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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될 수는 없었지만

[Happy Day]와 [나는 반딧불]

by 구름파도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체리필터 [Happy day]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중식이 [나는 반딧불]


[Happy day]와 [나는 반딧불].

한때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노래와 원래도 사랑받았지만 최근 리메이크 되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노래. 이 두 노래는 내가 아직 청소년이던 시절, 질리도록 들었던 노래다.


록 음악과 인디음악(정확히는 블루스 계열), 2006년과 2020년, 여자 보컬과 남자보컬. 이 노래들은 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왜 장르도 시대도 다른 두 노래를 묶어서 소개하려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두 노래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Happy Day]와[나는 반딧불]이 정말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둘을 따로 소개할 수 없었다.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노래이기 때문에.


'난 내가 말야 스무살 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이 가사가 내 뼈를 얼마나 심하게 강타했는지 모른다. 한창 중2병이라 불리는 지독한 사춘기에 빠져있던 시절. 모든 것이 하찮아 보였던 나는 당시에 체리필터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다.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있던 나에게 세상에 저항하는 듯한 체리필터의 노래가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이 [Happy Day]였다.


[나는 반딧불]은 중식이와 처음 만나게 해준 노래였다. 인디 밴드를 찾아 듣던 중 우연히 이 노래와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줄 알았어요. 한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가사를 처음 듣자마자 [Happy Day]를 들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댄스곡을 달가워 하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진솔한 이 가사 하나가 어찌나 마음을 울리던지! 사춘기를 보내며 미래를 두려워하던 나에게 위로를 준 가사였다.


거두절미하고, 이 두 노래가 어떤 비슷한 점이 있어서 내가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이에 대해 말하자면 아주 길다. 단순히 내가 이 두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이 공통점이 아니다. [Happy Day]와 [나는 반딧불]은 이상'을, 즉 '별'을 다루고 있다.


[Happy Day]의 화자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스무 살 쯤에 요절할 천재'라고 생각했다. 거칠 것 없었던 어린 시절, 모든게 찬란하게 빛났고 작은 일에도 행복했던 화자는 마음 속에 별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찬란했던 시절은 별과 함께 사라졌고 남은 것은 삼류 영화에나 나올법한 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찾는다. 별로 사라져버린 과거를, 소망을.


[나는 반딧불]의 화자는 자신을 별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희망 그 자체, 작은 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화자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신이 개똥벌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화자는 별이 되기를 포기했다. 자신이 개똥벌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밤하늘의 별들을 또 하나의 반딧불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자신은 빛날테니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두 노래를 비교해보니 어떤가? 나는 '별'이라는 공통점이 보였다. [Happy Day]와 [나는 반딧불]의 '별'은 인간이 꿈을 꾸는 동시에 좌절하게 만드는 것, '이상'이였다. 두 화자는 '이상'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겼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상'이 닿을 수 없는 '별'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둘은 '별'을 바라고 소망한다.


두 노래의 차이점은 '이룰 수 없는 이상과 마주했을 때 과연 끝까지 이상을 쫓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Happy Day]는 별을 찾는 계속 찾으며 저항하는 것을 택한다. 계속 되는 삶에 권태를 느끼며, 별 어딘가에 숨어있을 이상을 찾으려 한다.

[나는 반딧불]은 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순응하는 것을 택한다. 빛나는 별인 줄 알았던 자신이 하찮은 개똥벌레였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자신은 빛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 많은 별들이 반딧불과 같다고 생각한다. 별이 곧 나이고, 이상이 곧 개똥벌레인 것이다.


사라진 이상을 그리워하며 찾아해매는 [Happy Day], 이상의 기준이 낮아졌더라도 괜찮다 생각하는 [나는 반딧불].

누구도 옳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맞는 삶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개똥벌래처럼 이상의 기준을 낮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Happy Day]의 화자처럼 원래 품었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라진 별을 반딧불이 되어 바라보고 있을 뿐.


나는 내가 스무살에 요절할 천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별이 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빛을 내는 이 땅 위의 별인 반딧불과 공존할 수 있고, 우주선을 타고 별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결국 별이 되는 것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별빛을 맞으며 바라보는 것 정도는 허락되니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별로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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