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패키지여행으로 할게요

파리 런던 가족 여행기-1일 차

by 인애

우리 가족의 여행은 늘 패키지였다.


런던과 파리를 아이 둘 데리고 남편 없이 잘 다녀왔다는 친구의 부추김,

런던과 파리의 박물관을 꼭 가고 싶다는 딸의 바람,

런던의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장을 꼭 가보고 싶다는 아들의 바람.

이 모든 게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이번에도 패키지로 갔을 거다.


그런데 어쩌나 보니 P인 내가 우리 네 가족의 런던 파리 자유여행 스케줄을 짜고 있었다. 비용을 아끼느라 저가항공사인 티웨이에서 운항하는 파리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취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연착도 많다고 해서 안 그래도 걱정이었는데 무안공항 제주항공사고 후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환불이 되지 않는 저렴한 티켓을 구입한 덕(?)에 취소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그 걱정은 그냥 넘겨버렸다. 숙소도 취소불가능한 것으로 예약하고 나니 이젠 무조건 가는 수밖에 없다!

호기롭게 시작해 수많은 걱정과 설렘이 함께한 준비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출발이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전 9시 50분이라 먼 남쪽나라에 사는 우리는 아예 차에서 잘 생각으로 잠을 자지 않고 새벽에 2시에 출발했다. 4시간 동안 졸음을 참고 운전하는 남편이 걱정돼서 나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차에서 쪽잠을 자고, 남편과 나는 꼬박 밤을 새우고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 오는 파리 도착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4시간 30분의 긴 시간을 뒤로하고 온갖 피로와 떡진 머리로 파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리던 꿈의 파리는 비가 내리는 것조차 로맨틱하다. 잠시동안의 설렘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큰 캐리어 3개를 이끌고 안전하게 숙소로 가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지하철인 RER B를 타기로 했다. 4명이라 택시를 타는 것이 낫다는 말이 많았지만 유럽 여행 카페에서 보았던 낯선 언어로 말하는 택시운전사의 횡포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소매치기의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조심하면 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마침 숙소 바로 앞까지 가기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미리 조사해 온 대로 표지판을 따라가 표를 사는 기계 앞에 섰다. 표를 어떻게 사는지 사진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해 보았는데 막상 앞에 서니 당황스러워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선택했는데 이번에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 한참을 버벅거리고 있다 옆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 직원도 프랑스어로 뭐라고 말을 할 뿐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옆 기계로 해보라는 듯 그쪽으로 이끈다. 옆에 기계로 해서 남편 카드로 태그를 하니 그제야 표가 나온다. 티켓하나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벌써 식은땀이 난다.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있는데 같이 내린 한국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낯선 외모의 외국인들과 서 있으려니 덜컥 겁이 난다. 인터넷 카페와 유튜브에서 파리지하철의 소매치기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얻고 온 탓이다. 거기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RER B를 타면 정거장만에 우리 숙소가 있는 샤틀레 레알 역으로 간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급행은 오지 않는다. 지하철역에서 당황해하는 표정이 역력한 동양인 여행자들이라니!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딱 쉽지 않은가. 일단 타야 했다. 열차 두 대를 그냥 보내고, 급행이 아니라도 목적지인 샤틀레역까지 가는 바로 다음 열차를 탔다. 구글 지도가 안내해 주는 데로.


그런데 이 열차, 지나는 역마다 분위기가 어째 으스스하다. 파리 여행에 대해 검색하면 하나 걸러 나오던 파리의 치안 문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이를 데리고 가거나 큰 캐리어가 있거나 밤이라면 지하철을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던 어떤 블로그의 글이 떠오른다.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한 건 다하고 있네?! 다행이라면 그래도 남편이 옆에 있다는 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파리 시내로 가까이 갈수록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두려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점점 빼곡해진다. 사람이 많아지니 다행히도 소매치기가 캐리어를 도저히 가져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캐리어 때문에 지나가지 못할까 봐 있는 데로 캐리어를 밀어 넣고 몸을 구기고 앉아있다. 24시간 잠을 못 자 충혈된 눈과 떡진 머리로 캐리어를 꼭 붙들고 있는 4명의 동양인이라니. 눈을 부릅뜨고 긴장해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자유여행을 결정한 나를 자책한다. 패키지였다면 지금쯤 공항 앞에 대기된 버스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며 파리여행을 주의사항을 듣고 있겠지.

불안한 눈빛과 파리의 지하철

그렇게 몇 시간 같았던 30여분을 지하철을 타고 샤틀레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역 바로 옆이 숙소라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예약은 잘했겠지, 체크인은 어렵지 않겠지 걱정하며 숙소에 들어섰다. 파리의 도시세까지 결제하고 반밖에 알아듣지 못한 체크인 데스크의 설명에 대충 끄덕거리고는 서둘러 숙소로 올라간다. 숙소는 사진에서 본 것과 다르게 조금 좁긴 했지만 리모델링이 되어선지 깔끔하고 좋다. 가족들이 숙소 좋다!라고 말해주니 그제야 나도 긴장이 풀린다.


우리의 파리 집에 왔다!

숙소의 커튼을 열어젖히니 파리의 거리 풍경이 짠하고 나타난다.

멋지고 낭만적인 파리, 그곳에 드디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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