엄마 좀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죽는 게 무섭냐는 질문에 엄마는 전혀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신앙을 가졌던 엄마였기에 천국으로 향하는 죽음의 길은 엄마의 인생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8년 간의 긴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은 엄마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인 것이다. 엄마만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쁘고 천국 가는 그 길을 축하해 줄 수 있었던 흔쾌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고 괜찮은 줄 알았다. 


신에 대한 원망이라곤 내 마음에 없다고 생각을 하며 지냈다.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당신에게 맡깁니다.'라고 신에게 기도했지만 사실은 엄마 고쳐달라고 살려달라고 조금만 더 옆에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천국에 가셨으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게 신의 사랑이고 선하심이 맞냐고 울고 불고 하고 싶은 것이 진짜 마음이었다. 

 



괜찮은 듯하다가 괜찮지가 않고

괜찮지 않다가 또 괜찮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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