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개 같은 날

비교하지 말고 꼬리를 흔들자

by 수리

첫 번째 개는 집에 먼저 살고 있던 터줏대감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두 번째 개는 나중에 들어왔는데 귀여운 외모로 사랑을 독차지한다.

두 번째 개는 첫 번째 개의 눈치를 본다. 첫 번째 개는 두 번째 개의 지정석을 넘본다.

하지만 둘 다 만만치 않다. 양보하지 않는다.


첫 번째 개와 두 번째 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외출이다. 인간에게 맞춰진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지만, 그 시간만큼은 네 발이 잘 맞는다.


먼저 이 둘은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

첫 번째 개가 두 번째 개를 흘끗한다.

두 번째 개가 동의의 뜻으로 입을 살짝 벌린다.

첫 번째 개가 눈짓을 한다.

두 번째 개가 인간에게 다가가 매력을 어필한다.

인간이 못 들은 척 무시한다.

첫 번째 개가 괜히 물을 마시며 기지개를 켜고 인간을 주시한다.

두 번째 개가 인간의 눈앞을 지나치며 슬쩍 옆구리로 발을 건드린다.

이어서 바로 첫 번째 개가 인간의 눈앞을 느릿느릿 지나간다.


한숨을 쉬며 인간이 줄을 가지고 온다.

가슴에 줄을 묶으며 첫 번째 개와 두 번째 개가 눈빛을 교환한다.


무슨 사인을 보내는 걸까

승리의 눈빛일까

경쟁의 눈빛일까

공모의 눈빛일까



개 같은 날

우리 집 개 같은 날

우리 집 개 같은 날 목욕을 한다

우리 집 개 같은 날 산책을 한다

우리 집 개 같은 날 밥을 먹는다

우리 집 개 같은 날 야단을 맞는다

우리 집 개 같은 날 꿈을 꾼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가족에게서 왔는데

우리 집 개, 같은 날 모든 걸 함께 한다


우리 집 개들도 이렇게 잘 지내는데

나는 어째서 개 같은, 날을 보내지 못할까



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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