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런던 가족 여행기-2일 차
어제 파리에 도착해 숙소에 오기까지의 두려움은 금세 잊을 수 있었다. 목적지인 숙소가 좋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창문 밖의 파리 거리를 바라보며 와인 한 잔 하는 그 순간, 모든 힘든 과정을 잊을 수 있었다. 패키지로 왔다면 이런 전망 따위 없는 외딴 호텔이었을 것이다. 자유여행으로 오길 참 잘했다.
하루 사이에, 내 마음도 참 쉽다.
파리의 본격적인 첫 여행 날이 밝았다. 설렘과 시차적응으로 새벽같이 일어났지만 겨울이라 파리는 아직 캄캄하다. 오늘 오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이드 투어가 있었기에 오전에는 루브르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개선문까지 파리의 중심지를 걷기로 했다. 비 예보가 있어 우산을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선다. 나오자마자 예상치 못한 차가운 강풍이 당황스럽게 했다. 그렇게 루브르를 향해 걸어가는데 이내 비가 내렸다. 파리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는 것처럼 유유히 우산 없이 걸어 다닌다. 파리에 왔으니 우리도 파리 사람들을 따라 그냥 걸었다.
드디어 영접한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사진을 어마어마하게 찍고 바로 옆 뛸르히 정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람이 점점 쌔지고 빗방울이 굵어지는 듯싶더니 아들이 "엄마, 얼굴이 따가워!"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비가 아니라 이번에는 우박이 내렸다. 우박을 얼굴에 몇 개 맞고는 파리지앵은 도저히 힘들겠다며 우산을 꺼내 들었다. 우산을 꺼내 들고 가는데 이제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겨울의 황량한 정원을 우산이 뒤집어진 채 우박을 맞으며 걷고 있는 우리가 너무나도 웃겼다. 실없이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었다. 도저히 콩코르드 광장을 거쳐 샹젤리제, 개선문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개선문을 앞에 두고 우리는 개선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여행을 오기 전 파리 날씨를 검색하면서 얼마나 많은 외투를 넣었다 뺐다 했던가. 패딩을 가져갈지, 코트를 가져갈지 참 많이도 고민했다. 그렇게 자꾸 검색하고 있으니 언니가 '파리와 런던 날씨는 그냥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해.'라고 간단히 정리를 해주기도 했다.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일기예보로 알 수 없고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이곳의 날씨. 본격적인 첫날, 버라이어티 하게 후퇴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후에 예약해 둔 루브르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살펴보니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도 세밀히 보게 된다. 어차피 루브르 박물관을 꼼꼼하게 다 보는 건 무리니까. 가이드와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 드디어 지인들에게 익히 들었던 모나리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모나리자가 있는 방은 사람이 너무 많아 적어도 방에 소매치기가 세 명은 있다고 생각하라고, 사람이 많아 떠밀려서 보아야 하고 그것마저도 보기 쉽지 않다는 모나리자! 드디어 모나리자를 본다. 그런데 웬걸~~~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앞으로 가는 것도 쉽다. 사람 없이 모나리자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기대하던 모나리자인데, 생각보다 감흥이 없었다. 엄청난 사람에 떠밀려 간신히 보았다면 귀하게 느껴졌을까? 너무 쉽게 봐서인가! 아니면 너무 사진으로 화면으로 많이 봐서 인가.
가이드를 따라 루브르를 둘러보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충분히 오래 보고 싶은 그림을 오래 볼 수 없으며 계속 이동하는 탓에 가이드가 따로 시간을 주지 않으면 그림과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딸이 너무 보고 싶었던 그림과 사진을 찍고 싶은데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출구로 나와버린 것이다. 딸의 눈이 빨개진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냥 나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투어에 지친 아들과 남편은 출구 쪽의 기념품 샵과 가게가 있는 곳으로 나가고 나는 딸과 함께 다시 입장하는 곳으로 갔다. 문 닫는 시간이 30분도 남지 않았다. 내가 끊은 티켓은 재입장이 되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딸은 18세 이하라 무료였기에 딸은 다시 입장해서 그 그림을 보러 들어가겠다고 한다. 딸이 그렇게 그림에 진심인지 몰랐는데 새삼 놀랬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인상적인 그림이라 꼭 사진을 찍고 오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딸이 입장한 곳에서 나는 혼자 딸을 기다리기로 했다.
낯선 파리에서 혼자 딸을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이 흩어져도 휴대폰이 있으니 연락을 하면 괜찮겠지. 그런데 코트 호주머니와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휴대폰이 없다. 천천히 꼼꼼히 다시 찾아보아도 휴대폰이 없다. 아! 그렇게 많이 듣고 조심했는데, 파리의 소매치기에게 휴대폰을 도난당했구나. 어수선하게 딸을 보내고 정신없는 사이에 당했구나. 휴대폰이 없으면 당장 내일부터 예약해 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 남편과 아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행 첫날부터 이런 일을 겪다니. 당장 딸이 어디 출구로 나올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나와 연락을 해서 만나야 하는데, 내가 휴대폰이 없다. 출구 앞에 엄마가 없다면 딸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일단 남편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을 알리고 딸과 남편이 연락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편과 아들이 사라진 기념품샵과 상점들 쪽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기념품 샵을 아무리 살펴봐도 남편과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갔나 보다. 그러면 딸이라도 나왔을 때 내가 있어야 한다. 다시 루브르 유리피라미드 아래 입구를 향해 뛰었다.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는데, 남편과 아들이 기둥 뒤편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사정도 모르고,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다! 콜라를 먹으며 시시덕거리고 있다. 남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콜라를 먹던 아들이 갑자기, '어, 엄마 휴대폰 내가 가지고 있는데. 엄마가 화장실 갈 때 나보고 가지고 있으라고 했잖아.'라고 하며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긴장하고 있다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났다. 갑자기 울먹이는 나를 보며 남편과 아들은 당황해했다. 소매치기당했다는 그 착각으로 정말 지옥과 천국을 오고 갔다. 그 10여분의 시간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이렇게 낯선 곳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면 다리가 풀리는 이런 기분이구나!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기쁨이 차 올랐다. 저 멀리서 딸도 원하는 그림과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걸어 나온다.
별일 없음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가. 하루 사이에 몇 년은 늙은 것 같다.
여행은 정말 여러 가지 생소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구나.
평소에는 겪지 못할 엄청난 경험들을 하게 하는구나.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물론 오늘보다 더 버라이어티 한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