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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정원 Jan 03. 2023

엄마, 영어 소리가 궁금해요!

파닉스가 가져온 후폭풍

"엄마, 나 영어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궁금해!"


7살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옳다쿠나!' 이제 시작하면 되겠다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시중에나온  파닉스 교재를 세트로 구매한다. 나는 애를 잡는 엄마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이 3권을 1년동안 천천히 쪼개서 아이와 즐겁게 해나가리라 마음을 잡는다.


대망의 1권은 이미 유치원에서 익히 들었던 부분인 "a는 애애 애쁠, b는 ㅂㅂ 비~" 처럼 아주 쉽다. 당연히 아이는 매일 엄마와 하는 파닉스 시간을 기다릴 만큼 즐겁게 한다. 하지만 잘 따라오고 익히는 아이 모습에 만족이란 없던 엄마는 조금씩 검은 속내를 드러내며 아이에게 더 많은 정보를 넣기 위해 애를 썼고, 점점 어려워지고 비규칙적인 파닉스를 배우면서 아이는 배움의 즐거움이 두려움의 시간으로 바뀐다.


"엄마, 나 2권까지만 하고 안하면 안돼? 너무 어려워서 하기 싫어!"

"아니야. 우리 챈이, 지금 너무 잘하고 있고 이미 엄마가 3권까지 다 사놔서 끝까지 마무리하자!"


말은 상냥한 듯 하지만 엄마가 뿜어내는 욕심의 불꽃에 아이는 이내 풀이 죽어 엄마의 말을 따라 3권까지 끝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똘망하던 눈빛은 엄마에 대한, 영어에 대한 싫음만 가득 품은 채 7살이 끝나기 전, 우리는 계획보다 더 빨리 파닉스 교재를 정복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였다. 싫다고 하지만 가르치는 것들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를 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하고, 나의 자랑거리로 아이의 학습을 드러내며 점점 빛을 잃어하는 아이를 외면한 채 내달렸던 것이다. 너와 나는 독립적 인격체라는 말은 그저 글자로만 존재할 뿐, 나에게는 무해당이였던 그 시절의 후폭풍은 아주 거세게 찾아왔다.


모두들 이제는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초등입학 때, 영어에 먼저 관심을 보였던 나의 딸은 영어를 완강히 거부 아니 저항했다. 악을 쓰면서 온몸으로 밀어내는 아이에게 나는 백기를 들고 1학년을 흘려보냈다. 모든 것을 거부하던 시기였지만 단 하나, 잠자리 독서시간만은 예외로 영어그림책을 들어준다는 아이!

우리의 1학년은 매일밤 읽어주는 영어그림책 3~4권이 영어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억지로, 끝도 없는 파닉스 세계를 정복시키려던 엄마의 패배는 다음을 위한 전략에 공을 들이는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으로 죗값을 톡톡히 치뤘다. 전쟁 중에도 꽃은 핀다고 이 와중에도 밤마다 읽어준 영어그림책은 가뭄의 단비가 되어, 이후 메말라버린 아이의 영어정서를 시나브로 적셔준 훌륭한 매개체가 되었고, 이로써 우리는 영어휴식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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