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엄마 사이

2021. 3. 23.

by 인애

"업무 시작하겠습니다."


오전.

컴퓨터를 켜고 K 에듀파인에 접속한다. 교감, 교장선생님에게 업무 시작 보고 메일을 보낸다. 오늘은 자가격리를 통보받은 지 3일째이자 재택근무 2일째다. 업무 시작 보고를 하기도 전에 이미 동학년 선생님들 단톡 방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오늘도 아이들의 원격학습을 지원하는 업무를 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활동지를 e학습터 학급 게시판에 탑재했는데 가정에서 인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인쇄하여 교문에서 배부하기로 한 날이다. 가정에서 출력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조사하고, 그중에서도 긴급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돌봄 교실에서 학습지를 받기로 하고 명단을 작성하고 교무실에 보낸다.

우리 반 어린이들의 건강이 어떤지 자가진단 앱을 확인한다. 아직 체크하지 못한 학부모에게 알림 푸시를 보낸다. 오늘은 3명이 안 했다. 긴급 돌봄을 받는 어린이들의 e학습터 출석 인정 여부를 카톡으로 협의한다. 9명의 선생님이 협의를 하니 잠시만 카톡을 안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흐름을 놓친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휴대폰을 놓칠 수 없다. 협의가 정리되면 내용을 정리하고, 다시 카톡에서 의논하여 여러 번 수정을 거쳐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낸다.

교감선생님에게 문자가 온다. 날마다 근무 마치고 쓰는 재택근무 보고서에 오늘 한 업무를 쓰는 란에 빈칸을 두지 말란다. 그 날 하는 일의 개수가 중요한 것인가 보다.

오후.

학습지를 배부하기로 한 시간이 지났다.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학습지를 받아가지 않았다고 교무실에서 연락이 온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3번째 시도 만에 통화에 성공하고 한 시간 안에 수령해달라고 부탁한다.

"몸 이상 없음 보고 시간입니다!"

오후 4시쯤 동학년 선생님이 카톡에 글을 올린다. 몸 이상 없음 보고 시간이라니. 모두들 긴장하고 있다가 웃음이 터진다. 공손하게 교감선생님에게 몸에 이상없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이상이 있을 때만 보고 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을 품어본다.

학부모 상담주간을 4월부터 운영한다고 가정통신문 앱으로 안내장이 발송되었다. 신청서를 직접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문자로 보내달라고 학부모에게 연락을 한다. 내일 아침에 앱으로 올릴 알림장을 선생님들과 같이 검토한다.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린다.


오후 5시 30분.

"업무 마칩니다."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메일로 퇴근 보고를 한다. 한 칸 한 칸 빈칸 없이, 빼곡하고 아름답게 채워서 메일을 보낸다. 오늘도 일이 끝났다.

학부모 상담 신청 문자가 하나씩 들어온다. 조율 후 일정을 안내드리겠다며 답장을 보낸다. 다음 주 온라인 학습 영상을 살펴봐달라는 동학년 선생님의 요청에 수업 영상을 검토한다....


퇴근 보고를 했어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엄마 시작하겠습니다."


오전.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한다. 햄과 야채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썰어 담고, 과일 주스를 준비해 식탁 위에 올려둔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나오면 내가 격리하는 끝방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거실에 던져놓는다. 밥 먹어라. 반찬 넣어라. 잠옷 갈아입어라. 교과서 챙겼냐. 컴퓨터 켰냐. 그러다 하도 말을 안 들으면 마스크를 쓰고 직접 나가 2m 거리를 유지하고 잔소리를 한다.

자가격리 담당공무원에게 연락이 온다. 아직 나의 자가진단을 안 했다. 우리 반 아이들 자가진단 챙기느라 내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은 잊어버린 것이다. 담당 공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나같은 자가격리자들을 다 챙기는 것이 얼마나 귀찮을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오후에는 제시간에 하겠다며 사죄의 문자를 보낸다.

격리기간 동안 바로 앞 마트도 직접 갈 수 없으니 가까운 대형마트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다. 냉동실만 털어먹어도 열흘은 버틸 텐데, 떨어진 식재료가 하나라도 있으면 큰일 날 새라 부리나케 주문을 한다. 격리 통지서는 나만 받았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격리하기에 음식을 많이 담았다. 아직 구호물품의 식품도 다 그대로 있는데 말이다. (격리기간 동안 모두의 바람대로 무조건 건강해야 하는데 구호물품의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웠다가는 건강이 나빠질까 봐 선뜻 먹지를...)


오후.

남편이 국수를 삶아 간단한 점심을 준비한다. 국수 한 그릇 먹는 사이에도 놓친 카톡이 여러 개이다.

오전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우리 집 어린이들이 놀면서 티격태격한다. 하라고 하면 더 안 하는 어린이들의 특성을 이용하기로 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더 싸우라고 북돋아준다.

몰래 태블릿 pc로 애니메이션을 보던 아들에게 "2주 동안 학교도 안 가는 데 어쩌려고 그러냐 책 좀 보고 문제집 좀 풀어"라고 잔소리를 쏟는다.

저녁은 배달앱의 도움을 받는다. 하루 한 끼 정도야 뭐, 하며 시키지만 자가격리가 끝나면 식비가 얼마가 나올지 예상할 수가 없다.

저녁 8시 알람을 맞춰두고 알람이 울리자마자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에 나의 건강을 체크한다. 정확하게 지켜서 담당공무원을 귀찮게 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다.


저녁 8시 30분.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 건강은 어떠냐며 밥은 잘 먹는지 하나씩 물어보신다. 걱정되는 목소리다. 엄마의 걱정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있는데, 엄마의 걱정은 끝이 없다. (아마도 자가격리를 통보받은 첫날 울먹였던 내 목소리 때문에 더 걱정하신 듯하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드는 생각,

엄마도 끝이 없는 것이구나.


분명한 건 '엄마'가 '업무'보다는 길 거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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