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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혈청년 훈 Feb 24. 2021

9. [시사잡설]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한 공정함 고찰

공정함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인가?


'공정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 '공정함'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대입입시에서 학종문제, 정규직 전환 문제, 공공기관 지방인재 할당문제 등이 최근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사안들입니다.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공정'이란 이슈인데 왜 이렇게 논란이 생기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각 사안마다 "공정한 상태"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단순하고 기계적인 접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갖고 얘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1. 문제해결에 있어서 통계자료, 현상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설계자들이 보다 튼튼하고 안전하며 파일럿들의 생환가능성이 높은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만큼은 아니더라도 프로펠러기가 주력이던 제2차 세계대전 장시에도 숙련된 파일럿 1명을 육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자금이 필요했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제공권 장악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생환한 전투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날개 끝부분과 동체 후미쪽에 다수의 탄흔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날개 끝부분과 동체 후미에 방탄판을 덧대면 파일럿들의 생환율이 더 높아질까요?


엔지니어들은 정반대로 했습니다.

조종석을 방탄유리로 감싸고 엔진에 자동소화기능과 방탄판을 더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종석이나 엔진에 피탄되었을 경우 99% 추락, 귀환하지 못하여 통계의 대상으로 잡히지조차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어진 자료나 통계 또는 드러난 현상을 기계적이고 1차원적으로 해석하면 전혀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게 됩니다.

심지어는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악화시켜버리기도 합니다.


공정에 관한 문제는 특히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제도로 이익을 보고 있는 집단 안에는 기존제도의 직접적 수혜자, 간접적 수혜자, 불공정한 제도의 적극적 이용자, 소극적 이용자 등의 혼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감과 사명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공정함을 다룰 때는 현실감각과 냉정한 분석이 함께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무엇이 공정한 것일까요?

가장 먼저 기계적 공정함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집을 1채씩 갖고, 자동차도 1대씩 갖고, 직장도 1곳씩 받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게 정말로 공정한 걸까요?

조금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반론이 있을 것입니다.

집을 예로 들어보면, 서울의 1채와 지방의 1채가 같냐? 아파트와 빌라가 같냐? 브랜드 아파트와 비브랜드 아파트가 같은거냐? 강북의 아파트와 강남의 아파트가 같은거냐? 4인 가족과 2인 가족의 아파트 평수가 같은게 말이 되냐? 등등...

 

잠깐 생각해봐도 아실 수 있는 것처럼 기계적 공정함은 '개인'을 철저히 배제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불공정한 결론이 될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제도의 설계에 따라야만 하는 기계부품이나 장기말이 아닙니다.

한 명, 한 명이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개인들이고, 그런 개인들 저마다의 욕구와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공정함을 향한 요구가 다른 것 또한 당연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각 개인의 상황에 극단적으로 집중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또한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역시 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강남에 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바람을 들어주어 교육연령에 해당하는 아이를 가진 모든 가정집을 강남 3구에 살게 해주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강남3구를 서울 전체로 확장한다면 혹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강남3구의 토지면적과 주거가능 공간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즉, 자원이 유한하고 한정적인 이상 모든 개인이 원하는것을 실현하는 것이 공정이라면, 사회는 이를 실현시켜 줄 수 없습니다.


이제 개인을 철저히 배제한 기계적 공정함도, 철저히 개인에게 집중한 맞춤형 공정함도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공정함이란, "한정된 자원을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공정하다고 인식/인정/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논의를 이어나가겠습니다.



3.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살펴보는 공정함의 문제    



ㅇ 학생부 종합전형의 근본적 문제점


학생부 종합전형은 이런 전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입학이라는 현실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과정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고교 3년간의 총체적인 학습활동을 평가하여 지원자의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에 훨씬 부합한다.'


언뜻 보면 일리있어 보이는 전제이고 합리적인 입시제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와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을 저버리는 아주 문제있는 제도라는 것을 금방 알게됩니다.

이 제도의 허점은 "고교 3년간 학생부에 기록가능한 활동만으로 학생의 잠재력이 평가받는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똑같이 외교관 자녀이고 중산층 이상의 자녀로 영어에 대한 특출난 소질과 다년간의 해외 체류경험이 있는 A와 B가 있습니다.

그런데 A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직전 부모님이 갑자기 외교관에서 실직하고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져서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렸고, B는 예전과 동일했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기록을 위해서는 각종 교내외 공모전, 수상활동, 동아리 이력, 봉사활동 등등이 필요한데 급격히 가세가 기운 A는 고등학교도 겨우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반면, B는 착실히 학생부 종합전형에 기재할 이력들을 쌓아갔습니다.


