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읽는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오늘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김동훈 교수님으로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는 칼럼집으로도 유명한 분이십니다.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는 2001년 4월 15일에 책세상에서 초판 1쇄가 출판되어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년 전에 한국사회에서 명문대, 학벌이 어떤 의미였고 제시된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해한 이 책의 핵심내용과 그에 대한 21년을 살아가는 저의 생각을 간단히 덧붙이고자 합니다.
이 책을 기준으로 하는 까닭은 김동훈 교수님이나 그분의 책이 20년 전 당시의 학벌사회 담론을 모두 망라했다거나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잠시 소개드린 그 분의 칼럼의 파급효과나 그 이후 학벌사회에 대한 교수님의 진지한 접근과 활동을 보았을 때 그 당시의 흐름을 파악하고 21년과 비교하는 준거로 삼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학벌사회의 현황과 문제점, 2) 학벌사회 발생의 원인분석, 3)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
1) 학벌사회의 현황과 문제점
우선 저자는 학벌을 표현하는 단어로 '신분'이 적합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학벌이 외관상 공정한 시험을 통해 얻어지기는 하나, 한 번 얻어진 성취지위가 귀속지위화하여 준 신분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분화'라는 단어는 이 책 전체에서 저자의 일관된 문제제기, 문제의식의 핵심키워드입니다)
학벌이 신분이기 때문에 학벌로 맺어진 동문들간의 관계는 붕당적 성격을 띄어 배타성을 지니게 되고,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명문대는 본래적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발현과 관계가 희박한 명문대가 아닌 '권문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도 합니다.
이와 같은 학벌의 특성상 그 학벌을 지니지 못한 자들에게는 자괴감과 열등감을 심어주고 학벌을 가진 자들에게는 독점과 배타성이 만연하게 되었다고 개탄합니다.
2) 학벌사회 발생의 원인분석
학벌사회의 원인에 대하여 저자는 학벌사회에 대한 옹호론을 소개한 뒤 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책에 소개된 학벌사회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경쟁동기론 : "교육은 가치합리적 행위로서 (중략) 사회성원이 합의한 정당한 경쟁기제를 통과한 승자에게 주어지는 프리미엄 역시 정당한 보상이다. (중략) 정부의 교육개혁안은 경쟁의 승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치게 취약하다."
(2) 기회균등론 : "사회적으로 재력이나 권력이 없는 소외계층도 노력만 한다면 좋은 학벌을 취득해 사회 상층부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고 이것이 사회의 건강성을 의미한다."
(3) 능력지표론 : "입시경쟁은 개개인의 능력을 강도 높게 계발시키며, 그 경쟁의 최종적 판정장치인 입시를 통해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선발된다."
저자는 이러한 학벌사회 옹호론에 대하여 각각의 비판을 가한 뒤, 학벌사회를 조장하는 또 다른 세력으로 언론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등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환희에 찬 얼굴을 비춰줌으로서 명문대 입시에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등식을 은연중에 형상화하고 있으며, 입시철만 되면 전국민이 명문대 중심의 입시점수 커트라인과 지원전략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기사를 쏟아낸다고 비판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특정 사학을 지원한다는 얘기조차 듣는 보수신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적인 신문까지 똑같이 따라간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학벌사회의 원인은 입시제도와 대학서열화의 상호작용으로서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는 입시제도를 통해 다시금 확인을 받고 강화되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으로 이해됩니다.
3)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
이러한 학벌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해 저자는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입시제도의 개혁입니다.
국가의 입시제도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학의 재량권을 인정하며 하루의 시험결과가 아닌 고등학교 학습과정 전반이 입시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둘째로는 학벌사회가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적어도 공고한 학벌사회에 균열을 발생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인식개선 노력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모교출신 대학교수 임용 비율 제한의 강제성 부여, 대학원의 개방성 강화, 대학평가체제 확립, 학벌을 묻지도 밝히지도 않는 관행 정착, 학벌사회를 조장하는 언론, 기업에 대한 치열한 고발과 문제제기, 고등학교 학생들의 목소리 이끌어내기, 사교육 시장의 학벌조장행위 제동 등입니다.
이제 이 책이 나온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을 살고 있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좋은 사회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발벗고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이 동조함으로써 조금씩 해결되어 왔던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저자를 비롯하여 그 당시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는 어느 국회의원실에서 보좌관을 뽑는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자"로 지원자격 자체를 제한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같으면 그 의원실은 여론의 뭇매와 질타를 받고 공고문을 내려야 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감이라는 발언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또 몇몇 기업에서 시도하다가 흐지부지되었다는 블라인드 채용은 적어도 지금 공공기관을 중심으로는 정착되어 가고 있으며,
지방대, 지방인재에 대한 채용할당제도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간접적 압박 등이 있어 사실상 도입되었으며 아예 법제화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2001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학벌사회 자체가 해체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때보다 진전된 사회가 된 것은 분명하고, 여기에는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문제제기와 의식전환 노력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책내용에 몇 가지 의문점이 들기도 했습니다.
1) 학벌사회 문제해결책 제시안에 대한 저자 주장의 모순, 상호충돌
제일 먼저 든 생각입니다.
