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4.
자가격리 4일째,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었다. 부모님과 살다가 독립한 개그우먼 송은이를 위해 개그맨 김영철이 요리를 해준다. 김영철이 해준 요리는 바로 'Potee(포테)'라는 프랑스 가정식이다. 다양한 고기와 채소를 한 번에 푹 끓인 요리인데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 삼계탕처럼 보양식이라고 한다.
'아, 이거다.'
아주 오랜만에 요리하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우리집의 어린이와 어른 모두 보양식이 필요하다. 한밤 중에 집에 있는 채소들을 확인하고, 집에 없는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대형마트 배달 서비스의 장바구니에 담았다.
직장 동료 가족의 확진으로 코로나 19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그 순간부터, 자가격리 중에도 통 입맛이 없었다. 뭘 먹어도 자꾸 목구멍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막아서는 것 같았다. 덕분에 20대 중반 몸무게로 돌아갈 정도로 며칠 동안 살이 빠졌다. 살을 빼겠다고 수없이 결심해 왔는데 역시 마음고생이 최고의 다이어트였다니. 머릿속이 걱정으로 가득 차니 먹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고, 먹고 싶은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가족들은 먹어야 하기에 배달앱을 이용하거나 냉동실에서 간단하게 해 줄 수 있는 요리를 해 주었다.
어제 주문한 Potee의 재료들이 드디어 오늘 도착했다. 요즘 살도 빠지고 몸이 허해서 오늘 저녁은 프랑스 보양식을 하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그런데, 왜 프랑스 보양식이지?"
어린이들은 '그게 도대체 뭐야?'하며 놀라는 반응이었고, 남편은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 말의 속뜻은 '한국 보양식도 못하는데?' 였을 것이다. 양배추를 푸짐하게 냄비에 깔고, 당근, 감자를 뭉텅뭉텅 썰어서 넣는다.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냄비 뚜껑을 덮고, 50분 정도 끓이면 된다. 앞치마를 자신 있게 묶고 시작한 것 치고는 멋쩍게 간단한 요리이다. 아마도 간단한 조리방법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시작했을 테다.
그럭저럭 요리를 완성해 식탁에 준비하고 가족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엄마, 고기가 야들야들해."
어린이들은 엄마 듣기 좋은 소리를 눈치껏 늘어놓는다. 최근 우울해했던 엄마의 눈치를 본다.
"다음엔 수육을 해 먹자."
남편은 어차피 이렇게 오래 삶을 거 그냥 한국식 수육을 해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니가 해 드시든가!라는 말이 입술까지 나왔지만 대견하게 잘 참아냈다.) 뭐 다른 사람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난 꽤 만족스러웠다. 육식을 줄이고 있기에 감자와 당근, 양배추를 오랜만에 배 부르게 먹었다. 포슬포슬 부서지는 감자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니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감자를 가득 넣은 이름 모를 찌개 생각이 난다. 무슨 음식이든 이렇게 기분 좋게 먹으면 다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보양식이 아닐까.
왜 나는 이 요리가 갑자기 하고 싶었을까? 보양식이라서 했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지만, 보양식에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라 프랑스에 포인트가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최근 파리가 배경인 영화를 보고 파리에 푹 빠진 데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까지. 음식으로라도 프랑스를 느껴보고 싶었나 보다. 집에서 떠나는 세계 미식 여행이라고나 할까. 와인까지 같이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미리 사 둔 와인이 없다. 술은 배달도 안되고. 와인과 함께 먹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자. 와인까지 마셨다면 입에서 잔뜩 비음 섞인 '봉쥬르'가 튀어나왔을지 모른다.
'훗, 내가 프랑스 요리를 다 하다니!'
내가 프랑스 요리를 한다는 허영심까지 채워 준, 아름다운 식사였다.
저녁을 먹고 다른 일을 하던 우리집 어린이가 뜬금없이 이야기한다.
"엄마, 내일은 족발이나 보쌈 먹자. 시켜서!"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엄마가 해 준 음식보단 역시 배달음식이 맛있지?"
아이는 당황하며 아니라고 엄마 음식도 맛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이의 착한 마음과 당황한 표정을 읽은 엄마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괜찮아! 엄마도 사실 엄마가 한 음식보단 배달시켜먹는 게 훨씬 맛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잘 지키는 이유는 엄청난 배달, 택배서비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다 감사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메흐씨 보꾸! (Merci beauc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