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욕심을 버릴지어다

파리 런던 가족 여행기-3일 차

by 인애

여행계획을 짜며 알아보니 파리 관광지의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서 48시간 동안 파리의 주요 관광지를 입장할 수 있는 뮤지엄 패스를 미리 구입했다. 이틀간 사용할 수 있는 뮤지엄 패스를 구입하면 48시간 동안 파리 주요 관광지를 따로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 어제 오후의 루브르 박물관을 시작으로 오늘은 파리뮤지엄 패스를 본격적으로 쓰는 날이다. 48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하기에 오늘은 노트르담성당, 생트샤펠, 콩시에르주리, 오르셰미술관, 로댕미술관, 오랑주리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하루에 3개의 미술관과 3개의 유적지라니! 누가 봐도 힘든 일정이지만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면 가능하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노트르담성당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우리가 가기 직전에 재개관했으며 입장료도 무료라고 하니 이런 행운이 있나! 오늘 가려던 시테섬에 노트르담 성당도 있으니 같이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노트르담 성당은 없던 종교도 생길 만큼 외부도 내부도 아름다웠다. 다만 2년 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보고 난 후 모든 성당의 기준이 성 베드로 성당이 되어버린 후라 '엄청나다!!!' 정도는 아니긴 했다. 그래도 파리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하고, 화재로 울고 있던 파리 시민들이 떠올라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재개관한 노트르담 성당

콩시에르주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인 장소라 지나는 길에 들러보았다. 하지만 뮤지엄 패스를 사용하는 곳이 아니라면 가지 않았을 곳이긴 했다. 그냥 가봤다 정도의 느낌.

그다음으로는 꼭 가보고 싶어 미리 예약해 둔 생트샤펠을 갔다. 다른 성당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작은데도 정말 엄청났다. 성당 안 의자에 앉아 햇빛으로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한참 보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작아서 더 아늑하고 아름다웠던 생트 샤펠


다음 목적지는 오늘 일정 중 가장 기대했던 인상파의 그림이 있는 오르셰 미술관이다. 책에서만 보던 모네와 반고흐, 르누아르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아침부터의 일정으로 지쳤지만 기대감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생트샤펠에서 오르셰까지 센 강가를 걸어가기로 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생각보다는 먼 거리였다. 아직 세 곳의 미술관이 남았기에 힘을 냈다. 그런데 남편이 자꾸만 쳐진다. 사진을 찍어서 늦어지나 보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앞서 걸었다.


드디어 오르셰 미술관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일정도 있었고 미술관까지 걸어오느라 지쳐서 잠시 요깃거리를 하며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르셰미술관의 카페나 식당이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다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카페에서 쉬지 못하고 바로 5층으로 가서 기대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둘러보았다. 유명한 그림 옆에 유명한 그림, 그 옆에 또 유명한 그림이었다. 거실 책상 벽에 붙여 두었던 모네의 그림을 실제로 본 순간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울컥하기도 했다. 내가 드디어 이곳에 오다니!

르누아르 옆에 모네

놀라움과 감탄으로 시작해서 그 놀라움도 무뎌질 때쯤, 5층에서 4층으로 계단을 내려오는데 남편이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고 갑자기 서있다. 허리에 무리가 와서 다리가 저려온 것이다. 원래 남편은 추간판탈출증으로 허리가 좋지 않아 세 번 정도 고생한 적이 있다. 한 번의 입원과 몇 번의 시술 이후 큰 문제가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2년 전 이탈리아 여행 때 꽤 조심하고 다녔었는데 큰 문제없이 여행도 잘 다녀왔었다. 그러다 오늘 오르셰에서 갑자기 허리가 뜨끔한 것이다.


아차 싶었다. 뮤지엄패스가 뭐라고, 여러 장소를 가성비 있게 가서 본전을 뽑으려는 내 욕심 때문에 남편이 아픈 것은 아닐까? 5~6년 전에 자고 일어났는데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움직이지를 못해 119를 부른 적도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119를 부를 수 있나, 한국까지는 비즈니스를 다시 예약해야 하나,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잠시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렇게 10분 정도 서 있으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움직여본다. 그러니 이제 좀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놀랄 때로 놀란 마음, 남편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이미 지옥을 경험했다. 어떻게든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려면 절대 무리해서는 안된다.


맡겨둔 짐을 찾아 바로 미술관을 나섰다.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볼트앱을 열고 택시를 불렀다. 가까운 거리라 그런지 볼트도 잘 잡히지 않는다. 20여분이 지나고 겨우 볼트를 잡아 숙소로 향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자괴감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해 남편은 침대에 누워 쉬기로 하고, 아들도 힘들다고 해서 아빠와 숙소에 있는다고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모네의 수련도 보고 싶고, 로댕미술관에 지옥문도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가족의 건강상태는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부린 것이 괴로워서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울함에 나도 그냥 숙소에서 쉴까 했는데 딸이 둘이서라도 가자고 한다. 그때 딸이 그렇게 말해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엄마가 얼마나 가고 싶은지 알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본인이 가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마도 둘 다 일 것 같다.


다시 힘을 내서 딸과 길을 나섰다. 씩씩하게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내내 회색빛이던 파리의 하늘이 웬일로 파랗다. 앞으로의 여행은 이 하늘처럼 환하길.

오랑주리 미술관 정원에서 본 파란 하늘

오랑주리 미술관 전시실을 가득 채운 모네의 수련 연작은 기대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가만히 그걸 보고 있자니 내가 그림을 보는 건지 수련이 떠있는 연못을 보고 있는 건지 헤갈린다. 아마도 모네는 그런 의도로 이렇게 전시실을 둘러싼 그림을 생각했겠지. 내가 이걸 보러 여길 진짜 왔구나.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수련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센 강을 건너 로댕미술관 걸었다. 꽤 멀었지만 낯선 골목을 돌아 돌아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설레기도 했다. 로댕미술관에 가니 마칠 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아 정원만 보기로 했다. 미술관 정원을 돌며 마치 보물찾기 하는 느낌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문을 았다. 지옥문은 정말이지 사진에서 본 것보다 몇 배는 더 생생했다. 조각 속에서 손을 뻗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옥문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오늘 지옥문을 열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남편이 허리가 심각하게 아파서 다시 걷지를 못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건강해야 여행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절감한다.


새삼스럽게 느낀 바가 많은 하루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겪어봐야 진짜로 알게 된다.

건강이 최고다. 욕심을 버리자!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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