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5.
자가격리 5일째.
아파트 11층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아파트 구석구석 벚꽃이 피었다. 신축 아파트라 벚나무들이 왜소하지만 그 나름대로 적응하며 예쁜 벚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꽃이 피기 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나무들이 '몰랐어? 나 벚나무야' 하며 뽐내는 것만 같다.
"벚꽃이 드디어 피었구나."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내려앉는다.
주말마다 자주 가는 도서관 올라가는 길에 아주 오래된 벚나무들이 있다. 중학교 때 도서관 내려오면서 눈처럼 떨어지던 벚꽃을 맞았던 기억이 사진처럼 내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니 아무리 못해도 30년 이상은 된 나무들이다. 해마다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벚꽃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갔었다.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예쁜 벚꽃이 있는데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올 해도 봄이 오자 벚꽃이 피면 어김없이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주 전쯤 주말에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몇 주 있다가 꽃이 피면 도서관에 벚꽃 보러 오자! 엄마는 여기 나무들보다 더 예쁜 벚꽃은 몰라~"
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작스러운 자가격리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왜 지금 자가격리를 하게 된 걸까. 다른 시기이면 좋았잖아.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원망이 생긴다. 도서관 올라가는 길을 터널처럼 채우고 있을 벚꽃을 상상한다. 밤에 가도 벚꽃마다 작은 전구 하나씩은 달고 있는 듯한 그 환함이 그립다. 못 보니 더 그립다. 너무 가고 싶어 밤에 차 타고 잠시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하면 과태료를 정말 물게될까?)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오후가 되니 친한 지인들의 단톡 방에서 카톡이 울린다. 한 지인이 근무 중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올라 찍은 벚꽃사진을 보내왔다. 그녀는 내가 해마다 그곳에서 하는 벚꽃 구경을 무척 아낀다는 것을 안다.
'언니 눈에 벚꽃을 보낸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벚꽃을 보니 내 생각이 났던 것일까. 감동은 이럴 때 받는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글을 남겼다.
'올해 벚꽃은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는데, 고맙다.'
단톡 방에 이렇게 글을 남겼더니 그 단톡 방에 있던 지인들이 하나둘씩 벚꽃사진을 올린다. 마치 벚꽃으로 도배라도 하는 것 같다.
보내 준 사진에는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한껏 피어있는 벚꽃이 가득하다. 한송이는 소박하지만 많아지면 화려 해지는 그 절정의 아름다움, 그 며칠간의 찬란한 클라이맥스를 보기 위해 일 년을 그 순간만 상상했을 사람들과 나무. 그 클라이맥스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 나무는 늘 거기에 있고, 내년에도 거기에서 활짝 피어줄 것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다. 행복하게. 그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이토록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다.
보내준 벚꽃 사진을 하나씩 휴대폰에 저장하며 그 마음까지 마음에 담았다. 마음이 몹시 따뜻해진다. 이 격리 생활도 끝이 있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에 기쁘게 견딜 수 있다.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어 진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