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을'이다

갑, 머릿속으로, 세상천지

by 슈가정원

억울하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면 나는 언제나 이 집에서 '을'의 입장이다.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나를 꼬드겨낸 남의 편을 시작으로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맞이한 두 아이까지 나는 언제나 '을'의 위치에서 그들과 숨 쉬며 살아간다.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은 위치.

그러나 함께 살 것을 결정한 이후 나도 모르게 끌어내려놓은 나의 위치.

생각해 보면 내가 '갑'의 입장에서 지내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아득한 정신을 부여잡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없다'는 것에 손목을 걸 수 있다.



태생이 나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것과는 멀다. 눈치가 빨라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성격이라 대부분 타인의 시선을 살피며 맞추려 하고, 누군가와의 마찰이 싫고 불편해서 최대한 피하고자 하는 나로서는 갑의 위치에 서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가정에서도 이어진다. 겉으로 보면 내가 마치 군림하는 듯, 우리 집의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저에는 '유 씨들'의 성격과 성향을 빠르게 파악해 그들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했다. 세상천지 바보도 나만큼 바보일까 싶을 만큼 나는 철저히 우리 집에서 '을'을 자처하며 내가 가진 불만은 가능하면 밑바닥에 붙여두고 외면한 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스멀스멀 머릿속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과 함께 섬뜩할 만큼 울분이 차오를 때가 있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처한 '을'의 위치가 어느새 가족이지만(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시되고 '엄마는 당연히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때론 갑질인 것처럼 구는 언행이 동반되면 억울해서 눈물이 차오르고 동굴을 뚫을 듯한 깊은 한숨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이제 갑과 을의 관계를 끊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다.

신랑은 외벌이로 세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무게감과 피로감을 덜어 주기 위해서, 아이들은 작디작은 생명체라 모든 것이 서툴다는 이유로 나는 '을'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서툰 시간을 살아가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성장했고,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전환하며 신랑어깨의 가득했던 부채와 책임감을 나눠질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이제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늘면서, 아내와 엄마만의 위치가 아닌 또 다른 나의 자리가 생기니까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같이 일하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예전부터 제공하던 많은 편의를 그대로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함이 되어 돌아와 가슴에 맺힌다. 집에서 저녁에 주로 일을 하는 특수상황이라 '갑'인 그들은 전혀 생활의 달라짐을 인지하지도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집안은 깨끗하고, 식사도 늘 챙김을 받고 있으니까. 시간을 쪼개 일까지 해야 하는 나의 수고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만이나 도움을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 나의 성격도 한몫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야지만 무조건적인 '을'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나의 억울하다 못해 화딱지가 나는 속이 풀어질 듯하다. 지금까지 지내온 방식이 강압적인 지시나 강요가 아니었기에 후회는 없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는 많은 이들은 분명 나와 비슷한 일상과 위치에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며칠 전에 이꽃님 작가의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에서 만난 문장이 있다.



네가 좋아서 하는 거면 상관없는데 그게 당연해지도록 두지는 마. 네 선의잖아.(...) 그게 당연해지면 안 되지. 아무리 좋은 마음이어도 당연해지기 시작하면 볼품없어져


어쩜,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읊어진 대사가 아닌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고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당연하게는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만 내가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지금껏 해 온 것을 해내더라도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내지르지는 못한다. 말이란 것은 글보다 더 자극적이게 타인의 머리에 저장이 되기에 신중하게 다듬어서 감정적 호소로 끝내지 않게 준비할 생각이다.



모든 인간관계 속에 내재된 법칙이 '갑'과 '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처한 을이 갑보다 어리석고 못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고 인내하며 애쓰는 것임을 알아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이제 우리 가족 구성원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 삶의 '갑'이 되어 친절하게 설명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