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진짜 행복

파리 런던 가족 여행기-4일 차

by 인애

오늘 계획은 변경되었다. 파리 근교까지 광역철도를 타고 나가서 많이 걸어야 하는 베르사유 궁전 대신 첫날 날씨로 인해 가지 못했던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로 가기로 했다. 베르사유의 입장료가 비쌌기에 마지막까지 파리 뮤지엄 패스를 알차게 쓰기 위해 궁전을 가기로 계획을 짰었다. 하지만 무리해서 남편이 갑자기 허리가 아팠던, 어제의 값진 경험을 통해 가족들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계획은 변경되었다. 내심 여기까지 와서 베르사유 궁전을 가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하지만 내 욕심만 고집한다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여행은 무조건 억텐이다. 억지로 텐션을 올려야만 이게 서로를 위한 배려다. 그래야 추억이 된다.' 얼마 전 고경표가 유튜브에서 한 말이다. 억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욕심을 버리자. 파리를 보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파리를 보는 것에 집중하자!


느지막이 일어나 체력이 제일 좋을 때 개선문을 오르기로 했다. 원래라면 걸어가자고 했겠지만 이제는 짧은 거리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서 개선문에 올랐다. 헉헉대며 올랐지만 첫 코스라 그런대로 오를 만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이라 나뭇잎이 없어서인지 회색빛 파리의 건물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방사형으로 뻗은 길이 정말 '에뜨왈(별)' 같구나. 밤에 보면 더 별 같겠지? '에뜨왈 개선문'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파리에 와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에펠탑이 저 멀리 보였다. 정말 파리에 왔구나! 곧 너를 보러 갈게! 전망은 멋졌지만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인스타에서 본 그런 멋진 에펠탑 사진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몇 백장을 찍어도 같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자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휴대폰에 담지 않고 눈에 담고 갈게!

개선문 전망대에서 본 에펠탑


개선문을 내려오니 점심때가 다 와가서 인지 샹젤리제 거리가 북적거린다. 점심은 먹어야 하는데 파리의 로컬 식당은 괜히 두렵다. 며칠 동안 경험한 파리의 가게들은 내가 영어로 말해도 의사소통은 되는 듯했다. 하지만 가게 점원들이 프랑스어를 막 쏟아내는 것을 몇 번 겪고 나니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만만한 키오스크가 있는 맥도널드에 갔다. 파리의 물가가 무서워 그냥 간단하게 점심을 먹자며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생각보다 치즈버거가 싸다며 치즈버거와 치킨버거, 콜라, 커피,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번호를 불러서 가보니 콜라가 없다! 음료가 잘못 나온 것 같다고 하니 점원이 영수증을 확인하고는 맞다고 한다. 일단 쟁반을 들고 올라와서 자세히 보니 커피라고 착각한 컵에는 콜라가 들어있고 주문한 커피는 소주컵만 한 종이컵에 들어있다. 우리나라는 탄산음료를 스몰을 시켜도 사이즈가 어느 정도는 되는데 파리는 정말로 스몰이다. 일반 종이컵만 한 크기에 콜라가 담겨있다. 커피도 에스프레소를 잘못 시켰나 보다. 분명 이름이 에스프레소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치즈버거는 얇은 패티와 치즈만 들어있다. 당황하긴 했지만 오늘 제대로 파리 맥도널드 체험을 한다며 한껏 웃었다. 그래도 감자튀김만은 한국과 같이 짭조름하게 맛있다며. (이것이 억텐인가?!)

잘못시킨 커피

지하철을 타고 드디어 에펠탑에 갔다. 에펠탑에 도착해서 사진을 막 찍으려고 하는데 남편에게 '오빠! 오빠!'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열쇠고리 상인이 붙었다. 안 산다고 해도 다가와서는 남편이 사진을 찍는데 자꾸 훈수를 둔다. 우리 아이들의 자세를 수정해 주며 사진을 찍어준다. 이런 일을 인터넷에서 많이 읽었고 주의해야지 하고 왔는데도 실제로 이런 사람을 떼어놓는 것은 참 어렵다. 사진을 도와주고 나더니 아니나 다를까 열쇠고리를 들고 계속 따라온다. 거의 뛰다시피 하며 벗어났다. 사실 현금이 있으면 사주었을 텐데 카드밖에 없어서 사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찍어준 사진을 보니 와우! 에펠탑을 손에 잡고 찍은 사진 등등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경력은 무시할 수 없는 법, 프로는 프로였다. 열쇠고리 못 사줘서 미안해요!


지하철을 타고 생제르맹지구로 갔다. 내가 꼭 가고 싶었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가기 위해서다. 오래전 보았던 '비포선셋' 영화에 나왔던 서점이기도 하고, 유명한 작가들이 자주 머물렀던 곳이라고 하니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언니가 몇 년 전 이곳을 다녀와서 선물해 주어서 너무 잘 쓰고 있어 너덜너덜해진 이곳의 에코백도 새것으로 하나 사고 싶었다. 사실 서점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는데 서점 안도 너무 예뻤다. 책장, 문틀 모든 것이 오래된 그 역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구석구석 앉아있었던 서점원들도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실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만 그 풍경을 담아야 했기에 그 시간이 더 소중했다. 서점의 분위기에 폭 빠져서 에코백만이 아니라 영어로 된 책도 한 권 사고 싶었다. 한참 고라서 표지가 멋진 '오즈의 마법사'를 구입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니 언젠가 영어로도 꼭 읽어보아야지.


책과 에코백

서점을 나와 생제르맹지구를 걸었다. 에펠탑 근처와 샹젤리제 거리에는 관광객이 많았다면 이곳은 현지인이 많은 느낌이었다. 대학가라 그런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생동감이 느껴지고 흥분되기까지 한다. 골목골목 가게들도 작고 정감 있었다. 헤매고 싶은 골목이 천지다.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싶어 아이스크림을 장미꽃으로 만들어주는 '아모리노'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편과 나는 커피를 마시며 쓸데없는 잡담을 했다. 카페에서의 여유가 좋았다. 행복했다. 오후 내내 앉아있고 싶었지만 손님들이 몰려들어 일어섰다.


카페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센강을 건너 숙소를 향해 걸었다. 사실 나는 생제르맹거리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팡테옹도 가보고 싶었고, 뤽상부르 공원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의견대로 숙소로 가기로 했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아서인지 모두들 걸음이 가뿐하다. 저녁은 숙소에 가서 햇반에 볶음김치랑 라면을 끓여 먹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하게 걸었다. 낯선 도시의 낯선 숙소에서도 여행은 계속되니까.

(저녁 먹고 딸과 함께 숙소 근처의 쇼핑몰을 헤매며 아쉬움을 해소했다.)


여행의 행복이라는 게 참 별거 없다.

엄청나게 새롭고 놀라운 것을 보는 것만이 여행의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천천히 일어나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파리를 만끽하는 오늘 하루가 참 좋았다.


빠르게 다니면 더 많이 볼 수 있지만,

느리게 다니면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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