이제 이 두 학생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지원했다고 하면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

A인가요?

A는 뽑힐 수 없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 제도상 A가 뽑히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입니다.

A는 고교 3년간 장래 외교관이 될만한 활동을 무엇 하나 기록한 것이 없는 반면, B는 3년간 각종 관련 활동을 통해 그 자질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결론이 공정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직관적으로 아니라고 느끼실 것입니다.

소위 SKY대학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은 무려 59%에 이르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10480.html)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 중 강남3구 비중은 전국 평균보다 2.4배나 높다고 합니다.

(https://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132)



ㅇ 학생부 종합전형이 놓치고 있는 것 -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교육학을 이수하지도 않았고 법에 대해서는 한, 두글자 알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완전한 비전문가, 일반인입니다.

그런 일반인의 기준에서 교육의 1차적인 목표는 보편교육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수월성 교육, 엘리트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정에 대한 검증이란 의미의 평가는 현실적으로도 필요하지만 학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에는 축복받은 뛰어난 영재들이 존재하니 이들을 위한 맞춤형 영재교육은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장려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육의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교육의 주가 되어버린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국가교육, 공교육을 필요없습니다.

과거와 같이 소수 귀족을 위한 교육이나 하면 됩니다.


교육은 단순히 가르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현재를 살아갈 지식, 지혜, 기술을 가르치고 사회의 갈등을 완화하며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종합적인 무엇인가입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일견 교육의 과정에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그 학생기록부를 기록할 형편이 되지 않으나 충분히 발전가능한 잠재력 있는 학생을 외면하고 가는 무섭고 잔인한 제도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득권에 유리한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ㅇ 학생부 종합전형이 놓치고 있는 것 -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공정함의 문제로까지 이어집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과정의 결과가 대학입시인데, 그 결과에 어떤 학생은 구조적으로 본인의 노력이나 재능에 상관없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내 부모의 가정형편에 따라서 나는 생활기록부에 채울 활동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고등학교에 입학했느냐, 입학 직후의 성적이 몇 등이냐에 따라서 - 비록 그것이 중학교까지의 학습결과라 하더라도 - 학교가 작심하고 밀어주는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에 포함되지 못해, 앞으로 입시에서 영구히 1/3(SKY는 59%)의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지원할 수조차 없게 됩니다.


이것이 공정한 것입니까?

앞서 정의한 것처럼, 명문대 입학인원이라는 한정된 자원이 누구나가 인식/인정/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확한 통계자료는 찾지 못하였으나, 학생부 종합전형 시행 이후 폭증한 사교육시장 - 자소서 작성, 컨설턴트 등 -은 피부로 누구나 느끼고 있는 바 아닙니까?

부모의 경제력을 넘어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입시의 유불리가 달라짐은 다들 입소문으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4. 글을 마치며    


꼰대 소리를 들을 각오로 "라떼는 말이야~~" 얘기 한 번 하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반에서 1, 2등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면 왠만하면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친구가 특별히 엄청 착하거나 무슨 엄청난 친분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지금 눈 앞의 이 친구가 직접적인 내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남을 가르쳐주는 과정은 나에게도 엄청난 공부가 됩니다.

이건 진짜 해보시면 압니다.


그런데 얼마전 회사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예의없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아이들 어디 학원 보내는지 묻는거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학원에 대한 정보는 특급정보 중의 특급정보인데, 자기들과 친해지고 필요한 정보를 가져오지 않고 꽁으로 얻어만 가려는 사람으로 취급되서 아주 몰상식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절이 이렇습니다.

X지와 X들이 교실이데아를 통해 비판했던 당시는 오히려 낭만이 있었고,  노래가 비판하고자 하는 세태는 오히려 지금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전 수험생이 경쟁대상이었던 반면, 지금은 내 눈앞의 친구가 경쟁상대니까요.


부모가, 선생님이, 사회 도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에 남는 것 아니면 쓸데 없는 일이야. 하지마."

"네 옆에 있는 애들은 다 네 경쟁자야. 직접적으로 쟤를 제껴야 네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네가 명문대학에 들어간 것은 오로지 너와 너희 가족의 힘으로 된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나 이웃, 사회에 빚진게 없어."


이런 교육과 제도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장차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이미 그런 조짐이 일부 보이고 있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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