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여행,책/스파이글쓰기
참 신기하다. 올해는 남들처럼 1월1일을 나의 신년으로 받아들이고 몇 년 만에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일상의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염세주의자처럼 굴던 진짜 나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 있었던 모양이다.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마냥 하루하루를 떼우며 채워가던 내가 아침이면 다이어리를 끄적인다. 적는 내용은 모글쓰기, 필사하기, 독서를 필두로 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일'로 인해 발생되는 파일만들기와 관련 공부, 아들과 함께 하는 짧은 지문의 영어낭독과 원서북클럽 낭독으로 늘 비슷하다.
보름이 지난 오늘까지 3일을 제외하고선 나름 성실히 진행하고 있는데, 역시나 매일 해야할 일의 반복을 적어내고 있는 것이 가식으로 느껴진다. 언제가부터 루틴에 맞추어진 생활을 기록하는 일이 불필요하고 자기과시처럼 느껴져 불편했고, 다시 시작하는 요즘도 별반 다르진 않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른 포기는 접어두고 있다. 이 생활의 연장이 가져다 줄 변화가 내심 더 궁금하고 조금씩 휴대폰에 쏟어붓던 잉여의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애쓰는 내가 보이니까 슬쩍 기대감이 올라오고 있기에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1월에 걸맞게 유지하려고 한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시간을 기록하다 보니 시간 관리가 생각보다 요긴하다. '조금 있다가 하지 뭐' 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우선 활자화된 목록이 머리에 박히면서 의식적으로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안락한 의자에서 벗어나 테이블 의자에 앉게 되고, 한 켠에 루틴에 필요한 것을 쌓아두며 하나씩 하다보면 꽤 긴 시간이 흘러간다.
가장 좋은 건 '책'이다. 도서관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득 대여해서 고스란히 반납하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15일간 읽어낸 것만 해도 벌써 7권이다. 독서량이 엄청 늘어났을 뿐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지지 않게 독서노트도 따로 만들어 기록하다보니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를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조금씩 괜찮은 사람,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른 어른에 다가서는 기분이 참 좋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기록하는 일이 사치스러울 수도,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지만 이 시간을 좋아하는 나를, 나는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가져지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획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매일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계획적이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 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생활하다보니 성격도 변하는 모양이다. 여행마저도 장소와 숙소만 정하고 나머지 일정은 즉흥적으로 정한다. 훌쩍 떠나는 여행이 주는 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고작 보름이 지났을 뿐이다. 그동안 얼마나 멋대로 지내왔는지가 여실히 보여져 부끄러우면서도 우습다. 나만 아는 나의 생활. 15일 짧은 기간이지만 루틴을 만들어 지내며 자유스러운 순간인 여행을 미치도록 외치는 나는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