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쌀벌레야

서평 - 주미경 동시집 (2020.9.4.)

by 인애

이 동시집 전체를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동심, 어른의 옛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자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들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기발하고 위트 있게 독자에게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자연이 소재가 되는 시 말고도 일상에 관한 시들도 많은데 읽으면서 아이들은 격하게 공감하고, 어른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 따뜻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동시집에 있는 동시 중 가장 많은 동시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생명들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시였다. 특히 동물, 곤충, 식물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진 시가 28편 정도로 많았는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 쌀벌레야>와 같은 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주인공인 쌀통에 사는 쌀벌레는 사람의 바가지가 내려와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바가지를 피하는 놀이를 하는 당당한 존재이다. 즐겁게 놀이를 하는 듯하다가 마지막엔 사람을 걱정하는 오지랖까지 보인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곧 잡아야만 하는 미운 쌀벌레 이건만 쌀벌레는 오히려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다. 시인은 작은 곤충에 이입해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말을 걸고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니 평소에 얄미운 존재인 쌀벌레를 만나면 오히려 반가울 듯하다.


나 쌀벌레야


너 쌀 속에서 놀아 봤니

누가 쌀독 밑으로 더 깊이 내려가나

누가 더 하얗게 쌀가루 뒤집어쓰나

쌀독이 열리고 바가지가 내려올 때

누가 빨리 피하나

참, 마지막 놀이는 위험해

아차 하는 순간 저 구멍 위로

딸려 가는 수가 있으니까

요즘은 쌀이 줄지가 않아

우리야 쌀이 넘칠수록 좋지만

사람들은 뭘 먹고 살까

얼마나 큰 독 안에서 살까

그 독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바가지를 타고 올라가 볼까

저 동그란 구멍 밖 세상으로


<흥!>이라는 시에서는 숲을 자르는 듯한 솔개의 날갯짓에도 당당한 다람쥐와 뱁새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벚나무 발목>에서는 애기똥풀이 귀한 꽃 양말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작은 일부분을 깊이 관찰하여 상상력을 더해낸 시들이 많았고, <학교 바꾸기>나 <느티랑 찟쬬랑>처럼 자연의 일부와 사람의 일상을 연결 지어 공감을 자아내는 시들도 있었다.


사람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들도 있었는데 12편 정도의 시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일상과 맞닿은 시 중 대표적인 시가 아래의 <준비,>라는 시이다. 출발선에서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미소를 짓게 한다. 어른 독자도 어릴 적 경험이 있기에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다. 특히 이 시는 제목에 쉼표를 붙여 출발선에 선 아이들의 긴장감을 더 고조시키는 효과를 준다.


준비,


두 주먹을 꼭 진 법기 옆에

오른발을 뒤로 쭉 뺀 선구 옆에

바람을 가를 듯이 두 손을 세운 영진이 옆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옆을 봤다 앞을 봤다

오른발 내밀었다 왼발 내밀었다 하는

재범이가

“선생님, 잠깐만요.”

하는데


탕!


<놀이터에서>라는 시도 동심을 담고 있다. 책가방 하나를 벗었을 뿐인데 놀이터에서 하늘로 저절로 솟구치는 느낌, 아이들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특히 이 시에서 하늘로 날아간 아이는 다리만 보이고 미끄럼틀에 앉아 날아간 친구를 보는 아이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눈물바다」에서 서현의 그림을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이 동시집에서도 그림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이런 일상과 맞닿아 있는 시 중에서도 아이의 일상이 아닌 어른의 일상을 담고 있는 시도 있다. 20층 아파트로 이사한 후 멀미가 나는 할머니가 고향에서 온 파래를 씹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파래와 멀미>, 칼국수 한 그릇의 돈을 따지지 않고 나누는 <칼국수 한 그릇>도 그렇다. <이런 동네>, <엄마 마녀의 깨소금>, <멸치 말리기>에서는 어린 시절 정겨운 시골의 모습이 그려지며 시를 읽는 어른에게 동심의 세계를 보여준다.


엄마 마녀의 깨소금


시골에서 얻어 온 참깨 한 줌

깨알만 하게 부스러진

티끌을 골라내다가

에효 힘들다

그냥 볶자

참깨밭에 핀 다닥냉이 꽃잎

참깨밭에 놀러 온 도깨비바늘 씨앗

참깨밭에 앉은 고추잠자리 날개

참깨밭에 들른 여치 더듬이

참깨밭에 날아온 딱새 눈썹

다글다글

다 넣고 그냥 볶자

참깨가 고소한 것은

요게 다 들어 있기 때문이지


또 다른 유형으로는 옛이야기를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시이다. 4편 정도의 시가 여기에 해당되었는데 <깨구락지가 부러운 미꾸락지>, <가새>, <욕쟁이 노루 할아버지> 그리고 <마늘 일곱 형제>라는 시다. 특히 이 시는 이 동시집의 첫 장에 자리하고 있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꼭 붙어 있는 마늘의 오순도순한 그림과 함께 <마늘 일곱 형제>의 옛이야기가 처음부터 책을 펼친 독자의 마음을 데워 준다.


마늘 일곱 형제


옛날옛날 땅속나라에

마늘 일곱 형제가 살았는데

어느 날 옆집 아기 감자가

귀신이다 하고 놀래 줬대

깜짝 놀란 일곱 형제가

엄마야 하고

꼬옥 끌어안았는데

무섭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참 좋더래

그래서 서로 보듬고 살자 그랬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한 몸이 돼서

끙!

이렇게 힘센 엄마도

떼어 놓기 힘들게 됐지.


시는 주로 읽는 재미를 느끼는 장르이지만 소리가 주는 효과와 더불어 보는 재미가 있는 시의 유형도 있었다. <까치>라는 시는 점점 문장이 길어지면서 까치가 하늘로 올라가는 내용으로 전개되어 상승효과를 준다.


까치


가지로

건너뛰어

자근자근 밟아

대다가 더 윗가지로

사뿐 건너뛰더니 갸웃갸웃

올려다보니까 사다리 끝은 하늘에

닿은 듯 안 닿은 듯 까치가 날개를 접고

오리나무 사다리를 타고 한 뜀 한 뜀 하늘에 오른다.




이 동시집은 작지만 세상을 품고 사는 모든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늘을 관찰해 함께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을 읽어내고, 쌀벌레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뭘 먹는지 걱정하는 마음, 세상을 만들겠다는 애벌레의 당당함, 이 동시집의 생명들은 비록 작지만 당당하고 그 시선은 따뜻하다. 작은 것들에 오래 머무르는 작가의 시선이 부럽다.

뒤로 갈수록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시가 드물어 무게감이 떨어지는 듯했으나 시의 느낌은 독자에게 있는 것이기에 다른 독자들은 또 다르리라 생각해본다.

또한 아이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시들은 아이들에게뿐 아니라 어른 독자들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공감할 시들도 많았다. 어른이 동시를 읽으며 느끼길 바라는 그런 순수한 감정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동시집이었다.

(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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