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평소보다 아기가 일찍 잠들어 혼자 멍하니 쉴겸 티비를 틀었습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요즘 유명한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금쪽이 재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릴 적 저를 보았습니다.
그 집은 이혼한 후 아버지가 두 아이를 할머니가 키우며 사는 네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데 헌신하셨습니다.
그건 보면 알 수 있죠.
문제는 그 할머님의 대화패턴이 항상 상대방을 미묘하게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면 이런 겁니다.
1. 아들이 힘들게 일하다 늦게 귀가합니다.
2. 엄마는 고생한 아들이 안쓰러워 따뜻한 밥을 해먹이고 싶습니다.
3. 밥을 정성껏 준비하고 아들에게 먹으라고 합니다.
4. 아들은 피곤하니 조금만 있다 먹겠다고 합니다.
5. 어머니는 차린 밥이 식을까 빨리 먹으라고 재촉합니다.
6. 대화가 오고가는 중 언성이 높아지고 아들은 결국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지 않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오은영 박사님이 잘 지적하신 것처럼,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리 내 아들이라 할지라도 상대는 인격을 가진 독립된 사람입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먹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나아가서는 내가 준비한 음식이 "알고보니 싫어하는 것이라 덜 먹거나 안 먹을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할머니는 우리 엄마였고, 거기 나오는 아버지는 저였습니다.
엄마의 타이밍, 방법에 따르면 가정은 화목했고 엄마도 좋아했습니다.
사소한 일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그러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문제였습니다.
제가 한 번에 좋은 대학을 가고 제가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전공을 찾았다면 당연히 저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후자가 저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잡스는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라고 하면서 마지막을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말로 맺습니다.
잡스의 스탠포드대 연설은 2005년이라 제가 한창 대학문제로 전전긍긍할 때는 연설 자체가 있기 전이었고, 설령 같은 때였다고 해도 제가 그 연설을 실시간으로 접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어쨌든 저는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쉬를 관철하고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요.
그러나 그것은 저희 어머니의 "타이밍"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남들에 비해 뒤처지고 늦었다는 초조함, 이 길이 맞을까에 대한 불안과 함께 어머니의 타이밍과 맞지 않아 생기는 충돌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회사에서 여러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당장 1~2년 전만해도 솔직히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1~2년 전에는 모든 임원이나 부장님들이 다들 훌륭하고 맞는 말씀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의 말 자체보다, 그 말이 결국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일을 못하는 것과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은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반대로 직급도 낮고 연차도 적은데 자꾸 제 머리로 생각을 해서 오히려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는 부장님이나 선배들이 그 때 저에게 왜 그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어서조차 계속 예전에 했던 것을 따라하고 누군가 했던 것만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거나 직책을 맡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도 판단하는 능력, 결정하는 습관, 힘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타인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되 그 제안을 스스로 판단하고 승낙과 거부, 수정하여 받아들이거나 역제안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