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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ug 22. 2023

회를 사줬어야 했나?

그때는 그게 최선

여름이 되면 우리 집에는 '팔도 비빔면'이 늘 필수로 있었다. 입맛 없고 더운 여름날, 비빔면에 들어있는 양념에 참기름을 살짝 얹어서 먹거나 오이나 열무김치를 곁들여서 먹으면 여름 더위가 싹 가시듯 했다. 간편하게 후다닥 끓여서 한 끼 뚝딱 할 수 있는 메뉴였다.  


엄마가 가시기 3일 전 이었을까, 엄마는 비빔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병원에 있었던 언니가 편의점에서 비빔면 비슷 한 것을 엄마에게 사다 줬는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원했던 것은 우리가 늘 먹던 팔도 비빔면이었고 병원 편의점에는 그게 없었던 것이다. 동생이 언니와 교대를 하면서 컵라면으로 된 팔도 비빔면을 사갔지만 엄마는 한 젓가락 맛도 못 보고 가셨다. 병실에 엄마 물건을 정리하면서 비닐포장도 뜯기지 않은 라면을 차마 들고 올 자신이 없어서 병실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왔었다.


'누나 당분간 비빔면은 못 먹을 거 같아.'

'나도 그럴 거 같아.'


올해도 여름을 시작하면서 어김없이 '팔도 비빔면'을 집에 사놓았지만 보기만 해도 목이 메는 것만 같다. 못 먹는 음식에 '팔도 비빔면'이 추가가 되었다.  

 



엄마가 마지막에 비빔면을 먹고 싶어 했던 것은 8년이 넘는 항암치료 기간 동안 자주 못 먹는 음식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에겐 금지된 음식이 많다. 체온을 낮추고 면역력을 낮추는 음식은 죄다 금지였다. 찬 음식, 밀가루, 인스턴트, 당분이 많은 과일, 날 것, 탄 음식 등이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식욕을 참는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독하고도 힘든 일을 엄마는 8년을 넘게 해 왔고 지금도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누군가는 그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을 것이다.  


비빔면 말고 가장 많이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이 '생선회'이다. 바닷가 지역에 살고 있기에 외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언니나 동생 가족이 오면 회식장소는 늘 횟집이었다. 날 것을 먹지 말아야 하는 엄마는 늘 전복죽이나 대게 같은 익힌 음식을 추가로 주문해서 드셨다. 나머지 가족들은 야속하게도 그런 엄마 앞에서 너무도 맛있게 회를 먹었고 말이다.


병원에 있는 엄마가 회를 드시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에게 회를 사줄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면역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고 소화기관을 비롯한 모든 장기의 기능이 점점 나빠지도 있는 상태의 엄마에게 회를 줘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당시에는 컸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찌 됐건 싱싱한 회 한 점이라도 드시게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많은 후회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면역을 높이는 방법, 암환자에게 좋은 음식 등과 같은 항암치료에 관련한 책들이 몇 권이 있었다. 냉장고에는 암환자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는 메모가 붙어있기도 했다. 책들과 엄마가 남겨둔 메모를 보니 적지 않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먹고 싶은 거 못 먹어가며 건강해지려고, 살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고생하면서 아등바등 8년을 버티고 살았는데 그 마지막이 고통 속의 죽음이라니... 이래야만 했을까?'


나의 물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짧은 원망도 잠시 있었다.   


때로는 내가 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비천하거나 모든 수고가 무용지물이 된 것만 같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결과들을 예측하고 두려워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두가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수고를 다해서 살아간다. 암이 생겼고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는 '완치'를 당연한 결과를 기대하게 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최선을 다했다. 담당교수님도 엄마의 치료를 위해서 늘 애쓰고 고민해 주셨고, 함께 시간을 보낸 가족들, 엄마의 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8년의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의미 없이 보내지 않았고 삶을 향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럴 것이다. 지나고 보면 '그때 이랬어야 했나, 저랬어야 했나?'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되고 내 선택에 대한 후회들이 틈틈이 밀려오기도 한다. 때로는 기대 이하의 결과들에 실망감과 허탈감을 마주하는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타인을 향한 작은 다독임이 지금을, 하루만치를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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