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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ug 23. 2023

생일 할인 쿠폰

예기슬픔과 방어기제

두 달전쯤 구청에 가서 엄마의 사망 신고를 할 때였다.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있긴 했지만 무겁지는 않게 민원실로 들어섰다. 비치되어 있는 신고서를 작성하고 담당자에게 제출을 했다.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는 최종적으로 접수가 되었다. 상실감, 서러움, 슬픔, 그리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차로 가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마음을 내내 누르며 겨우 차에 탔다. 그리곤 20여 분을 차에서 혼자 울었던 것 같다. 엄마를 보내고 한 달 남짓한 기간이 흘렀고 장례식 이후로 처음으로 그렇게 울었다. 누군가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은 일생동안 한번 겪을까 말까 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낯선 순간들 속에서 겪게 되는 감정의 솟구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깊이로 찾아온다.  


한 달 전쯤 열몸살로 아팠을 때도 그랬다. 병원에서 수액을 한 대 맞고는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부터 괜한 서러움이 몰려왔다. 아픈 몸으로 아버지 저녁을 챙겨드린 후 나도 저녁을 챙겨 먹고 일찌감치 누웠다. 안 그래도 울고 싶었는데 이제 아플 때도 됐다며 실컷 아프라는 친구의 말이 제대로 눈물 버튼이 되어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정도 힘들 거라고 얘기를 한다. 가족들의 생일, 크고 작은 행사들, 명절 등을 지나고 사계절을 지나 봐야 그제야 겨우라고 얘기를 했다. 엄마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받아 본다거나 곳곳에 적힌 엄마의 서체를 마주할 때나 물건을 찾아야 할 때, 몸이 아플 때 그런 사소한 것들 속에서 감정은 일렁거리고 매 순간 적응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예기불안이란 말이 있듯이 '예기슬픔'이란 것이 생겨버린 듯하다.


내가 겪게 될 슬픔에 대한 자기 방어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힘듦이 예상이 되는 순간들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하게 된다. 어떤 날은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게 지나가지는 순간들이 있고, 어떤 날은 생각지 못한 슬픔의 깊이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지만 말이다.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 아버지의 생신이 있었다. 그리곤 다음이 내 차례. 엄마를 보내고 딱 3개월이 되는 날이다. 꽤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나 보다. 업체에서 미리부터 보내는 '생일 할인 쿠폰' 문자 덕에 내 생일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9월 X일은 내 생일이니 저녁 시간 비워두라며 카톡방에서 선전포고(?!) 해주는 동생 덕분에도 생일이 오기는 오는구나 싶다.


슬픔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 같다. 이전 같으면 하나둘씩 보내지는 문자와 이런 얘기들에 설렘이 가득한 긴장감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야릇한 긴장감이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듯하다.


오늘이 처서라고 하던데, 참 낯선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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