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와 접점이 없는 정치에 대한 생각을 비롯한 내가 가진 생각들.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내 생각의 시작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가 사회화 과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이 두 곳에서 생각을 하며 자랐을까?
유대인 부모는 자식에게 일상적으로 '네 생각은 무엇이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정은 과연 그러한가. 한때 아이의 '왜?'라는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었던 때가 있었다. 겨우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울 무렵. 아이들은 엄마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질문한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들에 답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당연한 것을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느끼는 호기심을 어른이 된 부모는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다. 아이가 어릴 때는 곧 잘해주던 답을 학교에 들어가자 '그냥 그렇게 정해진 거야'라며 아이의 질문을 차단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왜?'는 반항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거야?' '게임은 왜 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 친절히 답해줄 부모가 되기는 어렵다.
학교에서의 사회화 과정은 또 어떤가.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생각하기보다는 이미 교과서에 쓰인 지식을 숙지하는 존재가 된다. 수업 중에 말하기도 하고 쓰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교사에 의해 말하고 쓴다.
이렇게 가정과 학교에서 우리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내 머리에 들어있는 숙지한 지식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것은 지배 세력의 세계관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가 없이 지배 세력의 생각을 정답으로 주입받고, 그것이 생각인 양 완성된 존재처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몇 년 전 박근혜 정부 때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떠올랐다. 부끄럽게도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여기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자기가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은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교과서의 지식을 수업에 다루되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으며 알게 된 지식을 새롭게 내 머릿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글쓰기와 토론이 일상화된다면, 어제의 내 생각과 오늘의 내 생각이 다른 경험, 그리고 하나의 논제에 관해 내 생각과 내 짝꿍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와 토론이 없는 교실에서는 이 경험이 축적될 수 없고 고집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글쓰기와 토론에는 '나'가 있다. 반면에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내용을 주입시키는 주입식 수업과정에는 당연히 '나'가 없다. '나'라는 존재 없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부가 가능할까?
그동안 교사인 나는 '나'가 없는 수업을 얼마나 많이 해왔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학년을 가르칠 때는 꽤 토론을 많이 해오긴 했는데 저학년을 담임을 하게 되면서 많이 소홀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코로나 19로 격일로 아이들이 나오면서 학교에 나올 때마다 주입식으로 수업을 많이 하곤 한다. 행여나 한 번이라도 내가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이들이 알지 못하고 넘어갈까 하여 걱정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아이들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지식이라 머릿속에 더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재 '평가'에 대한 자율권을 교사가 가지도록 보장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생각이 담겨있는 평가를 통해 교실 수업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그 자율권도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바라는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교육도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난민 문제 등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움직임은 때로는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여겨진다. 내가 달걀로 아무리 바위를 쳐도 바뀌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바위는 확실히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20이 아닌 사회적 약자가 포함된 80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는 연대해야 할 것이다.
'분배'의 반대는 '성장'인가? 아니다. '분배'의 반대는 '독차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분배'의 반대가 '성장'이라고 배웠고, 분배를 하면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해왔다. 20에 의한, 20을 위한 사회로 더 이상 나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도록 연대의 방법을 찾아보자.
책은 생각을 깨는 도끼 같아야 한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진정 도끼 같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옆에 두고 자주 읽으며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잃지 않아야겠다. 그런 마음이 실천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책 속의 도끼 같은 문장 하나로 글을 맺는다.
"의지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자. 나도 수시로 설득된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