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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ug 26. 2023

의도치 않은 등짝 스매싱

선물이엄마의 엽서 한 장

이틀 전 직장으로 느닷없이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보낸 이에게는 주소와 함께 '선물이엄마'라고만 되어있었다. 이름이 없었지만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선물이엄마, Y하고의 만남은 17년 전쯤인 듯하다. 교회 선후배 사이로 처음 만나 관계가 크게 깊어질 계기가 없이 3년을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교회를 통해 알게 된 NGO 캠프에 각자 지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이 되었다. NGO에서 운영했던 캠프는 분쟁지역에 팀으로 한 달간 살면서 평화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Y와 나는 같이 팀이었다. 한 집에서 함께 자고, 먹고, 활동하면서 한 달간을 함께 지냈다. 그렇게 식구로 시작된 인연이 17년 동안 이어져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Y와의 관계가 더 특별하다 생각되는 건 내 생일과 Y부부의 결혼기념일이 같은 날이기도 하다.)




"감사한 사람에게 엽서를 쓰게 되었는데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언니였어. 청춘의 행복했던 순간도, 방황하고 힘들었던 순간도 언제나 곁에서 언니가 묵묵히 응원하며 있어줘서 정말 감사했어. 지나고 보니 참 많이 힘이 되어주는 언니라는 존재가 내 삶에서 큰 감사야."


감사하게도 Y는 나를 늘 큰 존재로 봐준다. 그리고 Y의 편지글을 읽고 있자니 마치,


"언니의 행복한 순간, 방황하고 힘든 순간도 언제나 곁에서 언니를 묵묵히 응원하며 있어줄 거야. 내가 힘이 되어줄게"


라고 나에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를 보내고 3개월, 지금은 벌써 3개월보다는 겨우 3개월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녀오고 운동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다독여지지 않는 마음은 매 순간이 유난스럽고 유별나기만 하다.


제습기에 물이 차는 거 마냥 마음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 물방울이 한가득 차올라 제때 비워내지 않으면 작동이 멈춰버리는 그런 상태, 습기를 한껏 머금은 솜 같은 마음을 햇볕에 한껏 말렸으면 좋겠는데 방법을 모르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는 대충 그런 상태로 살고 있는 듯하다.




이런 내게 Y가 보낸 ‘감사 엽서’는 마음의 다독임 되고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기도 했지만 의도치 않게 ‘(약한) 등짝 스매싱’이 되어주었다. 내게 주신 사람들과 환경을 난 잘 누리며 감사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계속 무거움 속으로 끌고 가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내 감정을 과하지 않게 충분히 느끼고 돌아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계기가 되고 있다.


‘남을 위해서 말고 스스로를 위해서 힘을 내야 해’


며칠 전 직장 선배가 건넨 말에 처음엔 ‘왜 그래야 하지?’라는 물음이 생겼지만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고자 찬찬이 곱씹어 보는 중이다. 봄 볕에 땅이 녹 듯이 마음에도 그렇게 볕이 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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