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과 내면에 대해서
(이 글은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키건의 소설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평범한 시민인 빌 펄롱의 시선을 따라간다. 단편소설인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는 사제의 시선에서 한 여자의 결혼식을 경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소설 모두 종교에 속한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는 성직자의 자리에 있는 사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심리 그리고 표면적인 성스러운 이미지 내부에 인간으로서 겪는 온갖 불안, 부정직, 불확실, 무책임, 회피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키건은 성직자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직하다는 보편적으로 갖는 고정관념을 통해 인간의 표면과 내면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은 선과 악으로 이분화될 수 없고 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또한 소설의 중요한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푸른 들판을 걷다>는 사제복이 검정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단조로운 사제의 삶을, 결혼식의 원색적인 꽃들과 화려한 드레스, 음식들, 술과 특별한 날에만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저속한 농담들과 대조해서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과 불확실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제는 사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와 한때 특별한 사이였다. 아무런 의도 없이 건넨 손짓에 여자가 응답을 하였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계가 진전되었다. 그러나, 사제라는 직업이 갖는 속박, 사회적인 의무, 도덕성에 기인하여 사제는 관계를 정리했다.
사제는 결혼식을 보며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희망과 단념이 뒤얽힌 마음으로 사제는 결혼식 내내 불안정한 시선을 통해 결혼식을 본다. 결국 어느 순간 춤을 추던 신부의 진주 목걸이가 끊어지게 되고, 흩어지는 진주를 주워 신부의 손에 올려놓는 순간 마지막 시선의 교환이 있었지만, 끝내 사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한때 바라던 일이었지만 세상에서 두 사람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바로 그런 점이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52)
키건은 사제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부도덕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인간의 성질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고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며, 그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보여준다. 어쩌면 사제가 성직자로서의 길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것처럼 그 여자도 방향을 잃고 배회하다 우연히 그렇게 두 사람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제가 아니더라도 여자는 다른 남자를 필요로 했을 수도 있고, 그 여자가 아니더라도 사제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떠밀려 누군가를 만났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사제는 단념하며 시골길을 걷다가 중국인이 사는 이동식 주택에 다다르게 되고, 그 안에서 뜨거운 차와 전신 마사지를 받으며 생각이 정리되고 다시 내일을 살게 될 이유 그리고 할 일을 생각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사실 왜 키건이 중국인, 뜨거운 차, 마사지를 이야기에 포함시켰는지 의아했지만, 어쩌면 아주 사소한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키건이 가장 성스럽다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형상을 통해서 인간의 나약함, 비도덕함, 회피를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고, 이런 대조를 인물의 감정과 대화보다는 주변 상황, 옷차림, 색, 음식 등을 통해서 암시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묘사해서 소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