저자의 학벌사회 문제해결책 제시안에 대한 입장은 같은 책 안에서 충돌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대학의 서열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면서 국립대학의 민영화 또는 독립법인화하여 사학과 동일한 경쟁위치에 서도록 하고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줄이면서 사학에 대한 지원은 강화하여 평준화를 하여 서열구도를 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상당부분 통제하고 유인할 수 있는 장치가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부분까지만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나, 그 다음 입시에 관한 부분을 보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저자는 전국단위의 경쟁시험에 의한 커트라인을 비판하면서 "성적에 의한 기계적 선발은 실질적으로는 대학이 학생의 선발권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교육기관인 대학이 지원자 중의 일부에게 입학자격을 부여하는데 과연 개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잣대가 필요한 것인가?"라고 쓰면서 "교육 외적 기관의 간섭 명분으로써 제시되는 것이 공정성이고 객관성일 뿐이다"는 어느 교육평론가의 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고등교육이 의무교육과 달리 선택사항으로서 본질적으로 교육기관과 학생간의 계약인 면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만약 이러한 계약측면을 강조하여 계약체결의 자유 - 이 경우에는 학생선발에 대한 자율권, 재량권 -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면, 그만큼 정부의 지원은 받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국가의 지원은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납세자인 국민이 납득할 명분이 필요합니다.
납세자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성, 공정성 있는 - 예를 들면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강제적인 정원할당 등 - 입시제도의 제약도 없는 자율재량을 요청하면서 정부 지원의 대폭적 확대를 바라는 것은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아가 중등교육 기관은 국가적 시험의 객채로서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는 비판을 가하고서 고등학교의 학습과정을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평가하게 한다는 주장 역시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각 대학교가 자율적으로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평가한다고 해도 결국 각 고등학교는 소위 명문대의 고등학교 교과과정 평가방법을 늘 의식하여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전국단위 경쟁시험이 되건 대학의 완전한 자율선발이 되건 중등교육의 객체화, 피동화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2)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비판
저자가 입시제도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대학의 학생선발에 재량권 부여, 단 하루의 시험이 아닌 전반적인 교과과정에 대한 평가 등이 결합된 것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이해됩니다.
저자가 학생부 종합전형을 설계했다거나 도입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와 같은 문제의식과 해결책을 당시 여러 사람들이 공유한 끝에 나온 제도가 학생부 종합전형이라고 생각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실제 운영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몇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험지 문제유출 사건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시행되었음에도 기존의 학벌구조는 크게 해체되지 못하고, 대학 서열화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은 현 상황에서, 각 고등학교는 여전히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많은 학생을 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은 더욱 큰 문제점을 낳게 되었습니다.
어떤 학교든지 될성 부른 떡잎을 전략적, 의도적으로 밀어주면 적어도 1, 2명의 서울대생은 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학생들은 들러리로 전락합니다.
적어도 전국단위의 성적평가가 입시의 중심이 되던 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전교 1등에게 각종 교내 상장을 밀어준다고 이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 1등에게 각종 교내 상장을 싹쓸이하게 해준다고 이 학생이 연고대나 인서울을 확실하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결국 경제적 합리성을 낳는 쪽으로 행동하도록, 귀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상장 10장을 10명에게 균등하게 배분해서 1명의 인서울 학생도 배출하지 못하느니, 10장의 상장을 가능성 있어보이는 학생 2~3명에게 몰아줘서 적어도 1명, 잘하면 2~3명의 인서울 학생을 배출하자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문제는 대입에서 전체 입학생의 절반 넘는 학생을 수시로 뽑는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90%의 학생들은 10%의 학생들을 위해서 철저히 배제되고 절반이 채 안되는 정시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90%의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부모가 돈이 없고 학벌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10%의 학생들보다 밀린다는 이유만으로 소위 밑을 깔아줘야 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 정도 상황까지 왔다면 공정성, 객관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문제제기는 누구나 가능한 것이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직 문제해결의 키포인트가 될 병목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계속 제 나름대로 고민해볼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공공성'과 '능력주의'의 상충에 있습니다.
저는 공공성에만 주목하는 해결책도, 능력주의에만 주목하는 해결책도 모두 한 쪽만을 바라본 것이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한정된 재화인 서울대 입학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능력주의 측면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만을 뽑을 수 있는 제도를 할 경우의 문제점은,
서울대의 현재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 시설 등이 우리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한 것이라는 '공공성'을 망각하고 도외시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에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극단적으로 뽑기로 입학생을 선별한다면, 비록 서울대의 지위는 곧바로 상실될지 모르나 사학 중 한 곳이 서울대의 위치를 대신할 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의 "affirmative action"과 같이 정교하게 잘 설계된, 한국판 소수 집단계 우대정책의 도입을 통해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피라미드 체계의 학벌체제를 인정하되, 그 입시와 선발에 있어서 적극적이 우대정책을 시행하게 하는 한편, 정부의 재정지원은 '수월성'과 '실질적 형평성' 차원을 각각 별도로 구별하여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강남3구 출신의 서울대 입학생이 지나치게 많다면 국립대의 강남3구 입학생 비율을 적정비율(예 : 강남3구 학령인구 비율/전국 학령인구 비율 * 10%)로 제한하고, 로스쿨의 경우도 모교출신 입학생의 비율을 2/3로만 제한할 것이 아니라 서울 외 지방대학 학부생 출신을 100인 이상 로스쿨은 20% 의무적으로 선발하게 한다는 등 실효적이고 적극적인 우대정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재정지원도 그동안의 성과평가에 따라서 재정지원을 하는 동시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향상시킨 대학이 있다면 그런 대학에는 별도의 재정지원을 하는 방법 등으로 세계와의 경쟁에서 성과를 내야하는 현실과 그간의 누적된 학벌사회의 폐혜로 피해를 입은 대학 또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의 입시제도부터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다음에 논하겠지만 학벌사회가 일견 약화된 부분은 있으나, 완전히 해체되었다고는 보여지지 아니하고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학을 들어가고 하는 것은 여전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인의 인생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의 많은 의견과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